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구 브리기테나우 (Brigittenau)

 

 

도나우우퍼반(도나우강변철도)

 

브리기테나우는 레오폴드슈타트의 북쪽에 있는 구이다. 브리기테나우는 주민수가 다른 구에 비하여 많은 편이다. 그래서 주거건물도 많이 있다. 브리기테나우라는 명칭은 그곳에 있었던 브리기타 교회(Brigitta Chapel)에서 연유한 것이다. 브리기타 교회는 1651년 봉헌된 작은 교회이다. 브리기테나우의 구역은 1870-1875년 정부에 의한 도나우 홍수조절 사업에 의해 정비되었다. 구역 정비 업무는 도나우규제위원회(Wiener Donauregulierung)가 맡아했다. 위원회의 활동을 기념하여서 대부분 위원들의 이름을 브리기테나우의 거리 이름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역사적으로 기억해야할 지역은 아니다. 브리기테나우는 원래 2구 레오폴드슈타트에 속하여 있었으나 1900년 분리되었다. 브리기테나우의 가장 잘 알려진 랜드마크는 밀레니엄 타워이다. 이와 함께 오스트리아 센터 비엔나(ACV)도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건물이다. 각종 회의를 개최할수 있는 장소이다. 국제원자력기구의 연례 총회가 열린다. ACV는 브루노 크라이스키 플라츠 1번지가 주소이다. 쇼테나우(Shottenau), 타보라우(Taborau), 그리고 츠뷔센브뤼켄(Zwischenbruecken)는 오래전부터 브리기테나우를 구성해 왔던 마을들이다. 쇼테나우는 야소미어고트 대공(하인리히2세)이 초청하여 비엔나에 온 아일랜드 수도승들에게 하사한 농지들이 있던 곳이다. 브리기테나우에는 아돌프 히틀러가 비엔나에서 지내면서 묵었던 멜데만슈트라쎄(Meldemannstrasse) 기숙사가 있다.

 

브리기테나우의 도나우와 도나우투름(왼쪽)

                      

브리기테나우는 도나우인젤의 북서쪽에 걸쳐 있다. 이 지역은 원래 운테레 베르트(Untere Werd)라고 불리던 곳이다. 베르트는 독일어로 섬이라는 뜻이다. 도나우가 홍수로 인하여 범람할 때에는 물바다였으나 홍수 조절 시스템을 마련한 후에는 평야가 되었다. 브리기테나우의 전체 면적은 5.67 평방킬로미터이며 비엔나 전체의 1.4%에 불과하다. 도나우와 도나우운하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브리기테나우의 면적중에서 20% 이상이 물로 덮여 있다. 비엔나에서 두번째로 물이 많은 구역이다. 그래서 녹지대가 상대적으로 적다. 그런가하면 교통면적의 비중은 가장 높다.

 

슈피텔라우의 본바우(주거건물: Wohnbau)

                         

브리기테나우는 다른 구에 비하여 박물관이 하나밖에 없다. 구박물관이다. 도나우에 대한 자료가 대부분이다. 상업지구의 발달, 산업지구 개발, 교통과 통신에 대한 내용도 전시되어 있다. 브리기테나우 주민들의 일상생활도 소개되어 있다. 수학자로 유명한 칼 프리드리히 가우스(Carl Friedrich Gauss)에 대한 사항도 전시되어 있다. 브리기테나우에는 교회도 많지 않다. 알러하일리겐키르헤(만성교회), 브리기타카펠레, 브리기타키르헤, 키르헤 춤 괴틀리헨 에어뢰저(대속자 교회), 장크트 요한 카피스트란 키르헤, 키르헤 무터고테스 임 아우가르텐 등이 있을 뿐이다.

 

 브리기테나우 유겐트개스테하우스(Jugendgastehaus) 

브리기테나우라는 이름과 연관이 있는 브리기타카펠레 

                            

아돌프 히틀러는 1909년 12월에 미술대학에 진학하려고 고향을 떠나 비엔나와 왔다. 히틀러는 1889년 4월 20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란스호펜(Ranshofe)의 Gasthof zum Pommer(가스트호프 춤 폼머)라는 여관집에서 태어났다. 란스호펜 마을은 1938년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되자 브라우나우 암 인(Braunau am Inn)이라는 이름의 마을이 되었다. 히틀러가 비엔나에 왔을 때에는 20세의 청년이었다. 비엔나에 온 히틀러는 숙소를 구하지 못하여 마이들링에 있는 노숙자 숙소에서 몇달 동안 지냈다. 그러다가 친구들의 소개로 1910년 2월 9일에 브리기테나우의 멜데만슈트라쎄(Meldemannstrasse)에 있는 기숙사에 들어가서 지내기 시작했다. 히틀러는 이곳에서 1913년 5월 24일까지 3년 넘게 살았다. 그러다가 아버지라는 사람으로부터 상속을 받기 위해 1913년에 뮌헨으로 갔고 그곳에서 군대에 입대하여 하사로 근무했다. 그로부터 히틀러의 운명은 바뀌어 결국 온 세상 사람들이 비난하는 악명 높은 히틀러가 되었다. 히틀러는 브리기테나우의 멜데만슈트라쎄 기숙사에서 지내면서 유태인인 에두아르드 뢰프너, 요제프 노이만 등과 친구로서 가깝게 지냈으며 약사인 루돌프 호이슬러와는 각별한 사이였다. 그래서 루돌프 호이슬러는 히틀러가 상속을 받으러 뮌헨으로 가게 되자 함께 갔다. 이곳에 있을 때 히틀러의 라이벌은 화가 칼 라이덴로트(Karl Leidenroth)였다. 현재 멜데만슈트라쎄 기숙사는 2백실 규모의 제니오렌슐로스 브리기테나우(Seniorenschlossl Brigittenau)라는 이름의 퇴직자의 집으로 전환되어 사용되고 있다. 

 

히틀러가 3년동안 살았던 당시의 멜데만슈트라쎄 기숙사. 현재는 퇴직자의 집(양노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