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1

칼 구스타브 16세

빅토리아공주의 아버지, 현 스웨덴 국왕

 

[아버지의 죽음으로 1살 때에 왕세자가 되다]

 

구스타브16세 국왕

 

칼 구스타브16세는 현재의 스웨덴 국왕이다. 1973년에 왕위에 올랐으니 2010년 현재로서 정년퇴직이나 명예퇴직에도 해당되지 않은채 43년 동안이나 군주로서 당당한 역할을 맡아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몇 년을 스웨덴 국왕으로서 더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스웨덴의 국왕은 해마다 열리는 노벨상 시상식에서 노벨상을 주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세계의 모든 석학들과 위대한 과학자들과 평화를 위해 크게 공헌한 인사들은 시상식에서 구스타브 16세 국왕과 인사를 나눌 기회를 갖는다. 세계의 군주 중에서 그만한 영광을 가진 사람은 스웨덴 국왕뿐일 것이다. 칼 구스타브16세는 1947년 1월 왕세자였던 아버지가 덴마크의 코펜하겐 근교에서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1살 때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세자로 책봉되었다가 할아버지 국왕이 세상을 떠나자 27세의 청년으로 국왕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다. 그 할아버지가 누군가 하니 왕세자 시절인 1926년 우리나라가 일제치하에 있을 때 부인인 루이제(왕세자빈. 실은 두번째 부인)와 함께 경주에 와서 고분을 발굴하여 금관을 발견한 양반이다. 경주의 서봉총(瑞鳳塚) 금관이 그것이다. 서봉총이라고 명칭은 스웨덴을 한문으로 서전(瑞典)이라고 썼는데 스웨덴 사람이 발굴한 봉황새 모양의 금관이라고 해서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와의 인연이 아주 낯설지는 않은 집안이다.

 

예복을 입은 구스타브16세  

 

[27세로 국왕이 되다]

구스타브16세는 1946년에 태어났으므로 2010년으로 64가 된다. 워낙 강단의 튼튼한 체격이어서 누가 보아도  요단강을 건너가려면 아직 한참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구스타브16세는 스포츠를 좋아했다. 무슨 종목이었는지는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아마 카누가 아니면 요트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구스타브16세는 아직 왕세자 시절인 1972년 스웨덴 선수들을 격려하기 위해 뮌헨올림픽에 갔었다. 그곳에서 통역 겸 안내 도우미였던 현재의 왕비 실비아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어 1976년 결혼식을 올렸다. 왜 4년 후에 결혼식을 올렸나 하면 당시 국왕이던 할아버지 구스타브6세가 왕세자는 왕족과 결혼해야 한다고 엄격히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독일의 평민인 실비아와 결혼하겠다고 하면 걱정만 들을 것이므로 감히 얘기를 못하고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그러다가 1973년에 할아버지 구스타브6세가 돌아가시고 구스타브16세로서 왕위에 오르게 되자 그 때부터는 어느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게 되어 평민인 실비아와 결혼식을 올리게 된 것이다. 그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하기로 하고 한때 유럽 초미의 관심사였던 스웨덴의 왕위계승문제로 돌아가 보자. 스웨덴은 1980년에 왕위계승법을 고쳐서 유럽에서는 최초로 아들 딸 구별하지 않고 누구든지 첫째 자녀가 왕위를 잇도록 했다. 그리하여 첫째 딸인 빅토리아 공주가 차기 왕위계승 영순위가 되었던 것이다. 현재의 국왕인 구스타브16세가 당분간은 세상 떠날것 같지 않으므로 차기 왕위계승권자인 빅토리아공주가 언제 국왕의 자리에 올라갈지는 알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아빠 폐하, 부탁입니다. 혹시 금명간 돌아가실 예정은 없으신지요?’라고 말할 처지도 아니다. 그리고 어서 결혼하여서 자녀를 생산해야 한다. 아무튼 언젠가는 노벨상을 받는 사람들이 빅토리아 여왕이 주는 메달과 상금을 받을 날이 올것이다. 이제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현재의 국왕인 구스타브16세와 왕위계승 영순위인 빅토리아 공주에 대하여 좀더 알아보자.

