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렵 서백후 희창은 주왕에 의해 유리라는 곳에 갇혀 지내고 있습니다.
희창의 큰아들 백읍고는 아비를 구하려고 세 가지 보물과 미녀 열 명을 주왕에게 바치며 자기가 아비를 대신해 옥에
들어가겠다고 합니다.
세상에 이런 효자 많지 않습니다.
달기는 매일 쭈구리 주왕만 바라보다가 백읍고의 수려한 용모를 본 후 잠을 이룰 수 없습니다.
오매불망 백읍고가 자꾸 눈에 아른거립니다.
젠장, 잠자리에만 들면 왜 더 또렷하게 눈앞에 알짱거립니까?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어느 날 주왕이 술에 취한 틈을 타 슬그머니 백읍고에 수작을 걸었으나 본 척 만 척 합니다.
그러니 여기서 달기가 포기할 여자라면 달기가 아니지요.
백읍고는 가야금을 무척 잘 켠다고 소문이 난 사내입니다.
그래서 가야금을 배우겠다고 백읍고를 불러 유혹하기로 합니다.
당장 1안이 실패하면 2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마친 여인입니다.
드디어 날을 잡아 백읍고를 내실로 부릅니다.
그리고 음탕한 눈을 살며시 내리깔고 목소리 또한 연인에게 속삭이듯 한마디 합니다.
"그대를 윗자리에 옮겨 앉게 하겠소. 내 자리는 그대 마음대로 하시오.
그대가 내 손을 잡고 줄을 같이 튕긴다면 금방 배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오."
요런 게 바로 수작이라는 게지요.
그러나 달기는 수작이 아니라 적극적인 배움의 자세라 합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영화 "사랑과 영혼"의 명장면을 떠올립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자다가 깨어난 데미 무어 말입니다.
왜 오밤중에 그짓을 했나 모르겠어요.
무슨 자기가 도공입니까?
도자기 물레는 왜 돌린 겁니까? 나 원 참 !!!
물레는 혼자 돌리면 재미없다고 감독이 영화에서는 샘이라는 페트릭 스웨이지도 깨워 같이 돌리라고 했지요.
그러면서 나오는 음악이 언체인드 멜로디라고 분위기 죽이데요.
남녀가 오밤중에 일어나 물레나 돌리며 흐르는 음악을 듣고 많은 여성들 뻑소리나게 갔다 하더군요.
오늘 이 노래를 특별히 올려드립니다.
네...
바로 달기가 백읍고에 노린 것이 바로 이 장면과 같은 자세라는 점입니다.
정말 분위기 죽여주는 여인이 달기죠?
그러나 영화와 현실은 다릅니다.
이건 달기의 오산입니다.
사람은 왜 로맨스를 자꾸 불륜이라 하는 겝니까?
달기는 내 자리는 그대 마음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나는 무장해제 했으니 자네 마음대로 처리하라는 말입니다.
그 소리를 들은 눈치 빵점의 백읍고가 정색을 하며 말을 합니다.
"신을 만고의 죄인으로 만드시렵니까?
사관들이 만약 이런 모습을 역사에 남긴다면 황후께서는 또 어떤 사람이 되겠습니까?
황후께서는 본디 천하의 국모로써 존경을 받고 계시고 겨우 가야금을 배우기 위해 존귀한 몸을 굽히신다면
어찌 체통이 서겠습니까?"
지금 체통이라 했습니까?
천박한 달기가 언제 체통이라는 말을 알기나 할까요?
"만약 이 소문에 궁 밖으로 나간다면 수정보다 맑고 옥보다 더 깨끗한 황후라도
세상 사람들의 조롱을 받으실 겁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달기는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들어가고 싶습니다.
두 사람만 은밀한 내실에 있는데 세상 사람이 어찌 안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달기가 수정보다 맑고 옥보다 더 깨끗하다고요?
이 말은 오히려 아닌 사람이 들으면 비꼬는 말로 들립니다.
그래서 쥐구멍을 찾았을 겁니다.
