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장르의 70년대] Hair의 성공이후 록 뮤지컬이 브로드웨이에 밀어 닥폈다. Jesus Christ Superstar(예수 그리스도 수퍼스타), Godspell(갓스펠), Grease(그리스), Two Gentlemen of Verona(베로나의 두 신사)등이다. 어떤 록 뮤지컬은 처음에 음반으로 발췌곡이 선보인 다음 무대작품이나 영화로 만들어져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예를 들면 Tommy(토미)이다. 그런가하면 어떤 록 뮤지컬은 대화체의 대사를 없애고 음악이 계속 진행되도록 했다. 뮤지컬이라기보다는 오페라 형태였다.l 그래서 이런 작품들을 록 오페라(Rock Opera)라고 불렀다. 브로드웨이에 대한 흑인들이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Raisin(레이진), Dreamgirls(드림 걸스), Purlie(펄리), The Wiz(위즈)등은 브로드웨이에 대한 아프리칸-아메리칸 영향력이 얼마나 두드러지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한 장면

 

1970년대는 여러 장르의 뮤지컬이 개발된 시기였다. 그리고 반드시 브로드웨이를 거치지 않고서도 뮤지컬이 성공할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시기이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대기업에서 브로드웨이 뮤지컬 배우들을 고용하여 기업의 선전용, 또는 종업원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이용한 것도 이 시기였다. 1976년에는 미국 뮤지컬 역사상 또 하나의 중요한 이정표를 기록하는 해였다. A Chorus Line(코러스 라인)이었다. 마빈 함리슈(Marvin Hamlisch)가 음악을 쓴 ‘코러스 라인’은 뮤지컬 댄서들을 오디션하는 과정과 이에 따르는 희비를 그린 작품이다. ‘코러스 라인’은 브로드웨이가 아닌 맨해튼의 어떤 극장에서 처음 무대에 올려졌다. 대단한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극장과의 계약 때문에 장소를 옮겨 업타운의 슈베르트 극장(Shubert Theater)으로 가게 되었고 그후 무풍질주를 하였다. ‘코러스 라인’은 토니상을 휩쓸었고 퓰리처상을 받았다. 히트 송인 What I Did for Love(사랑을 위해 무얼 했나)는 당장에 톱 순위를 차지했다. 이렇게 보건대 뮤지컬 관중들은 무언가 평상적인 스타일과 내용에서 벗어난 것을 고대했었던 것 같다. 존 캔더(John Kander)와 프레드 에브(Fred Ebb)는 Cabaret(캬바레)에서 2차대전 전의 나치 독일을 그렸으며 Chicago(시카고)에서는 금주시대를 그렸다. 시카고는 종전의 보데빌 테크닉을 사용한 것으로 살인과 미디어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 슈테픈 슈봐르츠(Stephen Schwartz)의 Pippin(피핀)은 샬레만뉴 시대가 배경이다.

 

뮤지컬 '코러스 라인'(Chorus Line)의 한 장면

 

1970년대 말에 나온 Evita(에비타)는 관중들이 별로 접하지 않았던 심각한 정치 스토리였다. 그리고 Sweeney Todd(스위니 토드)는 엄청난 제작비가 드는 Les Miserables(레미제라블: 장발잔), Miss Saigon(미스 사이곤), The Phantom of the Opera(오페라의 유령)에 비하여 간단한 제작이지만 화려한 면 보다는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고전적인 올드 패션의 뮤지컬도 한자리를 차지하였다. 예를 들면 Annie(애니), 42nd Street(42번가), My one and only(나의 유일한 그대), 리바이벌인 빈센트 유만스(Vincent Youmans)가 곡을 붙인 No, No, Nanette(노, 노, 나네트), 그리고 Irene(이렌느)였다.

