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는 누구인가?]

야고보(James: Ya’akov)는 예수님의 열두제자 중 한 사람이다. 야고보는 신약성경의 야고보서를 쓴 사람이다. 논란은 야고보가 과연 예수님의 동생인가라는 데에 있다. 신약성경(마태복음 13장, 마가복음 6장)에는 예수님의 동생으로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있다고 했다. 어떤 학자들은 예수님의 동생이라는 야고보가 열두제자 중의 하나로서 신약성경의 야고보서를 쓴 바로 그 야고보라는 주장이다. 신약성경에는 야고보를 ‘주의 동생’으로 기록되어 있고(갈라디아서 1장 19절) 가톨릭의 전례에서는 그를 ‘하나님의 동생’(The brother of God)이라고 불렀다. 야고보는 정말 예수님의 동생인가? 아니면 동생은 동생이지만 이복동생? 또는 사촌동생? 그렇지 않으면 어떤 관계에 있는가? 이 문제는 마리아의 동정녀(처녀)론과도 깊은 관계가 있는 중요한 것이어서 조심스럽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성령으로 낳은 후에 평생을 동정녀(처녀)로 있었다면 예수님에게는 동생들이 있을수 없기 때문이다.

 

성야고보는 ‘정의의 야고보’(James the Just)라고 불리며 간혹 ‘대신하는 자’(Supplanter), 또는 ‘뒤꿈치를 잡은 자’(Holder of the heel)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뒤꿈치를 잡은 자’라는 것은 이삭의 아들 에서(Esau)와 야곱의 예를 들은 것이다. 야고보를 ‘정의의 야고보’(James the Just)라고 부르는 것은 그가 옛 히브리의 수도자인 나자라이트(Nazarite)처럼 수도자로서의 생활을 하겠다고 서약하고 금욕과 고행의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한편, 다른 야고보들, 예컨대 성경에 나오는 세베데(Zebedee)의 아들 야고보 등과 구별하기 위해서;정의의 야고보‘라고 부른다는 주장도 있다. 야고보는 ‘예루살렘의 야고보’ ‘아델포테오스(Adelphotheos)의 야고보’ ‘주님의 형제 야고보’(James, the Brother of the Lord)라는 타이틀도 가지고 있다. 아델포테오스라는 말은 ‘신의 형제’라는 뜻이다. 아마 예수님의 동생임을 생각해서 그런 타이틀을 준 것 같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야고보를 성경에 나오는 ‘알패오의 아들, 작은 야고보(James the Lesser)’와 동일한 사람으로 보고 있다.


야고보는 주님께서 선정하신 70인 사역의 한 사람이다. 누가복은 10장 1절에는 ‘그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라고 적혀 있다. 야고보는 그 70인 사역자 중에 포함되었을 것이다. 야고보는 초대 기독교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바울과 함께 복음의 전도에 힘썼기 때문이다. 가톨릭의 전해 내려오는 얘기에 의하면 야고보는 초대 예루살렘 주교(Bishop)였다고 한다. 사도 바울은 갈리디아서 2장 9절에서 야고보를 ‘기둥같이 여긴다’고 말하여 그를 크게 믿고 있음을 증거하였다. 이 정도 설명했으면 야고보가 누구인지 짐작하겠지만 아직도 예수님의 동생이라는 궁금증은 남아 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대야고보)

 

[야고보와 제임스는 같은 이름]

야고보는 영어로 제임스(James)라고 쓴다. 제임스는 야곱(Jacob)이라는 이름과 같은 뿌리에서 나온 이름이다. 야고보가 어떻게 제임스라는 이름이 되었는지 이상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원래 야고보는 히브리어로 Ya'akov(야코프)라고 쓴다. 이것이 그리스어의 야코보스(Iakobos), 라틴어의 야코부스(Jakobus), 그 후에 야코무스(Jacomus)로 변하였고 나중에 영어의 James(제임스)가 되었다.


성경에는 예수의 제자 야고보라는 이름도 나오고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James, son of Alphaeus)라는 이름도 나오며 세베데의 아들 야고보라는 이름도 나와 혼돈을 준다. 그러나 사도 야고보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동생이라는 얘기는 어떻게 된 것인가? 동방기독교회에서는 간혹 그를 ‘신의 형제’(Adelphotheos)라고 부르며 예수님의 형제로 간주하고 있다. 이는 신약성경 갈라디아서 1장 19절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예루살렘에 있을 때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고 기술하였다. 바울은 분명이 야고보가 예수님의 형제라고 기록한 것이다. 야고보가 예수님의 형제, 또는 동생이라는 기록은 신학자들 사이에서 큰 논란을 가져온 대목이다. 앞에서도 지적한대로 만일 야고보가 예수님의 형제라면 마리아에 대한 신앙에 이의가 있을수 있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431년 에베소 공의회에서 ‘신의 어머니’(Theotokos)라는 타이틀을 정식으로 받았다. 만일 야고보가 예수님의 형제라면, 다시 말하여 마리아의 아들이라면 마리아에 대한 ‘영원한 동정녀’ 주장은 의미를 달리해야 하며 마리아를 ‘신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도 재고되어야 한다는 얘기이다. ‘신의 어머니’가 무슨 아이들을 그렇게 많이 나았다는 말인가?


