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행수륙도량(國行水陸道場) 두타산 삼화사(頭陀山 三和寺)


동해안 제일의 산수라 할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경관의 백미를 보여주는 명승 제37호 동해 무릉계곡 내에 위치한

천년고찰 삼화사는 1977년 원절터가 쌍용양회 채광권에 편입되어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삼화사는 10여개의 부속암자를 보유한 사찰로 제왕운기(帝王韻紀)를 집필한 동안거사 이승휴(李承休)가 불경을 빌려 볼 정도였다.

임진왜란, 한국전쟁 등에 의한 수많은 화재로 전소된 삼화사는 근래에 들어 현재의 건물이 중창되었다.

창건연대는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이 창건했다는 7세기 설과 문성왕 때 범일국사가 개창했다는 9세기 설이 있으며,

약사삼불의 창건설화가 있다.

현재 삼화사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25호인 삼화사 수륙재’,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2(삼층석탑, 철조노사나불 좌상)과 강원도 지방문화재인 국행수륙대재 의례서 2권을 보유한 전통사찰로,

매년 10월 소통과 화합의 정신을 내재하고 있는 수륙재를 설행하는 국행수륙도량이다.


강원도 동해시 삼화로 584 (삼화동) 대한불교조계종 삼화사




일주문(一柱門)












12지신상(十二支神像)


삼화사 경내에 모셔져 있는 12지신상(十二支神像)2010515~18일에 결쳐서,

인천국제공항 동편 입국장에서 전시하였던 것을 20159월경에 삼화사 주지 효림스님께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 모셨다.


12지신상은 십이신장(十二神將) 또는 십이신왕(十二神王)이라고도 불린다.

약사경(藥師經)’을 외우는 불교인을 지키는 신장(神將)이다.

이들은 열두 방위(方位)에 맞추어서 쥐··호랑이·토끼·····원숭이···돼지 등의 얼굴 모습을 가지며

몸은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약사경에 의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이 끝나자 대중들 가운데서 12야차대장이 나와

부처님께 자신들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삼보에 귀의하며,

약사경을 널리 펼칠 뿐만 아니라 세세생생 약사경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을 보호하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여 해탈에 이르게 할 것을 서원한 호법(護法)신장들이다.

약사여래는 보살 시절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12가지 큰 서원을 세웠다.

이 속에는 약사여래가 단순히 중생의 병고를 구제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의복이나 음식 등의 의식주 문제는 물론

사도나 외도에 빠진 자, 파계(破戒), 범법자 등까지도 구제한다.

12대원 이외에도 극락왕생을 원하는 자. 악귀를 물리쳐서 횡사를 면하고 싶은 자,

온갖 재앙으로부터 보호받고 싶은 자들이 약사여래의 명호를 부르면서 발원하면 구제를 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

또 외적의 침입과 내란, 성수(星宿)의 괴변, 일월(日月)의 괴변, 때 아닌 비바람, 가뭄, 질병의 유행 등

국가가 큰 재난에 처했을 때도 약사여래의 본원력을 통하여 구제받을 수 있고, 12호법 신장들에 의해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천왕문(天王門)







적광전(寂光殿)




삼화사 삼층석탑(三和寺 三層石塔) - 보물 제1277


이 탑은 2중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부는 아래층 기단이 다른 석탑에 비해 비교적 높으며 각면에 2개의 우주(隅柱)1개의 탱주(撐柱)를 세웠다.

아래층 기단 갑석은 평평하고 앏고 위층 기단 갑석(甲石)1장의 판석이며,

그위에 탑신괴임(別石)을 두어 탑신부를 받치고 있다.

1997년 적광전 앞에서 지금의 자리로 옮기면서 해체하여 복원하였는데 이때 위층 기단 안에서 목제함이 발견 되었다.

그 안에는 곱돌로 만든 소형탑,청동제 불대좌조각,철조각 등이 들어있는 사리장치가 발견 되었다.

기단의구성이나 별도의 석재로 탑신괴임을 둔점 등으로 미루어9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짐작된다.