 

 

뮤지컬 '애니'

 

[변화를 모색한 80년대와 90년대] 이 시기에는 유럽의 이른바 메가 뮤지컬(Mega Musical) 또는 팝 오페라(Popo Opera)가 위세를 떨쳤다. 음악은 팝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으며 대규모 출연진과 세트장치가 특징이었다. ‘오페라의 유령’에서 거대한 샹들리에가 천정에서부터 떨어진다든지, ‘미스 사이곤’에서처럼 실제 헬리콥터가 무대에 등장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종전에는 볼수 없었던 제작이었다. 이 시기의 뮤지컬은 주로 유명 소설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메가 오페라를 만든 가장 중요한 인물들은 프랑스 팀인 클로드-미셀 쇤베르크(Claude-Michel Schönberg)와 알랭 부블리(Alain Boublil)로서 Les Miserables을 만들었다. 이 뮤지컬은 아마 뮤지컬 역사상 국제적으로 가장 롱런을 기록한 작품일 것이다. 계속하여 이 프랑스 팀은 오페라 ‘나비부인’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미스 사이곤’을 만들었다. 한편 영국의 앤드류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도 메가 뮤지컬인 Evita를 만들어 레미제라블과 마찬가지의 성공을 보았다. 아르헨티나의 에바 페론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어 로이드 웨버는 T.S. 엘리엇(Eliot)의 시로부터 따온 Cats(캐츠), 갸스통 르루(Gaston Leroux)의 소설 Le Fantome de l'Opera을 기본으로 한 ‘오페라의 유령’, 고전적 영화인 Sunset Boulevard(선셋 대로)를 뮤지컬로 만든 작품들을 내놓아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들 메가 뮤지컬들은 런던과 뉴욕에서 거의 10년이 넘게 공연되고 있다.

 

 

뮤지컬 '캐츠'

 

1990년대는 또한 대기업의 뮤지컬 진출이라는 특징을 보여준 시기였다. 대표적인 예는 월트 디즈니사가 지난날의 만화영화뮤지컬을 무대뮤지컬로 제작한 것이다. 예를 들면 Beauty and the Beat(미녀와 야수), The Lion King(라이온 킹)등이다. 그런가하면 뮤지컬 Aida(아이다)도 제작하였다. 팝가수 엘튼 존(Elton John)이 음악을 붙이고 대본가 팀 라이스(Tim Rice)가 대본을 만든 것이었다. 디즈니는 브로드웨이와 웨스트 엔드 극장들을 공략하고 있다. 최근에는 1999년도의 만화영화 Tarzan(타잔)을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만들었다.

 

  

'미녀와 야수' 디즈니 만화영화와 린다 해밀튼 주연의 영화

 

일이 이쯤되자 일각에서는 대형 뮤지컬이 겉으로만 야던법석일뿐 알맹이가 없다는 비평이 나왔다. 따라서 스타일 위주의 제작에 반하여 소규모의 뮤지컬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평판도 좋았으며 재정적으로도 부담을 주지 않았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에 나온 소규모 뮤지컬로서는 Falsettoland(활세토랜드), Passion(비애), Little Shop of Horrors(공포의 작은 상점), Bat Boy(박쥐 소년), The Musical(뮤지컬), Blood Brothers(블라드 브라더스)등이 있다. 스토리는 다양하며 음악도 록으로부터 팝에 이르기까지 취향에 맞게 엮었다. 이들 소규모 오페라는 브로드웨이 이외 지역의 소극장, 또는 런던의 소극장에서 공연되었으며 수규모 출연진에 소규모 제작비가 드는 것이었다. 어떤 뮤지컬은 새로운 창작기법을 도입한 것이었으며 완전히 개혁적인 것도 있었다.

 

뮤지컬 '블라드 브라더스(Blood Brothers)'

 

그럼에도 불구하고 뮤지컬 제작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관객을 잃는 경우가 생겼다. 비싼 입장료 때문이었다. DVD로 편안히 볼수 있는데 비싼 티켓을 사서 가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뮤지컬계는 지난날의 인기를 되찾아야 했고 새로운 관객층을 개발해야 했다. 오페라 La Boheme(라 보엠)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온 조나탄 라슨(Jonathan Larson)의 Rent(렌트)는 젊은 관객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출연진은 도합 20명 정도였고 음악은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록 계통이었다. 불행하게도 작곡가인 라슨은 최종 드레스 리허설의 밤에 동맥경화증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Rent는 성공을 거두었다. 어떤 젊은이는 Rent를 50번도 더 보았다고 한다. 복권을 발행하여 당첨되면 20불짜리 앞좌석 티켓을 주었다. 이것 때문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새벽부터 네덜랜더 극장(Nederlander Theater)앞에 모여 기다렸다. 이후 Rent 스타일의 뮤지컬이 몇편 더 선보였다.