그러나 달기는 순간 속내를 들킨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고 숨이 턱 허니 막혀버립니다.
마치 도둑질하려다가 현장에서 들킨 그런 모습입니다.
정신을 차린 달기는 백읍고를 물러가게 하고 혼자 부끄러움에 오만가지 생각을 합니다.
백읍고를 마음에 두고 연정을 품었지만, 부끄러움이 증오로 변합니다.
이거 무서운 겁니다.
여자의 연정이 증오로 변한다면 그 파괴력은 쓰나미를 능가하고 태풍 매미를 넘어서잖아요.
결국, 달기는 주왕에게 백읍고가 가야금을 가르치면서 음흉한 작업을 걸어 수작을 부렸다고 고해바치자.
주왕은 당장 백읍고를 참살할 것을 지시합니다.
백읍고는 무척 어리석습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기는 매일반인데 미인계는 아니더라도 미남계라고 써서 아버지를 구하는 게 도리가 아니었을까요?
살신성인...
자신을 버려 아버지를 구했다면 만고에 효자로 기억될 것입니다.
남자는 여자가 하자고 하면 거부하거나 토를 달면 안 됩니다.
더군다나 달기같은 여자는 말입니다.
달기는 너무 쉽게 죽이면 재미가 없잖아요.
그래서 또 새로운 도전을 시도합니다.
달기가 착안하고 달기가 결정하고 달기가 걸어가는 길은 언제나 새로운 형벌의 역사가 됩니다.
늘 신화와 전설이 창조되는 게지요.
얼마나 학구적인 여인인가는 우리 모두 아는 사실입니다.
백읍고의 팔다리에 네 개의 대못을 박고 몸뚱어리는 칼로 초를 뜨듯 살점을 도려내 육젓을 담그고 살덩이는 국을 끓여
감옥에 갇힌 아비인 서백후 희창에게 먹으라고 보냈습니다.
이 일로 제후국인 주나라는 군주국인 상나라와 불구 대천지 원수 사이가 됩니다.
이런 이유로 나중에 제대로 몰아붙였죠.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형벌을 가만히 보면 그냥 형벌이 아니라 중국인의 오래된 식생활인 음식문화를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인육을 먹었던 중국인의 음식문화 말입니다.
공자도 먹었고 유비도 먹었지요.
월?
인육을 말입니다.
삼국지라는 이야기 속에서도 전투 중 군량미가 제때 도착하지 못하면 인육을 먹고 버티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춘추전국시대의 공자마저도 해라고 불리는 인육으로 담근 젓갈 없이는 밥을 먹지 못했다는데,
공자의 제자 자로가 위나라 신하로 있다가 왕위 다툼에 휘말려 죽임을 당해 해로 만들어져 자신의 식탁에 오르자
다시는 해를 먹지 않았다고 하며 집안에 고이 보관했던 모든 젓갈을 모두 버리라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만세사표라는 공자마저도 말입니다.
세상에 믿을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공자도 믿지 마세요.
그때 달기가 했다는 형벌을 살펴보면....
해형은 사람을 죽여 살을 저며 젓을 담그는 것이고, 포형은 사람을 죽여 육신을 조각내 육포로 만드는 형벌이라 합니다.
자형은 사람의 인육을 굽는다 합니다.
그런데 사마천이 쓴 사기에 기록된 이런 형벌은 그냥 형벌로 끝낸 게 아니라 사실은 중국에서는 이때부터 인육을 먹는
풍습이 있었고 진시황이 중원을 통일한 후에는 이런 것을 팔고 사는 시장까지 정식으로 열렸다 합니다.
그러니 달기 이야기에 나온 형벌은 달기가 고안한 형벌이 아니라 중국에서 인간을 먹는 식인풍습이 있었기에 나온
아주 자연스러운 이야기입니다.
해형, 포형, 자형은 사실은 형벌을 이용하여 인육을 요리하는 방법을 설명한 것이라 봐야 할 겝니다.
남의 나라 음식문화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일은 삼가해야 할 일이지만, 그래도 인육을 먹는 문제는...
오늘은 여기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