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에 첫 발을 디뎠던 곳 크라코프.

여름날 새벽에 도착한 이 도시의 분위기는 출근을 하기 위한 분주한 시민들에 대한

활기찬 도시라는 느낌보다는 음산하고 시민들의 눈에서 어두운, 우울한 느낌을 먼저 느끼게 되었다. 왜일까?

 

그 답은 여행가방을 맡기고 처음 찾아간 곳 아우슈비츠[오슈비엥침] 강제수용소에서

찾을 수 있었다.

 

1939년 폴란드를 점령한 독일군은 1940년 4월 첫번째 수용소인 제1수용소를 건립하고 히틀러의 명령으로

1941년 대량학살 시설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1941년 10월에는  이 곳에서 약3km 떨어진 

브레제진카(Brezezinku)마을 외곽에 제2수용소를 만들었다. 제2수용소는 제1수용소의

약10배로 10만명을 수용할 수 있었으며 제1수용소의 인원이 넘치자 이를 수용하기위해 지었다고한다.

그러나 제2수용소는 독일이 전쟁에 패배하면서 사실을 은폐하기위해 폭파하고 도주해

지금은 건물의 원형들이 대부분 파괴되어 있고 제1수용소 보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이곳은 애초에 폴란드의 정치범들을 수용하기 위해 지어졌다가 점차 그 대상을 확대해

유대인, 집시, 심지어는 독일 장애인들까지 수용하는 곳이었고, 그 자체가 지옥이었다.

 

크라코프 기차역에서 갤러리 쇼핑몰의 반대쪽으로 나가면 시외버스터미널이 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가는 버스는 소형, 대형 2가지가 있는데 대형버스를 권한다.

아우슈비츠 행 버스, 소형버스를 타면 에어컨도 없고 창문도 열리지 않은채 1시간30분을 가야한다.

1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수용소는 한적한 시골마을에 있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하늘에서 찍은 항공사진>

 

수용소에 들어서기 전에 있는 작품. 철조망에 묶여 매말라가는 수용소사람들의 비참한 삶을

눈으로 가슴으로 느끼게 한다.

 

"ARBEIT MACHT FREI" 노동이 자유를 가져온다 라고 해석을 할 수 있는데, 그들에게는 현세의

자유는 끝내 오지 않았다.

 

"HALT" "정지"라는 표지판 너머로 보이는 철조망. 수용자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서 철조망사이로 통행을

하게 했고, 그 철조망에는 고압전류를 흐르게 했다. 수용소에서 사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사람들은 마지막 철조망에 매달려 자살을 하기도 했다.

                                        <싸이클론B 가스가 담겨있던 깡통>

독일 나치는 사람들을 총살하는데 총알도 아까웠던지 보다 대량으로 학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던 중, 한 간부가 자동차 안에서 잠을 자다가 배기가스에 중독되어 목숨을 잃을 뻔 한

적이 있는데 그에 착안하여 처음에는 가스실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자동차의 배기가스를 바로

가스실로 내뿜어 살상을 자행했다.

그러다가 독가스를 이용한 대량학살까지...

목욕을 시켜준다며 옷을 다 벗기고 들어가면 따뜻한 물이 천장에서 나올 것이라며 사람들을 유인했다.

사람들은 그 말을 찰떡같이 믿고 들어가보니 진짜 천장에는 수도꼭지가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즐거워하는 순간 물이 아니라 거기서 독가스가 흘러나오고, 살기위해 벽을 끌고, 아우성을 질러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가스실로 들어가는 입구>

"NO ENTRANCE" 그 당시는 "NO EXIT" 살아 걸어나오는 사람은 없었다.

                                                     <화장터>

가스실을 나오면 바로 이 화장터가 있다. 죽어있는 시체에서 삭발을 하고 금이빨이며 장신구를 다

빼앗아 이곳 화장터에 화장을 했다. 잘려진 머리카락이 2톤이 넘었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학살되었는지는 말이 필요없을 정도다. 머리카락은 질 좋은 카펫이나 양복을 만드는데 이용되었다.

 

                                             <수용자들이 �던 안경> 

                                         <수용자들이 썼던 의족 및 의료보조기>

 

                          <수용자들이 들고 들어온 가방, 각자의 이름이 적혀있다>

이 가방을 들고 수용소로 들어올 때에는 살아서 돌아가겠다는 희망이 있었을 것이다.

                                 <전시장 한켠을 가득 메운 수용자들의 구두솔>

             < 다양한 구두약, 수용자들이 얼마나 다양한 곳에서 끌려왔는지를 알 수 있다>

                                                       <화장실>

 

                                                       <숙소>

짐승의 우리만도 못한 곳에서 매일 밤을 보내고, 옆에서 죽어가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했다.

나치는 점점 늘어만 가는 수용자들에 수용공간이 부족해 한칸에 3~4명까지 자게 하고 그것도

모자라 다시 2수용소를 만들기까지 했다.

 

수용자들이 가장 무서워했던 11수용소의 지하감옥. 그 지하감옥의 창살밖으로 보이는 총살벽.

총성과 함께 죽어가는 수용자들.

지금도 독일의 국민과 학생들은 조상이 저지는 부끄러운 과거를 보고 느끼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그리고 헌화와 함께 깊은 마음으로 사죄를 한다.

 

수용소의 벽에는 수용자들의 사진이 수없이 걸려있다. 끌려온 날짜와 나이, 직업, 그리고 사망날짜까지

기재되어 있다. 여쌍둥이의 사진에서 동생은 먼저 죽고, 2개월후에 언니의 사망날짜가 적혀있다.

그 사진속 사람들의 눈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을 포기한 듯한 우울하고

눈물이 고인 사람들의 눈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일본인들은 폴란드의 단체관광 코스에서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제외한다고 한다. 정부에서도 그것을

권한다고 한다. 내가 이날 갔을 때에는 일본인 단체관광객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관광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말을 하고 있을까라는 의문과 아직도 고개를 들고 다니는 일본에 대한

분노가 나 역시 가슴깊은 곳에서 치밀어 올랐다. 독일이 폴란드에게 했던 사죄와 반성, 보상, 하지만

 과거에 대한 사죄와 반성이 없는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