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월 가량의 서유럽 유랑을 마치고 드디어 발칸반도로 날아간다. 로마에서 저가항공을 타기 위해 장화(?)반도의

서쪽에 있는 페스카라라는 해변도시로 4시간 가량 기차로 이동을 했다.

아드리아해를 끼고 있는 페스카라에는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고, 사람들은 마치 하늘로부터

축복을 받는 듯한 모습으로 해변가에 누워있다. 

                                                     페스카라 해변가

on air 항공을 이용해 아드리아해를 건너 도착한 곳은 두브로브니크. 벌써 해가 지고 있어 바다와 함께 어우러진

도시의 정경을 즐길 수는 없었지만 눈 아래로 펼쳐지는 야경 또한 좋은 볼거리였다.

 

공항에서 올드타운으로 향하는 버스이다. 공항에도 환전하는 곳이 있지만 환율이 좋지 않으므로 환전은

올드타운에서 하는 것이 좋다. 버스비는 5유로만 주면 올드타운의 필레게이트까지 데려다 준다.

 

크로아티아는 민박집을 나타내는 'SOBE'라는 간판이 민박집 앞에 붙어져있다. 그리고 'APARTMANT'라는

간판이 있으면 하루의 숙박료가 2~3배정도 비싸다. 버스에서 내리자 말자 동문앞에 있던 민박집 주인아줌마들이

내리는 손님들에게 호객행위를 하기위해 몰려든다. 그리곤 흥정에 들어가게 되는데 때는 성수기인지라

숙박료가 450~500kn에 달했다. 1유로가 7kn정도 했으니 상당히 비싼 가격이라 할 수 있다.

올드타운에 있는 할머니의 민박집을 선택 300kn에 합의를 보고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여느 유럽과는 달리 밤 11시가 넘어도 상점은 환한 불을 켜고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고, 여기에 호응이라도

하듯 관광객들은 거리의 악사와 상점들을 오가며 분주하기만 했다.

그 어디에도 내전의 아픈 상처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신나는 째즈음악이 두브로브니크를 가득 메우고 있다. 시원한 맥주나 와인으로 이 분위기에 젖어 들어있을 때면

세상의 근심걱정은 모두 잊은채로 몸은 흘러나오는 장단에 맞춰 함게 박자를 맞추게 된다.

 

            

크로아티아의 역사는 20년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고,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도시에도

다시는 관광객이 찾지 못할 정도의 뼈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1991년 6월. 크로아티아가 옛 유고연방에서 독립을 선포하면서 내전이 시작된다. 독립을 선언하자 유고연방과

크로아티아 내의 소수민족인 세르비아계가 합세해서 마치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을 공격하듯이 북쪽의 성위에서

바다를 포위하고, 물과 식량을 모두 봉쇄,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하고, 그 양상은

더욱더 심해져갔다. 유고연방의 입장에서 보면 부유했던 크로아티아의 독립은 곧 유고연방의 붕괴와 직결될

뿐 만이니라, 소수민족의 독립도 쉬워지므로 어떤 수를 써서라도 이를 막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불타는 성 프란시스 수도원 옆 상점

유고연방은 다양한 종교, 다양한 문화, 다양한 민족이 함께 공존하면서 때로는 적대적으로 때로는 우호적으로

가까스로 유지되어오고 있었는데, 혹 누구하나라도 '민족'을 건드리거나 '종교'를 건드리면 언제 터질지 모를는

화약고나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1979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던 두브로브니크가 무수히 떨어지는 포탄에 망가지는 모습을

본 서구 지식인들은 두브로브니크를 살리자며 요새의 앞바다에 배를 띄우고 시위를 벌인다.

 

대성당 뒤에 있는 새벽과일시장. 갖가지 싱싱한 과일과 쨈, 야채, 라벤다 향수와 기름등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

 

넥타이 상점. 이 상점에 가면 두브로브니크, 크로아티아를 상징으로 디자인된 넥타이 등 예쁜 넥타이들이 많다.

대략 499kn~2000kn정도.

 

크로아티아하면 유명한 것이 볼펜과 넥타이이다. 특히 넥타이의 유래가 크로아티아에서 나왔다는 것은

생소할 것이다. 그 유래를 보면 크로아티아의 크로아트 연대 병사들이 터키 전투에서 승리한 후
파리에 개선하는 시가행진을 할 때 루이 14세에게 충성을 맹세하기 위해 파리에 개선한 크로아티아 지방의

용병부대가 앞가슴에 크라바트(Cravate)라는 장방형의 천을 매고 있었는데 그것을 본 황제 루이 14세와

귀족들 사이에서 이러한 스타일이 선풍적인 관심을 끌어 이것을 흉내내면서 유행하게 된 것입니다.
 

         2km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올드타운은 하나의 요새다. 성벽에 올라서 본 플라차거리

'아드리아해의 진주'라는 수식어를 항상 달고 다니는 두브로브니크는 말 그대로 눈부실 정도로 아름답다.

이 작은 도시가 믿기지는 않겠지만 13세기에는 지중해의 중심도시였다.

11세기 지중해의 강국 베네치아가 아드리아해를 시작으로 에게해, 흑해에 이르는 바다의 고속도로를

건설하는데 온갖 힘을 다할 때 이 곳 두브로브니크는 아주 중요한 길목에 해당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올드타운의 옆 노브리예나체 요새를 지어 두브로브니크의 지배를 더욱 강화하고 압박했다.

베네치아가 3개월동안 자리를 비운사이 두브로브니크 사람들은 베네치아가 넘볼 수 없게 높이 25m 성벽의

두께도 1.5~3m로 아주 튼튼하게 도시를 애워쌓고 베네치아인들이 감히 이 도시를 넘보지 못하게 하려는

두브로브니크 사람들의 힘과 의지가 어느정도인지를 얼마나 대단한지를 가늠할 수 있다.

 

                               성벽에서 바라본 아드리아해와 노브리예나체 요새

 

   아드리아해 향해 늠름하게 서 있는 대포. 그 누구라도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묻어있는 듯하다. 

 

                                                         성벽위 초소

두브로브니크에 가면 빼먹지 말아야 할 하이라이트인 성벽투어. 천천히 거닐며 코발트 빛 바다와 잘 어우러진

요새안 붉은 지붕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지상 낙원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구나~~~

성벽은 8시~5시까지 열며 올라가는 곳은 4군데가 있다. 필레게이트와 북문, 동문, 시청옆에 그 입구가 있다.

학생이라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학생증. 할인율이 높다. 입장료는 50kn, 학생 20kn이다.

 

중세 최고의 기사로 꼽히는 기사 롤랭의 기둥이다. 1418년 롤랭의 동상을 세우고 공화국 국기게양대로 사용했다. 

 

                                                수호성인 '성 블라이세'

10세기 즈음 베네치아의 선박이 물을 채워 항해를 계속한다는 이유로 이곳에 머물렀는데, 실은 밤을 틈타

정복의 야욕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던 반면 블라이세는 성 슈테판 성당 신부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그 신부는 시 의회에 이를 알림으로써 도시의 안전을 지킬 수 있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해변, 해변에서 삶의 여유로움을 자랑하는 사람들. 그것을 지켜주기라도 하듯 든든한 요새가

붉은 지붕과 함께 해변을 가득 메우고 있다.

 

                      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두브로브니크의 자수제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