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산청군을 형성하는 면은 산청읍을 포함
생초-단성-오부 -금서 -차황- 셍비량 -시천 -삼장-신안 -신등 11개 면인데
이중 삼장 시천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전까지는 진주에 속해있엇고
역시 지금의 단성 신안 신등 생비량은 단성현에 속해 있었는 바
선조 39년 1606년 병오년에 발행된 것으로
현존하는 최초의 산청 호적대장이라할 -병오산음호적대장-에는
산청읍은 현내리로 (현의 중심지 )
금서면은 금물석리로
차황면은 황산리로
오부면은 부곡리 및 오이곡리로
현 생초면의
생림은 생림리로
어서는 초곡리로
대포는 모호산리로
고읍은 읍내리로 표기되었는바
----이 시대까지는 면을 두지 않고 전부 리로 표기하였는 바
면이 생긴것은 1630년 인조 8년부터 東 西 南 北 4개 면으로 하여
이때 생림 초곡은 산음현 北面
대포 고읍은 산음현 西面 모호리 고읍내리로 표기되기 시작함
1906년 대한제국 시대부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전까지
생림은 생림면(신연 송정 월곡 내곡 압수 관지 6개 부락)
어서는 초곡면(계남 토점 상둔 하둔 어서 구평 원기 대평 노은 노간 중촌 신기 향양 고촌 어운 장재 16개부락)
대포는 모호면 (갈전 울촌 대포 평촌 추동 내동 상신 7개 부락 )
고읍은 고읍면 (보전 하촌 중촌 상촌 강정 5개부락)으로 구성되었었숩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생림면 초곡면 첫자를 따서 생초면이라 하였고
그 면사무소를 한일합병 이후 헌병 분견대가 있었던
현 생초초교 옆 생초중앙교회(옛날 생광 예배당)자리에 설치함에 따라
자연히 마을 중심부에 일제의 포악한 한병들이
일본도를 차고 공포분위기를 조성했던 헌병 분견대는
현재 생초 지서자리로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생초 중앙교회 자리에 위치했던 면사무소는
일제36년과 8.15해방과 6.25동란등
격동의 현대사속에서 우리 고향 역사의 중심이었는 바
그 역사의 기록과 뒷이야기는 앞으로 상세하게 올려드릴것을 말씀드리며
눈내리는 사진 보시면서 오늘도 더위속에 모두들 강건하시길 기원합니다
| 출처 : | 43 늘비 초동이들의 사랑방 |
글쓴이 : 김옥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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