 

뮤지컬 '렌트'. 비바 라 비 보엠.


또 다른 추세는 이미 히트했던 노래들을 모아 간단한 스토리를 만들어 무대에 올리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Buddy - The Buddy Holly Story(1995), 빌리 조엘(Billy Joel)의 노래에 기본을 둔 Movin' Out(2002), 비치 보이스의 노래로 엮은 Good Vibrations(굿 바이브레이션스),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가 담긴 All Shock Up(모두의 충격), 훠 시즌스의 노래를 바탕으로 한 Jersey Boys(져지 보이스: 2006), 보니 엠의 뮤지컬이었던 Daddy Cool 등이다. 이런 스타일의 뮤지컬은 일방 주크박스 뮤지컬(Jukebox musical)이라고 불렀다. 동전을 넣으면 원하는 음악을 들을수 있는 주크박스를 연상해서였다. 보컬 그룹들의 노래를 주로 사용하되 약간은 스토리가 있게 만든 뮤지컬도 등장하였다. 1999년의 Mamma Mia!(맘마 미아: ABBA의 노래가 나온다), Our House(그룹 Madness의 노래), We Will Rock You(그룹 Queen 의 노래)등이다. 그러나 이들 뮤지컬은 한때의 인기는 끌더라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브로드웨이에서의 '맘마 미아' 공연. 5 Things You Don't Know.

 

[행운잡기의 2000년대] 적당한 경비를 들여서 히트하여 돈을 벌자는 주의가 2000년대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제작자들로서는 투자한 돈을 뽑아내고 이익도 봐야 하기 때문에 수지타산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게다가 잘만하면 대박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생각으로 나온 것이 제목도 이상한 Urinetown(오줌마을: 2001), 인도 영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뮤지컬로 만든 Bombay Dreams(봄베이 드림스: 2002), 인형들이 성인의 대화를 하도록 한 Avenue Q(애비뉴 Q: 2003), 그리고 The 25th Annual Putnam County Spelling Bee(제25차 푸트남 카운티 연례철자경연대회: 2005)이다. ‘푸트남 카운티....’에서는 관객들이 철자법을 맞추는 사람들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사람들은 전부터 귀에 익어 왔던 Wonderful Town(원더풀 타운)이나 Fiddler on the Roof(지붕위의 바이올린), 또는 누구든지 성공작이라고 인정하는 La Cage aux Folles(동성연애 코미디)를 선호하였다.

 

뮤지컬 '푸트남 카운티의 연례 철자경연대회'


그리하여 오늘날 작곡자들은 이미 히트를 기록한 작품들에서 소재를 개발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면 영화로 히트한 The Producers(제작자), Spamalot(스패마로트), Hairspray(헤어스프레이), Billy Elliot(빌리 엘리엇), The Color Purple(컬러 퍼플)등이다. 실제로 현재 브로드웨이를 장식하고 있는 뮤지컬의 3분의 1은 히트 영화를 뮤지컬로 만든 것들이다. 그런가하면 누구나 잘 아는 소설에서도 스토리를 가져오고 있다. Little Women(작은 아씨들), The Scarlet Pimpernel(자주색 별맞이꽃), Dracula(드라큘라)등이 이에 속한다. 제작자들은 이런 작품을 무대에 올리면 적어도 고정 손님을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특히 월트 디즈니에서 만들었던 영화라면 어릴 때의 추억이 있어서 손님들이 올것으로 짐작했다. 공연히 이것저것 창작 뮤지컬을 무대에 올려 파리를 날리느니보다 월트 디즈니와 관련된 뮤지컬을 올리면 관광객들이라도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연! 전보다는 관객들이 더 많아졌다.

