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금을 울린 음성 Aafje Heynis (아프예 헤이니스)

 

 

1945년 5월, 네덜란드가 해방되었을 때 북부 도시인 자안(Zaan)도 다른 모든 곳과 마찬가지로 거리마다 환호의 도가니였다. 어떤 사람이 자기집에 있는 오래된 피아노를 길거리로 끌어내어 애국적인 노래를 치기 시작했다. 길거리를 메운 군중들은 전쟁이 끝나고 해방이 되었다는 한없는 기쁨에 들떠서 모두들 소매를 걷어붙이고 함께 부르기 시작하였다. 갑자기 어떤 사람이 ‘우리 옆집에 진짜 노래 잘하는 아가씨가 있습니다. 데려 옵시다’라고 소리쳤다. 군중들이 박수를 보냈다. 잠시후 어떤 젊은 아가씨가 밀려서 나타났다. 약간은 마른 체구에 부끄러운듯 미소짓는 아가씨였다. 아프예 헤이니스였다. 사람들은 박수를 보내며 ‘어서 노래를 불러요’라고 다그쳤다. 낡은 피아노 옆에 선 헤이니스는 헨델의 ‘주께 감사하라!’(Dank sei dir, Herr)를 불렀다.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그 소란했던 길거리가 순간 조용해졌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헤이니스의 부드럽고 낮은 음성, 마음속 깊이 우러나온 감정, 헨델의 아름다운 멜로디, 여기에 해방이라는 기쁨이 혼합되어 모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다. 훗날 위대한 콘트랄토로 세계의 인정을 받게 된 헤이니스는 ‘나의 생전에 그렇게 감격스럽게 노래부른 일은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나도 울면서 노래 불렀으니까요!’라고 말했다.


아프예 헤이니스는 1925년 북부 네덜란드의 크로메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버스 운전수였으나 음악을 좋아하여 합창단의 멤버로 활동했다. 헤이니스는 이미 4살때부터 합창단에서 아버지가 연주하는 작은 손풍금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다. 헤이니스는 성악에 뜻을 두고 여러 선생님들로부터 레슨을 받았다. 집안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좋은 교사들에게서 레슨을 받을수 있었다. 로이 헨더슨(Roy Henderson)을 만난것은 행운이었다. 헨더슨은 캐틀린 페리어(kathleem Ferrier)를 가르친 사람이었다. 헨더슨은 헤이니스에게 ‘위대한 영국의 페리어를 닮지는 않았지만 독특한 음색과 풍부한 성량으로 위대한 콘트랄토가 될 소지는 있다’고 말하면서 힘든 레슨을 시작하였다.


헤이니스는 전문적인 성악가가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헤이니스의 식구들은 모두 노래를 좋아하였다. 아버지, 어머니, 두 딸 모두 모여 노래부르기를 좋아하였다. 누가 잘 부르고 누가 못 부르고를 떠나서 그저 즐거움에 함께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헤이니스는 간호원이 되거나 또는 의상실에서 일하려고 생각했다. 만일 그렇게 되었다면 세계는 뛰어난 성악가를 영원히 만나보지 못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단원으로 있는 합창단의 지휘자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헤이니스가 천부적은 음성을 타고난 것을 보고 간호원이나 의상실 점원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헤이니스를 인도하였다. 헤이니스는 네덜란드 바흐협회 합창단에 들어가려고 응모했다. 음악감독인 안톤 박사는 너무나 많은 오디션 응모자 때문에 지쳐있었다. 헤이니스가 오디션을 위해 들어서자 ‘이번에도 그렇고 그런 학생이겠지’라면서 거의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잠시후 헤이니스가 노래를 부르자 순간 복도에 대기하고 있던 응모자들까지 모두 몰려들어 헤이니스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참으로 깊은 감동을 주는 노래였다. 헤이니스는 당장 바흐합창단원으로 선발되었으며 안톤 박사는 헤이니스에게 솔로 파트를 맡겼다. 그로부터 얼마후 헤이니스는 브람스, 헨델, 바흐, 멘델스존 등의 오라토리오와 콘서트 작품에 솔리스트로 출연하기 시작했고 이후 세계 각국에서의 수많은 경력을 통하여 금세기에 가장 위대한 콘트랄토로 인정받게 되었다. 헤이니스는 오페라에는 거의 출연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날 가장 위대한 콘트랄토 중의 한사람으로서 기억되어야 하기 때문에 소개하는 것이다. 헤이니스에게는 카리스마라는 용어가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따듯하고 부드러운, 그러면서도 수줍어하는 성격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울리며 감동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