심검당(尋劍堂)





약사전(藥師殿)




육화료(六和寮)






범종루(梵鐘樓)





세심당(洗心堂)





감로수(甘露水)




극락전(極樂殿)




삼성각(三聖閣)













천주교 신자의 기와 불사(佛事)

부처님과  하느님의 慈悲恩寵, 사랑이 充滿家庭이 되게 하소서



불사(佛事)란 사찰에서 비용을 마련하여 어떤 일을 행하는 것을 말하는데,

불사에는 폐허가 된 사찰을 다시 세우는 중창불사’, 지붕에 기와를 다시 입히는 기와불사’, 범종을 주조하는 범종불사’,

불상에 금색을 다시 칠하는 개금불사’, 가사를 만들어 승려들에게 보시하는 가사불사등이 있다.




삼화사사적비(三和寺事蹟碑)




원곡당대선사지비(元谷堂大禪師之碑)와 원곡당대선사부도(元谷堂大禪師浮屠)




운암당상준대사부도(雲巖堂尙俊大師浮屠)








삼화사 풍경 (최효열)


마음 한구석에 세든

한 줌 어둠의 세상을

자비의 길로 인도하는,

청옥산 바람 맑을수록

푸른 소리로 운다.

뎅그렁 뎅뎅, 뎅뎅 뎅그렁




삼화사 국행수륙대재의 역사(歷史)와 설행목적(設行目的)


삼화사 국행수륙대재의 역사

삼화사에서 조선시대(태조 4) 최초로 국행수륙대재(國行水陸大濟)가 설행되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동해 삼화사와 강화도의 관음굴. 거제도의 견암사에서 건국 과정에 희생된 영혼을 위무하고

친 고려 성향의 세력들을 포용하여 백성들과 소통.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삼화사에서 수륙대재를 설행하였는데 이것이 조선시대 수륙재의 시원이다.

태조실록양촌집(陽村集)’에 의하면 삼화사에서 국행수륙대재를 처음 설행하게 된 배경은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恭讓王)과 두 아들이 삼척에서 교살되었기 때문이며,

이들 왕씨 일가의 영혼을 달래어 민심을 수습하고 백성과 소통, 화합하기 위하여

매년 봄과 가을 2회에 걸쳐 왕실주관으로 수륙대재를 설행하였다.

이러한 배경으로 삼화사에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天地冥陽水陸齋儀纂要)의 수륙재 의례서가 전해지고 있으며,

이 의례서는 삼화사에서 국행수륙대재가 설행되어 온 역사적 배경과 함께 서지학적 중요성이 인정되어 강원도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예로부터 동해 삼척지역은 군사적 요충지였다. 임진왜란, 의병운동, 6.25전쟁 때 두타산성과 무릉계곡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포함하여

월남전 등 수많은 전란을 겪으면서 희생된 유주무주 고혼들을 천도하고 민심을 달래는 역할을 삼화사가 담당하였다.

이러한 배경으로 지역민은 물론 온 백성들의 소통과 화합의 장으로 활용된 수륙재의 전통이 삼화사에서 전승되고 있다.

 

삼화사 국행수륙대재의 설행목적

삼화사 국행수륙대재는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天地冥陽水陸齋儀纂要)’란 의례서에 근거를 두고 있다.

수륙재의 설행목적은 의례서의 명칭에 나타나듯이 하늘과 땅(天地), 죽은자와 산자(冥陽),

사성과 육범(水陸) 등의 모든 존재가 서로 소통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삼화사 국행수륙대재의 정식 명칭은 수건법계성범천지명양수륙무차평등보도대재승회(修建法界聖凡天地冥陽水陸無遮平等普度大齋勝會).

즉 신분의 귀천, 남녀노소 차별 없이 평등한 법회로 불보살님과 조상님을 비롯하여

수륙재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서로 소통하여 법계를 이루는 성스러운 의례이다.

수륙대재 기간 수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의식공간은 의례행위와 예능행위가 어우러져

축제적 분위기를 자아내 모두가 환희에 찬 즐거움을 함께하는 또 다른 목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