 

뮤지컬 '컬러 퍼플'
 

문제는 브로드웨이의 극장들은 거의 모두 규모가 크다는데 있다. 넓은 무대에서 출연자들이 몇 명 안되는 뮤지컬을 올릴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단독 제작이 아닌 종합제작의 형태가 등장하였다. 생각해 보시라! 어떤 뮤지컬은 거의 1천만불 이상의 제작비가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적어도 뮤지컬이라면 화려하고 규모가 커야 제맛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아직 상당히 있다는 점도 고려하지 않을수 없다. 언제나 내려가는 것이 있으면 올라가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최근에 들어서서는 스펙터클한 무대가 다시 소생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로마시대에는 무대에서 실전을 방불케 하는 대규모 해전까지 공연하지 않았던가? 지금이 로마시대보다 못하다는 이유가 어디 있는가? 이런 생각으로 나온 것이 Starlight Express(스타라이트 엑스프레스: 별빛 특급열차)였고 2006년 토론토에서 공연된 ‘반지의 제왕’이었다. 이들은 뮤지컬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스테이지 제작이었다. 물론 토론토 제작은 적자였다. 제작자들은 ‘역시 소규모가 제격이야!’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푸트남 카운티의 철자법 경연대회’ 또는 Xanadu(사나두)와 같은 뮤지컬은 계속 흑자를 보고 있지 않은가?

 

뮤지컬 '스타라이트 엑스프레스'(Starlight Express)의 무대

 

[뮤지컬 영화와 TV의 부활] 뮤지컬 영화도 허걱대고 있었다. 껌뻑할만한 새로운 뮤지컬 영화가 나오지 않아서이다. ‘사운드 오브 뮤직’이나 ‘마이 페어 레이디’처럼 몇 번을 보아도 물리지 않는 뮤지컬이 나온다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했다. 이러한 뮤지컬 영화 빈사상태를 소생시킨 인물이 있다. 바즈 루르만(Baz Luhrmann)이었다. 2001년에 내놓은 Moulin Rouge(물랭 루즈: 빨간 풍차)는 대성공이었다. 이어서 2002년에는 Chicago(시카고), 2004년에는 Phantom of the Opera(오페라의 유령), 2006년에는 Dreamgirls(드림 걸스), 2007년에는 Hairspray(헤어스프레이)가 나와 뮤지컬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다. 2000년에 나온 How the Grinch Stole Christmas!(그린치가 어떻게 크리스마스를 훔쳤는가)와 2003년에 나온 The Cat in the Hat(모자 속의 고양이)는 어린이 동화를 생생한 뮤지컬로 바꾼 것이다. 과거에 디즈니 만화라면 어린이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디즈니의 생각도 변하였다. 성인들을 위한 만화영화를 내놓은 것이다. 예를 들면 South Park: Bigger, Longer & Uncut(더 크고, 더 길고, 삭제하지 않은 사우스 파크:1999)는 뮤지컬 영화의 새로운 길을 닦아 놓은 것이었다. 게다가 인도는 이른바 Bollywood: 볼리우드) 뮤지컬 영화를 수도 없이 내놓았으며 일본은 Anime(아니메)를 내놓지 않았던가! 뿐만 아니라 TV도 뮤지컬 형태의 영화를 만들어 냈다. High School Musical(하이 스쿨 뮤지컬: 2006)은 대표적이다. 요즘들어 어떤 TV 드라마는 뮤지컬의 요소를 가미하여 흥미를 돋우고 있기도 하다. once More, with Feeling(감정을 가지고 다시 한번), Oz(오즈) 버라이어티, Space Ghost Coast to Coast(우주의 유령, 해변에서 해변으로) 등이다. 그런가하면 드라마중에 출연자가 갑자기 뮤지컬 스타일로 노래하고 춤추는 케이스도 눈에 띠게 많아졌다. 예를 들면 The Simpsons(심슨스), South Park(사우스 파크), Family Guy(패밀리 가이), Scrubs(스크럽스)등이다. TV 연속물인 Cop Rock(캅 록)은 오히려 뮤지컬이라고 부를 정도로 뮤지컬 요소를 많이 가미한 작품이다. The Mighty Boosh(마이티 부슈)도 마찬가지였다. 환영을 받았다.

 

뮤지컬 영화  '물랭 루즈' 포스터 (니콜 키드만, 에완 맥그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