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사진은 살벌한 전투를 준비하여 만든 장병동 앞에 있는 회랑입니다.
무섭고 두려운 전쟁을 준비해 군사를 숨긴 장병동 앞에 이런 회랑을 만들어 아름답게 꾸몄습니다.
황성상부가 다른 저택과 비교하여 유명하게 된 이유 중 제일 중요한 것은 황제가 직접 글을 써
진 서방에게 하사했다는 점일 겝니다.
진 서방의 호가 오정(午亭)이었기에 그의 시골집을 오정산촌(午亭山村)이라 불렀다 합니다.

이곳에는 그 자랑스러운 장면을 인형으로 만들어 자랑하고 있습니다.
가운데 황제가 의자에 거들먹거리는 자세로 앉아 있습니다.
왼쪽에 진 서방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뒤로 청나라 군사가 오정산촌의 촌(村)이라는 글자만 보이는 현판을 들고 진 서방 엉덩이 뒤로 보입니다.
두 여인은 아마도 궁에서 황제를 모시고 따라온 여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이유로는 신발이 황후나 지체 높은 여인이 싣는 굽이 높은 신발이니까요.
이 모습은 황제가 친필로 쓴 편액을 들고 이곳까지 내려와 진 서방에게 내리는 모습일 겝니다.

당시에 지방의 부호는 중앙에 거금을 기탁하고 후손의 명예를 위해 조정에 부탁하여 이런 편액을 받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일종의 면죄부와 같이 돈을 내고 조정의 편액을 하사받아 집에다 거는 게 유행한 적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돈이면 벌써 옛날에도 떵떵거리며 살았기에 지금도 부자에 대한 질투는 많지 않고 오히려 선망의 대상으로
닮고 싶은 목표로 보는 경향이 있나 봅니다.
돈만 많다고 누구나 편액을 하사받지는 못했을 겝니다.
명품 가방은 돈만 있으면 누구나 살 수 있지만, 명품 편액은 돈으로만 살 수 없었을 겝니다.

인구가 많은 중국의 부자란 우리의 부자와는 비교할 수 없이 큰돈을 벌 수 있었을 겝니다.
돈을 벌어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벌 수 있었고...
게다가 워낙 산적도 많고 전쟁도 잦았기에 건물 자체가 보루식 건물로 마치 성처럼 견고하게 짓고 담장 또한 넘어오기 어렵게
높이 쌓아 답답하지요.

이곳은 진씨종사(陳氏宗祠)입니다.
조상 덕에 호의호식하니 조상이라도 잘 모셔야 또 후손이 본을 받아 제삿밥이라도 잘 얻어먹지 않겠어요?
명대의 가정 원년에 만든 것으로 전, 후 두 개의 정원으로 꾸몄습니다.

앞쪽은 진씨 패밀리의 조상을 모신 곳이고 뒤쪽은 아무 상관도 없는 현인을 모신 곳입니다.
이곳은 황성상부의 정 중앙에 있어 조상을 섬기고 그 영광이 후손까지 미치기를 기원하는 의미일 겝니다.
이렇게 조상을 성심으로 모셨기에 후손이 승승장구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네요.

조상을 모시는 사당의 터가 기가 막히게 좋았던 모양입니다.
그 후부터는 후손이 줄줄이 벼슬길로 나섰으니까요.
우리나라 조선의 관복과 같은 것은 명대에 벼슬을 했던 조상이고 오른쪽은 청대에 벼슬을 했던 사람입니다.
우리나라 조선은 명나라의 관복을 따랐나 봅니다.
청나라는 오랑캐라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먼 나라라 생각하기도 했다고 했나요?

이 안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의 초상화로 빼곡히 도배했습니다.
그러나 지방 시험인 거인에 붙은 사람은 그냥 이름만 붙여 놓을 정도입니다.
조정에서 치러진 중앙시야 말로 인정을 받았나 봅니다.
다른 집안에서 거인에 패스만 하면 가문의 영광이고 자손 대대로 자랑할 일이겠지만, 진 서방네는 이렇게
한 줄로 간단하게 적어 놓았습니다.
젠장, 나이도 적어놓지 않은 천덕꾸러기도 있군요?
19살에 덜컥 붙은 자도 있고 30살에 겨우 턱걸이 한 자도 있군요?
진 서방네는 거인이란 시험은 중앙으로 올라가기 위한 디딤돌로 생각한 모양입니다.

