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작은 도시 크라코프는 슬픈 과거로의 여행과 경이로운 과거로의 여행 2가지 모두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크라코프 중앙역에 붙어 있는 갤러리아 앞 버스 정류장에서 304번 버스를 타고 종점 바로 앞 정류장에서 내리면

바로 소금광산 입구 밑이다.

 

                               <비엘리츠카 소금광산 앞까지 가는 304번 버스>

 

입구를 들어선 나에게는 단지 평범한 건물 하나와 앞에 꽃밭을 가지고 있는 잔디밭, 그리고 줄을 서있는

관광객들이 눈에 들어왔다. 흔히 상상하는 거대한 바위가 땅에 묻혀 땅위로는 작은 돌기가 나와 있듯이

말이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의 눈앞에 어떤 것이 펼쳐지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소금광산 입구>

 

 2000만년전 카르파티아 산맥이 형성될 시기에 이곳은 본래 바다였다. 점차 바다는 소금층을 뚜렷이 남기면서

증발되어 갔고, 카르파티아 산맥이 이곳에 자리잡게 되면서 소금층은 거꾸로 세워졌고, 암염덩어리로

변해갔다.

13세기 무렵부터 채굴되어 700년 동안에도 계속 채굴되어 폴란드 왕국 수입의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고,

대략 큰 홀을 하나 채굴하는데는 50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하니 한사람의 삶이 소금광산에 바쳐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끝이 안보이는 계단. 이 소금광산은 지하 135m까지 연결되어 있으며 각 층마다 조각된 아름다운

소금 예술품들을 만날 수 있다.

 

마지막 53번 층의 계단. 이제부터 본격적인 소금광산 여행이 시작된다. 광산의 가이드는 전문 가이드의

안내로 진행이 되는데 안타깝게도 우리말 가이드는 없다. 각 언어별 가이드는 시간대 마다 다르게 배치되어

있으므로 출발 시간을 잘 체크해야 한다. 

 

                                                      <킹가공주>

 

소금광산에는 여러가지 전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킹가 공주의 전설이다. 

킹가 교회의 전설을 살펴보면 크라코프의 왕 볼레스와프와 결혼하기 위해 폴란드로 향하던 헝가리의

킹가 공주에게 그의 아버지 벨라왕이 결혼 지참금으로 소금광산을 주었는데 헝가리를 떠나기전 트란실바니아의

소금물 습지에 있는 샘에서 발길을 멈추고 약혼 반지를 그 속에 던져 넣었다. 크라코프에 가까워졌을때

공주는 구덩이 한군데를 파내라고 했는데 거기에는 한덩이의 소금과 약혼반지가 있었다.

폴란드에는 필요한 소금자원을 얻을 수 있었고, 광부들로부터 공주는 영원한 존경대상이 되었다.

비엘리치카 암염 광산의 역사는 이 전설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러하여 킹가 공주는 비엘리치카 암염 광산과 그 주변에 발전한 비엘리치카 마을의 수호신과 같은

존재가 되었고, 1999년에 성녀으로 책정되었다.

 

 

                                      <코페르니쿠스의 방문을 기념한 조각상> 

가이드는 바닥과 벽 모든 것이 소금이라고 얘기하면서 손으로 찍어서 맛보라고 한다. 바닥은 마치 대리석

바닥같이 반짝였으며 그 보다도 훨씬 더 단단했다. 실제 대리석의 강도가 2인데 반해 이 소금암염은 3~4

이니까 대리석보다 더 강도가 높다.

 

새로 굴착한 바위 틈에서 새어 나오는 메탄가스가 스며나와 광산내에 화재외에도 폭발의 위험이

상주해 있었다. 누구도 하고 싶지 않은 가스를 태워야 하는 일을 나무막대 끝의 솜에 불을 붙인

다음 메탄가스를 제거해야 했는데 사람들은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참회자'라고 했다.

  

                                                     <성 킹가 성당>

이 소금광산에도 예배당을 지어 기도를 할 수 있게끔 했는데 1696년 예배당에서 시작된 대화재로 인해

가연성 재료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고, 만 2년 완전 소금으로 만들어진 성 안소니 예배당을 지어

예배를 계속 볼 수 있도록 했다. 시간과 물에 용해되어 조금씩 그 모양이 변형되어 갔지만 그 예술적

가치는 매우 높다.

19세기말 광산당국은 100m지점에 사용하지 않는 홀에 새로운 예배당을 짓기로 결정했고, 70년 동안

요제프 마르코프스키, 그의 동생 토마시, 1927년 토마시 사망후 안토니 비로데크에 의해서 예배당은

본제단, 설교당, 예배당, 신약성서의 내용으로 장식되어 갔고, 예술적으로 승화되었다.

이 모든 것들은 광산노동자들이 곶갱이, 나무망치의 도구와 노동력만으로 조각한 것이다.

 

                                                     <성당 제단>

                               <예배당의 벽은 신약성서의 내용을 조각되어 있다>

 

                               <최고의 걸작으로 알려진 최후의 만찬 조각상>

현재에도 1년에 3번 장엄미사(킹가축일[7/24], 성 바르바라 축일[12/4], 성탄절 이브)를 진행하고 있다.

 

 

                                     소금광산의 첫번째 왕실의 후원자 키즈미르

 

                                   소금광산을 지키는 땅의 요정 솔리요프키

 

                                                        괴테 조각상

                                      

 

                                           세계에서 가장 낮은 레스토랑 

 

이 곳 소금광산에는 각가지의 편의시설이 모두 있는데 레스토랑, 탁구장, 콘서트 홀, 예배당,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인터넷시설, 박물관 등 땅위의 시설을 고스란히 가져다 놓아 지하에서 생활해도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을 것만 같다.

 

더욱 더 놀란 것은 우리가 본 소금광산은 전체의 1/3(64m~135m)도 되지 않는 다는 사실이었다.

광산에는 총 2040개의 방이 있으며 지하 1단계(64m)~9단계(327m)까지 갱이 뚫여 있고, 총 9층,

총 길이가 300km에 달한다.

인터라켄의 융프라우요흐를 올라가면서 인간의 한계는 어디쯤일까의 의문이 다시금 느껴지는 곳이고

경탄을 금치 못했다. 눈 앞에 펼쳐지는 예술에 한번쯤 놀라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