[예루살렘교회의 초대 주교]

신약성경을 보면 야고보가 초대교회에서 어떠한 역할과 생활을 했는지 알아 볼수 있다. 신약성경뿐만 아니라 초대교회의 다른 기록들에도 야고보에 대한 얘기가 남아 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요한복음이나 사도행전의 전반부에는 야고보에 대한 이름조차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행정 후반부에는 야고보가 예루살렘의 초대교회에서 중요한 인물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도행전 12장 17절에 따르면 베드로는 감옥에서 기적적으로 풀려난후 헤롯 아그리파의 핍박을 피하여 예루살렘을 떠날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야고보와 다른 형제들에게 자기가 급히 떠난다고 전하라고 했다. 야고보가 예루살렘 초대교회에서 중심되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우선 연락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다.


야고보가 예루살렘 초대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다른 기록도 있다. 안디옥(Antioch)의 교인들은 이방인 기독교인들이 할례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논란을 벌인 일이 있다. 이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예루살렘에 보내어 예루살렘교회와 의논토록 하였다. 이때에 야고보는 공회의 결정을 이끌어 내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되어 있다(사도행전 15장 13절 이하). 야고보는 바울과 바나바가 얘기를 마친 후에 입을 열어 말하기를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라고 하여 이방인이라도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들을 받아들일 것을 주장하였다. 야고보는 자기의 ‘의견’이라고 말했지만 실은 공회가 결정(judgement)을 내린 것과 마찬가지의 권위 있는 말을 했던 것이다. 이어 야고보는 이방인들이 우상에게 바쳐졌던 피와 고기를 먹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같은 조치는 이후 모든 사도들과 장로들이 합의하는 공회의 공식 의견이 되었다. 이를 미루어 보아 야고보의 의견은 교회의 교리를 정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이 틀림없다.


바울이 예루살렘의 신실한 신도들을 위해 모금한 돈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왔을 때에도 먼저 야고보를 만나서 보고하였다(사도행전 21장 18절 이하). 야고보는 바울이 유태 율법(토라)에 어긋나는 언행을 한다는 소문이 있다고 주의를 주고 바울에게 먼저 헤롯의 성전에 올라가 결례(潔禮)를 행하도록 권고하여 그가 토라에 어긋나는 언행을 하지 않았음을 증거토록 인도하였다. 이로 미루어보아 야고보는 모든 사도들 중에서도 가장 권위 있는 사도로서 초대교회에 어떤 문제가 일어났을 때 판단을 내려주는 역할을 했다고 볼수 있다. 어떻게 하여 그런 권위를 가지게 되었는가? 예수님의 형제라는 존귀한 신분이므로 모두들 존경하고 따랐기 때문이라고 볼수 있다.

 

 

바울의 회심  


바울은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후에 특별히 야고보에게 보이신 사실을 말하여 그를 존중하였다. 고린도전서 15장 3-8절에 의하면 “3...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 게바(Cephas: Peter)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들은 잠들었으며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라고 되어 있어서 예수님이 처음에는 베드로(게바)에게 보이셨으나 나중에는 야고보에게 우선 보이셨음을 증거하고 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야고보와 베드로와 요한이 교회의 3대 기둥(Pillar)임을 말하였다.


일반적으로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할례 받은 자’ 즉 유태인과 유태교 개종자(Proselytes)들을 보살폈으며 바울과 동료들은 ‘할례 받지 아니한 자’ 즉, 일반적인 이방인들을 보살폈다고 한다. ‘할례 받지 아니한 자’는 주로 그리스인들을 말했지만 이밖에도 애급사람, 에티오피아사람, 아랍사람들도 포함된다. 


전해 내려오는 얘기에 의하면 야고보는 예루살렘의 초대 주교(Bishop: 또는 족장)로서 예루살렘의 기독교 신도들을 이끌었다고 한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이 죽임을 당하시고 부활하신 곳이기 때문에 초대교회로서는 가장 중요한 성지였고 그 성지를 관할하는 주교로서 야고보의 위치는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을수 없다. 물론 베드로가 초대교회의 중심이었으며 후에는 로마 가톨릭의 수장이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주님께서 베드로를 ‘반석’(Rock)이라고 부르시며 목자중의 목자가 되라고 당부하셨기 때문이다. 어떤 신학자들은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구의 주교였다면 베드로는 세계교구의 주교였다고 비유로서 말하였다. 이로 미루어 보아 베드로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을수 없었을 때 야고보에게 예루살렘 교구를 위임했다고 볼수 있다.

 

 베드로가 예수님으로부터 천국문을 여는 열쇠를 받고 있다. 이로부터 바티칸 공국의 깃발은 열쇠 두개가 그려진 것을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