이번에는 어사부(御史府)입니다.
이 집은 진정경의 큰아버지인 진창언의 저택입니다.
물론 큰아버지도 벼슬길에 올라 절강도 감찰어사를 역임했다 합니다.
그래서 이 집을 어사부라고 부른답니다.
이렇게 집안 모두가 한 자리씩 차지하고 세상을 호령하며 살았으니 정말 대단한 가문입니다.

집으로 들어가는 대문에는 태간청풍(台諫淸風)이라는 글자를 새겨놓았습니다.
이 의미는 진장언은 평생 일 처리에 있어 공명 정대했고 청렴 공정한 고귀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일 겝니다.
정말 그랬느냐고 묻지 마세요.
원래 세상 어느 곳이나 불편한 진실은 있게 마련입니다.
문에 설치한 석사자와 석고가 아주 멋지군요.

이 집의 정원은 특히 국가급 비물질문화유산인 양성 선철 주조 전시관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굳이 이런 전시관을 진 서방네 집 안뜰에다 만들 이유가 있나요?
김 빼기 작전도 아니고 말입니다.
석기문화에서 철기문화로 넘어가며 사실은 인간의 모든 생활이 바뀌었잖아요.
워낙 이 지방의 철은 중국 문화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곳이라 옛날 방법으로 철을 제련하는 과정을
일반인도 알기 쉽게 위의 사진처럼 자세히 만들어 놓았습니다.
철로 흥한 동네라 돈이 제법 돌았고 그 돈 냄새를 맡은 도적이 수시로 이 지방을 넘겨다 보며 껄떡거렸다 합니다.

용산공부(容山公府), 어사부(御史府), 진씨종사(陳氏宗祠), 세덕원(世德院), 수덕거(樹德居), 기린원(驥麟院) 등 건물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데 뜰마다 돌사자와 조벽들이 각자의 자태를 뽐냅니다.
어디 하나 소홀함이 없이 예술적인 감각으로 인테리어를 하였습니다.
그냥 천천히 걸어 다니며 하나씩 눈으로 보는 일도 무척 즐겁습니다.
의미를 몰라도 그냥 보고 예쁘다고 생각하면 되는 곳입니다.
왜?
시험에 나지 않으니까요.

이곳에는 어느 건물이든지 모두 대들보에는 조각을...
기둥에는 그림을, 창틀에도 조각을 화려하게 새겼습니다.
특히 창틀에는 모란과 봉황, 기화이초가 새겨져 건강이나 복을 빌고 천수를 누리도록 하였습니다.
이렇게 세상을 호령하며 살았던 사람도 바라는 것은 우리와 별반 차이를 느끼지 못하겠네요.
나라가 달라도, 시대가 달라도, 지위가 달라도 말입니다.
여러분도 건강하시고 복 받으세요.

실내에는 향목 의자와 예스러운 식탁, 화려한 조각의 침대, 발 받침대를 바라보면 마치 그곳의 주인이나 된 듯한
기분이 듭니다.
핑야오 고성 근처에 많은 대원이 있지만, 이곳만큼 다양성을 갖춘 곳은 없을 듯합니다.
진 서방의 초상화를 물끄러미 바라보니 佳人을 보며 빙그레 미소 짓는 듯합니다.
만약, 같은 시대를 살아 만났다면, 차라도 한잔하며 세상 사는 이야기도 나누고....
佳人이 정말 웃긴다. 그쵸?
중국어도 모르면서...

내성의 성벽은 명나라 말기에 쌓은 것이라 합니다.
성 위에 아장이라는 성가퀴를 쌓고 성의 두 귀퉁이에는 문창각과 관제묘를 올려놓았습니다.
계단을 따라 성 위에 올라 바라보면 성 안팎의 모습을 모두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내성을 나와 위의 사진과 같이 회랑을 따라 내성과 외성의 남쪽에 있는 별관처럼 생긴 곳으로 갑니다.
회랑도 천장에 아름다운 산수화 등으로 그림을 그려 걷는 내내 즐겁게 걸어갈 수 있습니다.
어찌 이화원의 장랑만 예쁘다 하시렵니까?
그곳보다 이곳의 회랑이 길이는 짧지만, 훤씬 화려하고 아름답습니다.
회랑 왼쪽으로는 산에서 흘러내려 온 물이 흘러 산책하는 기분을 한층 더 상쾌하게 만들어 주네요.
내일은 내성과 외성과는 다른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곳으로 가렵니다.
내일 마지막 이야기로 황성상부 이야기를 마칠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