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문표를 사서 동궁먼(東宮門 : 동궁문) 안으로 들어갑니다.
입장료 60원으로 또 할인되지 않습니다.
통표가 60원이었는데 사실 통표를 살 필요가 없더군요.
안에 들어가 보고 싶은 곳은 따로 돈을 내고 들어가는 게 유리할 겝니다.
그러면 본전 생각이 나서 아주 천천히 자세히 돌아다니며 보렵니다.
동궁문은 이화원의 동쪽 정문입니다.
베이징 시내에서 오게 되면 대부분 이 문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예전에는 이 문은 황제나 황후만 드나들었기에 어로(御路)라 하여 다른 사람은 가까이하지 못하였지만,
지금은 문표만 사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문입니다.
문 위에 걸린 편액에 쓴 이화원이라는 글은 청나라 광서제가 썼다고 합니다.
광서제는 서태후에 밀려 유배생활을 오래 하며 글만 썼나 봅니다.

광서제가 누굽니까?
서태후의 조카이며 함풍제의 조카이기도 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서태후에게 권력을 모두 빼앗기고 바지저고리 황제로 지내며 사랑했던 여인인 진비마저 서태후에 의해
죽임을 당했을 정도로 불쌍하게 생을 마친 비운의 황제였지요.
특히 문짝 위에 가로로 배열된 아홉 줄의 도금된 구리 못은 최고 권위의 황권을 상징하는 것이라 합니다.
아홉이라는 숫자는 황제의 권위이지요.

그러나 황제란 이렇게 현판에 박힌 구리 못보다도 못한 존재일 수도 있습니다.
담장에 용을 그렸지만, 광서제라는 황제란 바로 담벼락에 바짝 엎드린 박제된 용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기회는 있었지요.
위안스카이가 변절하며 그 꿈이 사라져 버렸지만...
위안스카이는 우리 고종황제를 알현하며 말에서 내리지도 않은 후레자식입니다.
공자가.. 맹자가...
아무리 예를 중시하고 효를 중시하며 가르쳤지만, 다 쓸데없는 이야기입니다.

동궁문을 통하여 들어가면 제일 먼저 만나는 곳이 런서우덴(仁壽殿 : 인수전)입니다.
원래는 근정전이었다고 합니다.
황제가 이곳 행궁에 머물 때 정사를 보았던 곳이라네요.
그러나 광서제가 이곳에 유폐된 후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인수전은 이화원의 여러 곳 중 주로 정치활동을 한 곳이라고 볼 수 있을 겝니다.

앞에 버티고 있는 황제를 상징하는 고동보정(古銅寶鼎)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쓰다듬어 반질거립니다.
인수전은 1860년 화재로 소실된 후 다시 지으며 기분이 나빠 이름을 바꾸었다 합니다.
그날이 바로 서태후의 회갑 날이었다 하네요.
어진 사람은 오래 산다는 의미인가요?
그래서 서태후는 오래 살았나 봅니다.

이곳에서 서태후가 국사를 논하고 정무를 보았던 곳이라나요?
수협인부라고 쓴 편액 아래에는 옥좌도 아니고 화려한 의자도 아닌 그냥 소파 같은 의자가 놓여 있네요.
어질고 오래 사시라고 인수전이라 개명했나요?
전혀 어질지 못하고 욕만 많이 먹었기에 오래 살지는 않았나요?
뭐... 욕이 배 째고 들어갑니까?
논어에 나오는 말인 인자수(仁者壽)에서 인용했다 하며 어진 사람이 오래 산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오래 살아야 합니다.

청동으로 만든 용과 봉황 기린은 만수무강하라는 의미이며 이름도 인수전으로 하고 인수전 앞에 있는 네 마리의 吉祥들도
그런 의미가 아닐까요?
그리고 인수문 양 앞에 있는 원숭이 모양과 돼지 모양인 두 개의 태호석이 있는데 이는 손오공과 저팔계를 의미하며
황제를 보호한다는 의미라 하네요.

앞에 놓인 용과 봉황은 황제와 황후를 의미하겠지만, 용은 앞발을 한 발 들고 서 있고 봉황은 두 발로 단단히 서 있으니
마치 황제인 광서제는 불안한 생활을 했음을 의미하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