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인터뷰] 故 장진영 부친, '딸 이름으로 장학사업 하는 이유는'
출처 enews24 | 작성 이인경 | 입력 2013.08.26 17:04 | 수정 2013.08.26 18:02
[enews24 이인경 기자]

오는 9월 1일 4주기를 맞는 故 장진영에 대해 그의 부친 장길남 씨가 "우리 딸 아이의 뜻과 영혼을 오래 기리기 위해 장진영 기념관을 만들고, 계암장학재단을 설립해 장학사업을 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장길남 계암장학재단 이사장은 최근 전북 임실군 운암면 계암 마을에 위치한 장진영 기념관과 계암장학재단 사무실에서 tvN 연예정보프로그램 'eNEWS' 취재진과 단독으로 만났다. 그는 2010년 딸의 소장품 전부를 서울 집에서 이곳으로 옮겨와 장진영 기념관을 만들었으며, 그 옆에 고인의 유지를 받드는 장학재단인 계암장학재단을 설립해 직접 운영하고 있다.

계암은 장진영의 호이며, 선산이 위치한 계암 마을의 지명에서 따온 것이기도 하다. 부친은 현재 전주에 살고 있지만 차로 20분 거리인 이곳을 매일같이 드나들며 가꾸고, 찾아오는 팬들을 직접 맞으며, 딸이 못다한 장학사업이라는 선행을 이어가고 있었다.

장 이사장은 "딸 아이가 죽기 열흘 전인가, 내 손을 붙잡고 '아버지, 우리 모교에 5000만원만 장학금으로 내주세요'하더라. 그 전에도 전주중앙여고에 1000만원, 2000만원씩 장학금을 기탁한 것으로 알고 있다. 최종적으로 5000만원을 전달했는데 그 돈으로 장학회를 만들고, 정문에다 표석을 세워줬다. (위암) 투병 중일 때에도 후배들이 격려의 편지를 많이 보내왔다"고 말했다.

이어 "원래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싶어 했다. 채 피지도 못하고 빨리 져버려서, 우리 딸 뜻을 내가 대신 이어주고 싶었다. 진영이 유산과 내 사재를 보태서 계암장학재단을 만들었다. 매년 20명 안팍으로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내년 5주기 때에는 더 의미 있는 일을 해보려고 구상 중이다. 사람이 돈 가지고 가는 것도 아니고 다 쓰고 갈려 한다"고 덧붙였다.

부친이 세운 장진영 기념관에는 37세의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고인의 일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청룡영화상 성실납세자상 문화훈장 등 여러 상패와 레드카펫을 빛냈던 아름다운 드레스, 가방 신발 등 소품, 촬영장에서 써내려간 일기와 신분증, 상명대 의상학과 재학 시절 만들었던 습작들, 가족 그리고 남편 김영균 씨와 함께 했던 추억이 담긴 사진 등이 기념관을 가득 채우고 있다.

또한 옆 건물인 계암장학재단 사무실 내에는 서울 집에서 가져온 장진영이 쓰던 침대, 소파, 노래방 기계, 전축, CD와 DVD 등을 모두 설치한 방과 거실이 있어 고인의 숨결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다.

장길남 씨는 "생전에 딸아이가 꽃을 무척 좋아했다. 대나무도 오래 키웠는데 기념관 내에 있는 대나무는 딸이 떠난 뒤 내가 키우고 있다. 사람(장진영)은 갔지만, 이걸 우리 아이의 얼굴이라고 생각하고 쳐다본다. 만져보고 물도 주고 그런다"고 털어놨다.

이어 "이곳이 외지긴 했지만 건물을 독특하게 지어놔서 그런지 관광객들도 간혹 들린다. 섬진강 하류부터 거슬러오면 참 아름답고 보기가 좋다. 관광객들을 위해 수시로 정원도 가꾸고 내부도 청소한다. 원래 관리인을 뒀는데 차라리 그 월급으로 다른 좋은 일을 하면 어떨까 해서 내가 직접 일한다. 동네 이장님이 많이 도와주시기도 하고"라며 살짝 웃었다.