 

스톡홀름왕궁 앞을 행진하는 근위병들

 

현 국왕인 칼 구스타브(구스타브16세)는 1946년 4월 30일 스웨덴의 북부 우프란드(Uppland)에 있는 하가궁(Haga Slott)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당시 왕세자였던 구스타브 아돌프(훗날 구스타브6세)의 큰 아들인 구스타브 아돌프였다(아버지와 아들이 이름이 같다). 그러므로 현 국왕인 칼 구스타브는 태어났을 때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계승 3위였다. 그런데 1947년 1월 26일 아버지 구스타브 아돌프가 네덜란드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덴마크 코펜하겐 교외에서 비행기가 추락하여 세상을 떠났다. 당시 칼 구스타브는 태어난지 9개월째였다. 어린 칼 구스타브는 당장에 왕위계승 2순위가 되었다. 칼 구스타브에게는 위로 누이들이 4명이나 있었지만 장자상속법에 의해 누이들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러다가 1950년 9월에 구스타브5세 국왕이 세상을 떠나자 할아버지인 구스타브 아돌프가 구스타브6세로서 국왕이 되었고 4살밖에 안된 칼 구스타브는 당장 차기 왕위계승자인 황태자가 되었다. 현재의 국왕인 구스타브16세는 아버지가 1살 때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아버지를 모른채 자랐다. 당시 스웨덴 왕실에서는 어린 황태자인 칼 구스타브에게 아버지의 죽음에 대하여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도록 했다고 한다. 장래 국왕이 될 황태자가  아버지가 없다는 슬픔 속에서 자라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칼 구스타브가 아버지에 대하여 얘기를 들은 것은 그가 일곱 살 때였다. 어린 칼 구스타브는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 들였다고 한다. 이상으로 최근의 스웨덴 왕위계승에 대하여 설명했지만 아무래도 복잡하므로 다시 간단히 화살표로 그리면 다음과 같다.

 

[구스타브5세(6.25때 적십자야전병원을 지원)→구스타브 아돌프(구스타브6세: 서봉총 금관 발굴)→구스타브 아돌프(황태자 때에 사고로 서거)→칼 구스타브(현 국왕인 구스타브16세)→빅토리아공주(차기 국왕 내정자)].

 

구스타브16세 부부. 장차 국왕이 될 딸 빅토리아와 그의 배우자가 될 다니엘과 함께. 2009.8 

 

[국왕의 교육을 받다]

칼 구스타브는 고등학교를 졸업한후 왕립스웨덴육군, 왕립스웨덴해군, 왕립스웨덴공군에서 2년 반동안 군사교육을 받았으며 1968년에 각각 육, 해, 공군의 장교로 임관되었다. 칼 구스타브는 1973년 국왕이 되기 전까지 육군과 공군은 대위로, 해군은 중위로 있었다. 그는 또한 우프살라대학교와 스톡홀름대학교에서 역사, 사회학, 정치과학, 세법, 경제학 과정을 이수하였다. 칼 구스타브는 장차의 국왕으로서 자질을 높이기 위해 궁정시스템, 사회기구 및 단체, 노동조합, 무역협회 등의 업무에 대하여 배웠으며 이어 의회와 정부의 업무, 특히 외무성의 업무에 대하여 교육을 받았다. 그는 UN의 스웨덴 대표부, 스웨덴국제개발협력기구(SIDA), 런던 금융가, 런던주재 스웨덴 대사관, 프랑스주재 스웨덴 상공회의소, 프랑스의 알파 라발(Alfa Laval)제조회사에서 일하면서 경력을 쌓았다.

 

구스타브16세 국왕이 태어난 하가 슬로트(궁전)

                                

[국왕이 되다]

1973년 9월 15일, 칼 구스타브 황태자는 할아버지인 구스타브6세가 세상을 떠나자 스웨덴 국왕으로 등극하였다. 대관식은 9월 10일 스톡홀름 궁전의 대회의장에서 열렸다. 구스타브16세는 1544년 베르나도트(Bernadotte)왕조가 창시된 이래 국왕들이 사용하던 By the Grace of God, King of the Swedes, the Goths/Geats and the Wends(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스웨드, 고트 및 기츠, 웬드의 왕)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구스타브16세는 즉위와 함께 이같은 전통적인 호칭을 사용하지 않고 대신 King of Sweden(Sveriges Konung: 스웨덴 왕)이라는 간단한 호칭을 사용토록 했다. 이처럼 구스타브16세는 실용적인 면이 있었다. 그의 개인적인 모토인 För Sverige - I tiden(회르 스베리예 이 티덴: 영원토록 스웨덴을 위해)을 보아도 잘 알수 있다.

