자신이 유태인이라는 사실은, 단지 얼굴에 주근깨가 있고없고 정도의 의미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시대에는 유태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뒤틀린 존재의 자각을 겪어야만 했다.  그리고, 생존의 문제로 발버둥쳐야 했고 죽음의 문턱을 경험해야만 했다.  프리모 레비는 그렇게 죽음에 가까운 생존자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유태인이라는 정체성을 매우 강렬하게 자각해야 했다.  그 과정은 철저하게 타의적이지만, 각인되기 시작한 정체성은 선조들의 역사부터 거슬러올라 찾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주기율표의 한 원소에 그들의 삶을 담아 서술한다.  오해와 배척의 역사는 그가 살던 시대의 현재에 이르러 나찌에 의한 존재의 부정으로 이어진다.  나찌의 유태인 차별정책은 프리모 레비를 주변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게 한다.  그것은 제도적 강제 자체가 아니었다.  정책이후 사람들의 자발적인 심리적 변화 때문이었다.  


  주기율표는 화학자이면서도 작가인 프리모 레비의 독특한 서술 때문에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는 소소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받은 몇 가지 대목이 있다.  일차로 그가 겪은 극한의 수용소 생활은 그의 다른 책에서도 상세하게 서술되고 있으니 주기율표를 이야기하는 이 자리에서는 옆으로 미루어 둔다.  다른 부분으로는 그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나찌 점령 이후 주변에서 서서히 격리되어가는 장면이다.  그리고, 그가 생존하여 화학회사에서 일할 때, 거래하던 독일회사의 담당자가 수용소시절 자신을 담당했던 관리자였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이다.  


  나찌의 유태인 차별정책은 사람들로 하여금 유태인들에게 낙인을 찍게 만들었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성적 권리와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지만, 사실 사람들은 앞서서 내세우는 선동에 매우 취약하다.  선동에 의한 시선과 인식의 변화는 결국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 스스로 다른 인간을 배제시킨다.  자신이 속한 영역 바깥으로 몰아낸 사람들은, 영역 바깥으로 밀려난 사람들을 마음껏 비난한다.  그렇게 내몰린 프리모 레비는 죽음의 경계에서 분투해야 했던 수용소 생활에서 운좋게 살아난다.  그리고, 일상에 복귀해서 일하다가 우연히 수용소 시절의 자신의 독일인 관리자와 연락이 닿는다.  관리자는 양심적인 사람이었다.  프리모 레비에게 자신의 행위를 판결해주길 요청한다.  프리모 레비는 여기서 양가적 감정에 휩싸인다.  양심적인 독일인 개인의 행위에 대한 자신의 용서가능성과, 나찌가 건설한 유태인 수용소의 잔혹성에 일조한 독일인들의 책임과 반성의 가능성..  그러나 이 고민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독일인 관리자는 만날 약속을 해 두고는 약속날짜 며칠 전 사망하고 만다.  


  그는 스스로를 죽음에 가까운 인간이라 규정한다.  그 말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스스로 수용소에서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여야만 했고, 가까웠던 지인들의 수없는 죽음을 불가항력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리고, 그의 생존은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그는 화학자였지만, 증언자이자 작가로서 자신의 경험을 최대한 드러내며 인간 실존과 심리의 문제를 극한의 영역까지 이끌어 내었다.  그리고, 그는 자살했다.  자살의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생존의 극한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이가 다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자살은 단지 정신병적 결과만이 아닌, 인간의지의 한 극단으로 해석된다.  그렇게 바라볼 때, 극한의 경험을 겪은 이가 어떤 심리와 의지로 다시 극단의 선택을 했는지, 인간의 이성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유태인을 디아스포라적 시선으로 바라본 디아스포라 재일조선인 서경식은 이에 대한 깊은 의문을 품고 프리모 레비의 집과 그의 발자취를 따라나서지만 그 역시 알 수 없는 의문으로 남길 수 밖에 없었다.  


  원소의 흐름에 따라 프리모 레비의 일대기가 펼쳐진다.  정체성의 고민은 선조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대목으로 가지를 치고, 자신이 겪은 극한의 경험에서 비롯되는 생존과 실존의 고민이 적당한 깊이로 이어진다.  우연히 살아남은 자가 트라우마 때문에 쉽게 말할 수 없는, 그래서 보편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은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실존의 고민을 담담하게 풀어나가는 작업은, 글쓴이의 괴로움이자 읽는 이의 행운이다.  프리모 레비의 저작들로 인하여, 인간은 좀 더 이성적이고 보편적 사고를 펼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