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갈색 담배갑 전면 중앙엔

백합꽃이 그 좌측엔 담배 한개비가 

위에서 밑에까지 길게 한줄 백색으로 도안되어 있고

상단에는 굵은 흰색 돋움체로

百合이라고 표시된 이 담배는

 

작년 4월 전매국에서 국군 창설 기념으로

역시 황갈색 담배갑에 마름모 꼴 육가형 안에

육 해 공군을 상징하는 마크를 백색으로 도안하여

암적색의 돋움체로 花郞이라는 로고를 새겨 내놓은 

군용 담배 화랑에 이어

작년 8월 정부수립 1주년을 기념하여 시판하기 시작한 담배로

20개비 한갑에 40원하는 가격이나  

필터가 없어 불을 붙이고 몇모금 빨고 재를 털다 보면

금방 꽁초가 되버림은 화랑이나 똑 같은 이 담배 대신에

하숙집 방에서 드러누워 신문이나 책을 볼때

특히 밤을 꼬박 새며

아이들 시험 문제 출제안을 놓고 씨름할때면

줄 담배를 피워대는 탁은

학교 수업을 끝내고 귀가할 때는

담배도 파는 하숙집 앞 기름집에서

이들 보다 값은 10원 비싸지만

향도 좋고 연초 타는 시간이 길어

일반인들이 많이 찾는 무궁화나

간혹 기름집 주인이 무궁화가 떨어졌다 하면

4년전인 1946년 해방 1주년을 기념하여 나온

한갑 60원하는 최고급 담배인 孔雀(공작)을 사서 피워왔다

 

한달에 두 서너번 일요일 오후엔 영미가

빠르면 올해 겨울 혼인을 할 정혼자의 빨래와 청소를 해줄려고

탁의 하숙집을 찾아 오는 데

그럴때 탁의 뒤를 따라 방안에 들어선 그녀는 늘

 

 -아--담배 냄새

남자들은 왜 담배를 피는 지 모르겠어요

옆에 가까이 가면 냄새나고 돈도 아깝고-- 하며

면박 겸 투정을 부리면서

 

서울 올라오기 전인 재작년 봄

그러니까 그녀의 언니 성미가 결혼하기 전 어느 일요일 오전

남강변으로 둘이서 봄나들이 가기로 약속하여

진주 중앙시장안 이불집을 하는 그녀의 집을 방문했을 때

안으로 들어오라는 성미의 거듭되는 채근을 사양하고

목련과 작약꽃들이 만개한 뒤뜰 텃밭에 서서 기다리는 탁에게

 

방안에서

검정 치마위로 받쳐 입은 흰색 저고리 양 고름을 매만지느라

시간을 지체하는 동생을 흘낕 쳐다 보며

 

-재는 어깨폭이 보통 여자들 보다 넓으니 가슴도 커서

 저고리 고름을 마무리 함에 자기보다  시간이 두배는 더 걸린다-는

그녀의 언니 성미가 웃으면서 건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늘상 자기를 만나면

 -영미씨는 눈도 크고 코도 크고

  또 뭐도 크다하니 미국여자-라고 놀리는

사랑하는 연인의 옆구리를 꼬집고 간지름을 태우며

-그러니 언제 끊을래요 ? 빨리 대답해요 -하며

탁의 건강과 훗날 가족 모두의 행복을 위해

아무 도움도 않되는 담배를 끊을 것을 집요하게 요구하다가

 

탁이 간지름과 꼬집힘에 시달려

우선 급한대로 내일 ! 내일!하며 비명을 질러고

방밖을 빠져나가 다다미 계단을 내려가

빗자루와 걸레등 청소도구가 있는 우물가로 피신하고 나면

 

그때서야 영미는

담배 연기와 냄새가 배인 방의 창문부터 활짝 열고

빨래감 정리와 방안 청소를 시작하곤 했었다

 

그리고 바닥 청소를 하고 나서 다음 순서인 책상위를 정리하다가

책상 책꽃이 맨 끝에 한칸을 차지해서 놓여진 담배 보루를 꺼내 들고

그 가격과 평균 한달에  지출되는 개략적인 산출수치에 기겁하며

다시 한번 탁에게 금연의 약속을 빨리 이행할것을 재촉하곤 해왔다

 

탁이 처음 담배를 접하게 된것은

2년전 1948년

 

진주시내가 온통 하얗게 눈으로 덮힌 2월 마지막 토요일 점심때

중앙시장 입구에 비빔밥 전문으로 20여년전  개업하여

왜정때 부터 진주 비빔밥의 원조로 손꼽혀 온 천황식당에서

3년간의 사범학교 과정을 마치고 각자 초임지로 떠나는 동기들과

두어시간에 걸쳐 막걸리와 육회를 곁들여 이어진 송별회를 마치고

산청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차부까지 가는 길을 영미와 함께 가다가

역시 사범학교 동기이자 영미의 절친한 친구로

탁의 고향 산청에서  40여분을 더가는

함양이 고향인 현희를 만남에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