 

국왕과 가족의 평상시 거처인 스톡홀름 교외의 드로트닝홀름 궁전

 

[결혼, 그리고 가족]

27세의 청년 구스타브16세가 미장가로서 스웨덴의 왕위에 오르자 세계는 과연 누가 왕비가 될것이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구스타브16세는 왕으로 즉위한지 2년 후인 1976년 6월 19일 스톡홀름대성당(Stoykyrkan Cathedral)에서 실비아 좀머라트(Silvia Sommerlath)와 결혼식을 올렸다. 주례는 우프살라대주교인 올로프 순드비(Olof Sudby)가 맡았다. 전통적으로 왕실의 결혼식은 우프살라대주교가 맡는다. 왕비가 되는 실비아의 아버지는 독일이이었고 어머니는 브라질인이었다. 구스타브16세는 왕세자 시절인 1972년 뮌헨올림픽에 참가했다가 실비아를 만났다. 실비아는 뮌헨올림픽의 공식 통역원 겸 안내 도우미였다. 구스타브16세가 실비아와 결혼하자 스웨덴 왕실은 국왕이 실비아 왕비와 어디서 어떻게 만나서 어떻게 교제했는지 등등의 소설적인 얘기가 더 이상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기를 바랐다. 국왕과 왕비의 권위를 손상할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므로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서 어떻게 교제하였으며 결혼까지 4년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등에 대하여는 자세히 알려진 것이 없다. 그것이 국왕과 왕비에 대한 예의인 것이다.

 

스카웃 잼보리 대회에 참석한 구스타브16세

 

두 사람은 슬하에 세 자녀를 두었다. 큰 딸 빅토리아는 1977년에 태어났다. 반복되는 이야기이지만 빅토리아 공주는 현재로서 다음번 왕위계승자이다. 체육관 사업을 하던 다니엘 웨스틀링과 2010년 6월 19일에 결혼하였다. 다니엘은 구스타브16세가 국왕이 되던 해인 1973년에 태어났다. 빅토리아와는 4살 차이이다. 둘째는 아들 칼 필립이다. 1979년에 태어났다. 스포츠광이다. 특히 자동차경주를 즐겨한다. 배우처럼 잘 생겨서 인기가 많다. 바람은 잘 피지만 아직 정혼한 여인은 없다. 셋째는 상당한 건강미인인 마델레이느(Madeleine)이다. 1982년에 태어났다. 요나스 베르히스트룀(Jonas Bergström)이라는 변호사와 약혼했다. 잘 아는대로 칼 필립왕자는 차기 왕위계승자로 태어났으나 태어나던 그해에 스웨덴 의회에서 왕위계승법의 장자상속권을 폐지하는 내용의 법안이 통과되고 이듬해인 1980년 1월 1일부터 유효한 것으로 개정했기 때문에 칼 필립은 단 몇 달만을 차기 왕위계승 서열 1위로 있었으며 1980년 1월 이후에는 빅토리아 공주가 서열 1위, 칼 필립 왕자가 서열 2위가 되었다.

 

칼 필립 왕자

 

[유럽 왕실들과의 인척관계]

구스타브16세는 유럽의 여러 군주와 인척관계에 있다. 선조를 따져보면 아마 오렌지공이라고 하는 윌리엄으로부터일 것이다. 현재 구스타브16세가 인척관계에 있는 다른 나라의 군주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덴마크의 마가레테2세 여왕: 사촌

- 노르웨이의 하랄드5세 국왕: 삼종 사촌

- 스페인의 후안 카를로스1세 국왕: 삼종 사촌

- 벨기에의 알베르2세 국왕: 재종 사촌

- 네덜란드의 베아트릭스 여왕: 삼종 사촌

- 영국의 엘리자베스2세 여왕: 삼종 사촌

- 룩셈부르크의 앙리 대공: 삼종 사촌

- 모나코의 알베르2세 공: 7종 사촌

- 리히텐슈타인의 한스-아담2세 공: 6종 사촌

 

