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조합과 군청 경찰서가 모여 있는
함양읍의 중심가라 할 동문 사거리에서
옛 함양 관아의 정문인 학사루가 있던 연발치 고개를 넘어
신라 진성여왕시대
함양 태수로 부임한 최치원 선생이
위천의 범람을 막고자
사람들을 동원해 조성한 상림숲을 우측으로
위천을 좌측으로 하여 10여리를 걸어가면 병곡면이 나오는 데
그 병곡면에서 조금 더 들어가
함양의 뒷산으로 불리는 괘관산 아래 자리한
원산마을이 현희의 고향으로
그 마을 주민 대부분은 500여년 전
이방원의 무자비한 탄압을 피해
개경에서 피신해온 고려 말 판서를 지낸
수은 대감의 후손들인 경주 김씨들로
그들은 괘관산 기슭에서 약초를 채취 하여
읍내와 인근 수동. 생초 등지의 5일 장에 내다 팔거나
마을의 논 밭들 대부분을 소유한
"3대 천석 .3대 진사"를 자랑하는 하부자 집에
소작함으로 생계를 이어 오고 있는 데
현희는 그 하부자의 오촌 조카로
부친은 함양 공립학교를 나와
오랫동안 읍내 금융조합 서기로 근무하였기에
하부자 집에 견줄 바는 아니지만 그의 집 또한
사랑채와 안채가 쪽문으로 연결된
50여 칸에 달하는 기와집으로
병곡면 일대에선
하부자 문중의 또 하나 부자집으로 공인되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대동아 전쟁이 터지기 직전 하부자의 장남인 준희가
같은 일본 주오 대학에 다니는
현희의 하나 뿐인 오빠 광희와 방학을 맞이 하여
함께 관부 연락선에 내려 부산에서 버스를 타고 진주를 거쳐 망또를 휘날리며
함양 차부에 내려서면
훤칠한 키에
뚜렷한 이목구비까지 빼닮은 둘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탄성을 지르기 일쑤였고
차부까지 마중나간 당시 소학교에 다니던
현희는 같은 나이로 준희의 남동생인 택희와 함께 그런 둘의 손을 잡고
부러운 눈으로 쳐다 보는 또래 아이들 앞을 지나 면서
-너그들 알제! 우리 오빠다! 하며
으시대고 자랑하면서 함께 걸어가다 이내 오빠의 등에 업혀 가곤 했었다
함양 공립학교를 졸업한 후 진주여고를 1년 다니다가
사범학교로 진로를 바꾼
탁 보다 한살 위인 현희는
촉석루 아래 남강 건너 도동의
같은 진주 하씨 일가 인 집안 아저씨 집에서 하숙하였는 데
아침 저녁 하루 두번인 산청 함양 버스를 이용해
주말이나 방학을 맞이 하여 집에 갈때면
산청군 생초가 고향인 탁도 자연 그 버스에 동승하게 되어
오고 가는 길에 자연히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둘은 친구가 되었다
해방이 되어 진주한 미군의 중고 GMC트럭에
도라무통 철판을 펴서 뒤집어 씌워 만든 버스로
진주에서 산청을 거쳐 함양까지 근 100리길을 갈려면
족히 4시간 그것도 중간에 거쳐가는
원지 -산청읍내- 생초마을에 5일장이 들어서는 날이면
한시간여 더 걸림이 다반사인지라
생초 차부에 탁이 내림으로 끝나는 둘만의 동행길은
언제나 길었고 밤이 깊었었다
그날 현희도 가까운 동기들과 비봉산 아래
학교 인근 식당에서 송별식을 마치고
산청 생초 국민학교로 초임 발령이 남에
이제 돌아갈 일이 없는 도동 아저씨집엘 들러 짐을 싸서
큰 짐은 아저씨께 우편으로 부쳐달라고 부탁하고
몇가지 일상품 넣은 니꾸시꾸만 들고 차부로 향하다가
영미와 함께 가는 탁을 만나게 되었던 것으로
영미와도 친하고 탁과 영미가 연인임을 이미 알은 그녀 이기에
둘을 발견하고선 눈길이 미끄러운 데도 종종 걸음으로 다가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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