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상부는 명나라 때인 570여 년 전 마을이 생기기 시작했고 청나라 시기인 강희제 때 이르러 오늘의 규모로 지어지기 시작하며
황성상부는 내성과 외성으로 구분되었고 1.700m 길이의 성을 쌓고 그 성에 아홉 개의 성문을 만들었다 합니다.
그리고 그 성 안에 크고 작은 정원을 19개나 만들었다 하네요.
가진 게 권력과 돈밖에 없었으니 이 정도 규모의 성을 수축하는 일은 그리 힘든 일은 아니었을 겝니다.
그러나 건물이 그냥 마구잡이로 지은 게 아니라, 생각하며 지었다는 점이 다른 대원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대단한 명문가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겝니다.
후손을 교육하며 점차 중앙무대로 진출하며 살림도 나아지고 결국, 재상에 이르는 사람까지 나오게 되었지요.
이런 이유로 진 서방네 가문을 북방 최고의 명문가문이라 부르나 봅니다.
명문이란 그냥 어느 날 불쑥 태어나는 게 아니라 오랜 세월 노력하고 정성을 기울여만 태어나는 모양입니다.
노력없이 이루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황각루(皇閣樓)라고도 하는 어서루는 중도장의 성문 앞에 있습니다.
화려한 조각의 대들보와 그림으로 아름답게 치장한 기둥, 낭창 하게 금방 날아갈 듯한 처마...
황가에서만 사용한다는 황금색 유리지붕을 지금 중도장이라는 건물에 올라 뒤에서 내려다봅니다.
진 서방은 자기가 살았던 본관 건물 앞에 어서루를 배치해 모든 사람에게 위압감을 줄 것처럼 보입니다.
황제가 내려준 편액을 누각 안에 걸어놓았으니 까불지 말라는 의미인가요?
뒤에서 바라보니 본관을 지키는 경비실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아닌가요?
황제가 내려준 글이 대신 집을 지키라고 개집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午亭山村이라는 현판 하나만 못합니다.
바로 이 건물에는 강희제가 친필로 쓴 편액이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게 팔면 돈 좀 될 거 같습니다.
이게 진품명품에 출품하면 값을 매기기 어려울 정도로 비싼 편액일 겝니다.
어젯밤에 올라갔을 때 몰래 떼어내 배낭에 넣어둘 걸 그랬나요?
그 시각에는 아무도 없었거든요.

공덕패방은 황성상부에서 가장 눈에 띄는 패방입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앞에 먼저 네 개의 기둥으로 만든 패방이 보입니다.
그 퍠방의 모습이 워낙 위압적이라....
그것도 하나로 부족해 두 개씩이나 만들어 놓았습니다.
뒤에 보이는 패방은 기둥이 둘이고 조금 작습니다.

이 석패방에는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하단에 보면 상서로운 짐승이 조각되어 있고 상단에는 봉황과 용이 마치 금방 꿈틀거리며 하늘로 올라가려는 듯
조각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패방 자체가 이렇게 아름답게 만든 것도 쉽게 보기 어려운 것이네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출세했으면 패방 하나로는 부족해 두 개씩이나 그것도 앞뒤로 빽빽하게 새겨놓았을까요?
가문의 영광이요, 하늘이 내린 집안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큰 패방 뒤로는 기둥 두 개의 전형적인 작은 패방이 줄이어 서 있습니다.
이곳에는 명대를 거쳐 청대에 이르기까지 진씨네 가문이 받은 벼슬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작은 마을에 이렇게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는 일은 기적에 가까운 일일 겝니다.
하물며 마을 사람도 아니고 진 서방네 가족이 말입니다.
조상 중 한 사람만 출세해도 그 가문의 자랑일 텐데 진 서방네는 그 수도 셀 수 없다 하니....

정말 이 작은 마을에서 잘난 집안임이 틀림없습니다.
천하를 호령했을 테니 얼마나 대단한 집안입니까?
패방은 쉽게 이야기하면 자랑질입니다.
이 석패방이 작아 모두 다 기록하지 못했을 겝니다.
황제가 바뀌어도 이 집안의 가문은 대를 이어 벼슬을 했다는 말이 되겠네요.
진사도 있고 거인도 있네요.
여러분도 이곳에 들리면 잠시 올려다보시며 기를 받으세요.
그리하시면 후손이 크게 출세할 겝니다.

황성상부에는 어서루(御書樓)를 만들고 황금색으로 아름답게 꾸몄습니다.
뭐 황제의 스승인데 황금으로 장식한다고 황제가 쫀쫀하게 스승보고 뭐라 하겠어요?
만약 뭐라고 트집 잡는다면 황제가 소갈머리 없는 쫀쫀한 사람이지요.
이름 또한 어서루라고 해도 모른 척 눈감고 지나가야죠.
가짜 학벌에 베껴 쓴 논문도 판치는 세상인데 황제의 진품으로 자랑 좀 했다고 누가 트집 잡겠어요.

이제 우리는 지금까지 황성상부를 크게 둘로 나누는 중도장 쪽에 있는 건물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뒤편에 있는 건물군으로 올라갑니다.
그곳으로 가는 방법은 성벽 위로 난 길을 따라가야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관광객을 위하여 걷는 길을 만들어 표시해 놓았기에 돌아보기 아주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잘나갈 때는 상관없지만, 지는 석양이 되면 이 또한 죽어 마땅한 대역죄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여도지죄라는 말도 있잖아요.
한비자(韓非子)의 세난편(說難篇)에 나오는 여도지죄(餘桃之罪)란 먹다 남은 복숭아를 드린 죄라는 말이라 했나요?
같은 일이라도 총애를 받을 때는 상관없으나 나중에 그 사랑이 식으면 죽을죄가 된다는 말이잖아요. 그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