[국왕의 임무와 난독증]

국왕은 매년 의회를 개원한다. 정부가 교체 될 때에 특별위원회를 주관하며 장관들과 정례 정보교류회의를 갖는다. 외교위원회를 주재하며 대사들의 신임장을 접수한다. 또한 외국에 주재하는 스웨덴 대사들을 임명한다. 국왕은 상징적이며 실권을 갖지 않는다. 따라서 투교권도 없다. 총선에서는 기권한다. 국왕은 헌법에 따라 스웨덴 삼군 총사령관이 된다. 국제적으로는 매년 노벨상 시상자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구스타브16세는 스웨덴농업과학대학교, 왕립기술공과대학교, 스톡홀름경제학교, 핀란드의 오보(Åbo)대학교로부터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구스타브16세는 환경, 기술, 농업, 무역, 산업에 대하여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2009년 9월 스웨덴의회 개원식에 참석한 구스타브16세 국왕, 실비아 왕비, 빅토리아 공주

 

구스타브16세는 자동차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포르셰911s를 여러 대 가지고 있다. 그는 포세를 특별히 사랑하고 있다. 또한 고전적인 볼보 PV444와 페라리 456M GT, 오리지널 AC 코브라 등을 가지고 있다. 2005년 여름, 국왕은 자동차를 몰고 드라이브를 하던 중 노르쇠핑에서 사고를 당했다. 가벼운 접촉사고(fender bender)였다. 하지만 스웨덴의 모든 신문들은 대서특필하였다. 2005년에 국왕은 2004년도 12월의 인도양 츠나미에 대하여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는 연설을 했다. 그리고 환경보호를 위해 더욱 분발하자고 호소했다. 2004년말의 츠나미에서 스웨덴인 5백명 이상이 희생되었다. 구스타브16세는 세계스카웃재단의 명예총재이다. 그는 국내외에서 열리는 스카웃 대회에 자주 참가하고 있다. 특히 세계스카웃잼보리에는 거의 정기적으로 참가하고 있다.

 

의학적으로 난독증(難讀症)이라는 것이 있다. 디스렉시아(Dyslexia)라고 부른다.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거나 제대로 쓰지 못하는 증세이다. 그렇다고 글을 모른다는 것은 아니다. 글을 읽게 되면 머리가 혼돈해져서 제대로 읽지 못하며 글을 쓸 때에도 자기도 모르게 스펠을 잘못 쓰는 경우등을 말한다. 구스타브16세에게 그런 증세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예를 들어 그는 국왕 취임서에 서명하면서 스펠을 잘못 썼다는 것이며 어느 때는 어떤 공장을 방문하여 방명록에 서명하는데 Gustav 라고 쓰지 못하고 Gustf 라고 썼다는 것이다. 1997년 실비아 왕비가 TV 인터뷰에서 ‘남편(구스타브16세)이 그런 증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아마도 어릴 때에 그런 증세가 있어서 도움이 필요했지만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아서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증세가 남아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덧 붙여서 아이들에게도 그런 증세가 간혹 나타나고 있지만 문제될 정도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별것이 다 얘기꺼리가 되고 있다.

 

2012년 5월 30일 구스타브 국왕과 실비아 왕비가 서울 삼각지의 전쟁기념관을 방문하여 6.25 전쟁 당시 한국을 지원했던 스웨덴 의무부대의 활동상을 관람하였다. (Credit: 전쟁기념관 홈페이지)

사진은 거북선에 대하여 설명을 듣고 있는 구스타브 국왕과 왕비.(Credit: 전쟁기념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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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직계 왕족(2016년 현재)

 

 

 

 

스웨덴의 왕족. 앞의 두 사람이 칼 구스타프 16세 국왕과 실비아 왕비. 뒷줄 왼쪽으로부터 마델레이느 공주와 결혼한 크리스토퍼 오닐, 마델레이느 공주, 빅토리아 왕세녀와 결혼한 다니엘 공자, 왕세녀인 빅토리아, 칼 필립 왕자, 칼 필립 왕자와 결혼한 소피아 공주. 다들 잘 생겼다. 국왕의 손자손녀로서는 두 아이만 나왔는데 2016년 현재 큰 딸에게서 2명, 아들에게서 1명, 둘째 딸에게서 2명의 자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