장길남 씨와 그의 아내는 때론 이곳에서 자고 가기도 한다고. 장 이사장은 "모녀간의 정이 각별했다. 사형(시한부 위암) 선고를 받고 3개월밖에 못산다는 말을 듣자마자 딸이 이곳으로 내려와 가족 사진을 찍자고 했다. 그때 사진이 기념관 입구쪽에 걸려 있다. 딸 아이의 흔적을 조금도 내버릴 수가 없더라. 계암장학재단 사무실 2층을 집처럼 만들어서 이곳 관리하고 정돈하다가 자고 가기도 한다"고 밝혔다.

그는 "딸이 멕시코로 치료받으러 떠날 때만 해도 다시 일어나서 의욕적으로 연기하겠다는 희망이 컸다. 그곳에서 신발을 세켤레 사서, 나중에 그 신발 신고 연기하겠다고 했는데 결국 새 신발인 채로 모두 이곳에 전시하게 됐다. 개인 사업체를 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딸의 유물을 정리하고 있다. 찾아오는 분들을 위해 주변 조경도 하고, 선산 관리도 하며 그렇게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장진영 추모관이 있는 분당스카이캐슬 추모공원 관계자는 "부친께서 기념관을 찾는 팬들과 관광객들에게 매우 가슴 따뜻하게 대해 주신다. 커피도 직접 타주시고, 식사 대접을 해주시기도 한다. 훌륭한 부모 밑에서 고인이 아름다운 뜻을 키운 것 같다. 이제는 그 뜻을 부친이 대신 이어가고 있으니 안타깝지만 국민들은 오래도록 장진영이란 배우를 추억하고 사랑할 것"이라고 전했다.

장진영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은 전주중앙여자고등학교와 전북대학교 관계자들 역시 "고인은 사회에 귀감이 되는 큰 유산을 남겼다"며 감사와 추모의 말을 전했다.

전주중앙여자고등학교 노형식 교감은 최근 eNEWS와의 인터뷰에서 "장진영 씨가 세상을 떠나기 전부터 매년 1000만원, 2000만원씩 꾸준히 장학금을 기부했다. 또 운명 직전에 부친에게 우리 학교에다가 5000만원을 꼭 전달해달라고 유언을 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그 돈을 기탁받아 2009년 9월 1일 장진영장학회를 설립했다. 신입생들 중 성적 우수자 3명에게 매년 30만원씩 학비를 지원했으며 졸업생 중 성적우수자에게 등록금 보조로 100만원을 지급해왔다. 고인은 살아 생전에 학교에 많은 사랑을 베풀었던 후배이자 제자"라고 밝혔다.

차연수 전북대 기획처장은 "고인의 부친께서 딸을 먼저 보낸 비통함 속에서도 딸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딸의 영혼을 영원히 남기고자 하는 생각에서 장학 사업을 결심한 것으로 알고 있다. 고인이 꿈많은 학창시절을 보낸 전주에 있는 학교라, 전주중앙여고와 우리 전북대학교에 큰 금액을 기탁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실 1억원을 자신의 모교도 아닌 대학에 내놓는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만큼 특별한 목적과 뜻이 있었다고 본다.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생계가 곤란한 학생들, 성적우수자, 예체능 특기자 등에게 매년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작년에는 6명, 올해는 10명의 학생이 장학금을 받아서 글로벌 리더로서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특히 우리 학교는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취업이 됐는지 등을 다 추적해서 이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지를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장진영은 1년여간의 위암 투병 끝에 지난 2009년 9월 1일 서른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안타까움을 안겼다. 장진영의 아름다운 선행에 대한 이야기는 27일 오전 11시 30분과 오후 6시 방송되는 tvN 연예정보프로그램 'eNEWS'의 화요일 코너 '기자 대 기자'에서 공개된다.

이인경 기자 judysmall@enews24.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