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봉투 배달시켰는데 택배기사를 구속 기소”(한겨례)

한겨레 | 입력 2012.02.21 21:50 | 수정 2012.02.21 23:30

 

'빼곡했던 노란 봉투' 다 어디로…검찰, 돈봉투 서둘러 봉합
고승덕에 건넨 300만원만 혐의 입증 '초라한 수사'

박희태 출금 1억9천만원 중 나머지 사용처 못밝혀
조정만 가족계좌 '수상한 1억'도 "관련 없다" 덮어

한달 반 동안 계속된 검찰의 새누리당(옛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 사건 수사는 결국 초라하게 끝이 났다. 검찰은 21일 박희태 국회의장을 현직 의장으로는 처음으로 기소하며 수사를 종결했다. 박 의장에겐 2008년 전당대회 당시 현금화한 1억9000만원 가운데 고승덕 의원실에 전달됐던 300만원 살포의 '공범'이라는 혐의가 적용됐다. 그러나 검찰 수사는 거기서 멈춰 섰다. 검찰은 "관련자들이 진술을 하지 않아 더이상 밝혀내지 못했다"며 수사 현실의 어려움을 호소했지만, 검찰 내부에서는 "의장은 현직이니 그렇다 쳐도, 핵심적인 역할을 한 사실이 드러난 김효재 전 수석에 대해 구속영장 청구도 하지 않은 채 수사를 종결한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검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이날 수사 결과를 발표한 정점식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는 "솔직히 말하면 300만원도 밝힐 수 있으리라는 자신이 수사 초기엔 10%도 없었다"며 "증거판단에 따르자면 굉장히 고민했어야 할 부분이지만, 상식적으로 봤기 때문에 박희태 의장을 기소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희태 국회의장,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 조정만 국회의장 정책수석 등 핵심 피의자들이 한결같이 혐의를 부인해 증거도 불충분한 상태였지만 '상식'에 입각해 현직 국회의장을 처음으로 기소하는 성과를 냈다는 것이다.

"김효재 불구속, 정통에서 벗어나"그러나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한 수사"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비판이 검찰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봐주기 수사'의 대표적인 행태로 꼽히는 게 김 전 수석에 대한 불구속 기소다. 검찰은 그동안 자신의 혐의를 부인할 경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보고 구속영장을 청구해왔다. 구속 상태에서 강제수사를 통해 '닫힌 입'을 열게 하는 방식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300만원 돈봉투 사건과 관련해 모든 혐의를 전면 부인한 김 전 수석에게는 이런 정통 수사기법을 동원하지 않았다. 구속된 안병용 원외조직 특보와의 형평성 문제를 넘어서, 돈봉투 사건의 총괄 기획자로 보이는 김 전 수석에 대한 구속수사를 통해 다른 의원들에게도 돈봉투를 건넸는지, 안 특보에게 2천만원 살포를 지시한 사실이 있는지를 밝혀냈어야 한다는 게 특별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검찰은 지난달 16일 국회의장 부속실과 박 의장의 측근인 조정만 정책수석, 이봉건 정무수석의 사무실과 집을 압수수색하면서도 당시 현직에 있던 김 전 수석의 자택과 사무실은 그냥 넘어갔다. 검찰은 캠프 재정 담당이었던 조정만 국회의장 정책수석이 박 의장의 지역구였던 경남 양산의 방산업체 대표에게서 1억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포착하고도 "사건의 본류가 아니"라며 서둘러 '가지치기'에 나섰다. 박 의장의 '금고지기'인 조 수석을 압박할 카드를 스스로 폐기해버린 셈이다.

1억9천만원 중 확인된 건 300만원검찰은 고승덕 의원이 받았다는 300만원과 '박희태 캠프'의 안병용 원외조직 특보가 살포를 지시한 2000만원의 출처를 찾기 위해 계좌추적에 나섰고, 그 결과 박 의장이 1억9000만원을 현금화한 사실을 확인했다. 박 의장이 경선 직전 마이너스통장에서 인출한 1억5000만원, 라미드그룹에서 받은 수임료 4000만원이 그 돈이다. 고승덕 의원뿐만 아니라 다른 의원들에게도 돈봉투가 전달됐을 개연성이 컸고, 안병용 특보가 살포를 지시했던 2000만원의 출처도 확정해야 하기 때문에, 검찰로서는 1억9000만원의 사용처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검찰은 "현금으로 인출돼 사용됐기 때문에 어디에 쓰였는지는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다"고 추적의 어려움을 설명하면서, "박 의장 쪽에 자료 제출을 요구했을 때는 제출이 안 됐고 오늘 새벽에야 자료를 제출하겠다고 해왔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불법 경선자금으로 의심되는 1억9000만원 중에 고 의원에게 전달됐던 300만원을 제외한 1억8700만원의 사용처는 전혀 확인하지 못한 채 서둘러 수사를 종결한 셈이다. 한 중견검사는 "자폭이나 다름없었던 300만원 건으로 기소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창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김 전 수석 등의 구속 수사를 통해 의혹을 더 밝혔어야 했다"고 말했다.

김태규 노현웅 기자dokb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