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을 깎다가

              

                  홍성희


책상 앞에 꾸부리고 앉아

휴지통을 마주하고 연필을 깎는다

뾰족하던 새까만 ()

수많은 지면 위 노동으로

닳아져 무디어지고 총기를 잃었다


그 총기를 살려내려

살을 깎아낸다

깎아 낸다는 것,

나야 무심히 깎아내는 것이지마는

제살을 깎이는 아픔이,

내가 느끼지 못한다고 그 아픔이 없으랴


뾰족한 심 하나를 위해

뭉텅 뭉텅 제살을 깎아 정수(精髓)만 남기는데

되레 나는  

오늘 하루 흘려보낸 편린을 붙들고 있다

상처위에 붙은 피딱지 같은 편린을


연필을 깎다가 보아 버린

내 삶속의 숱한 환영(幻影)들

연필을 깍듯이

버리고, 

버리고 

또 버릴 수 있다면

연필심 같은 정수(精髓)만 남아

가벼우리라 내 삶이



 2012.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