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행복하게 살고 있었지만, 그러나 언제나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지요.
송찬간포는 문성공주와 혼인하고 아름답고 꿈같은 세월을 오래 버티지 못하고
9년 만에 34세의 젊은 나이로 "임자! 나 먼저 가네~"라 하며 북망산으로 갑니다.

에고 에고 어찌합니까?
그 우람했던 근육질의 사내가 34살에 가다니요.
이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입니까?
사내 나이 34살이면 역발산 기개세(力拔山 氣蓋世)라는 나이가 아니겠어요?
이 말이 어디 항우에게만 적용해야 합니까?
佳人도 그 나이에는 날아다녔습니다.

그렇게 사랑하던 님을 남기고 초원을 거침없이 내달리며 천하를 가슴에 품었던 송찬간포는 갔습니다.
아~ 사내 나이 34이면 세상을 들어 올려도 시원치 않을 나인데...
갔습니다.
송찬간포가요.
그런데 항우의 조각상은 왜 여기에 만들었지요?
한족과 장족 간에 화친의 의미인가요?

어찌 이리도 아름다운 여인을 두고 눈을 감을 수 있을까요?
역발산 기개세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습니다.
물 설고 낯 설은 머나먼 이곳에 누굴 믿고 왔겠어요.
이제부터 문성공주는 누굴 믿고 살아야 합니까?

남자가 먼저 이렇게 요절하는 일은 일부는 여자 잘못 아닌가요?
정말 문성공주를 보는 순간 첫눈에 뻑~ 소리 나게 송찬간포는 갔더랬지요.
그것은 佳人도 알고 여러분도 아는 사실입니다.

상큼한 살 냄새에 푹 빠져 행복하게 살았지요.
우리는 첫날 두 사람이 만나는 순간부터 쭈욱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우쒸~ 이제 알콩달콩 사는 맛을 알 때가 되니 가다니요.

아주 아름답고 지혜로운 여자와 살다 보니 너무 무리했나 봅니다.
아마도 사인은 과로사가 아닐까요?
사랑의 과 로 사.

당시 관습은 남자가 죽으면 여자는 자기가 원래 살았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답니다.
이 얼마나 그리고 바라던 일이었을까요?
물론 짐은 택배로 부치고 말입니다.

문성공부는 당나라 장안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성공주는 척박한 토번에 와 자기가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지 새롭게 눈을 뜹니다.
슈바이처도 그랬고 테레사 수녀도 그랬걸랑요.
장안성 안의 편안한 삶에서 느끼지 못했던 행복과 보람을 문성공주는 척박한 라싸에서 느꼈습니다.
사랑은 받을 때 행복하다 하지만, 사실은 줄 때 더 행복하다는 사실을 문성공주는 알아버렸습니다.
행복함을 아는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동안 즐겁고 행복하게 보냈던 시절을 생각하면 공주는 이곳의 사람들을 버리고 쉽게 떠날 수 없습니다.
투박한 미소가 눈에 밟혀 떠날 수 없어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눈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오히려 여기가 천국이고 해야 할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난 보람을 느낄 수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문성공주는 "그래! 결심했어~ 나는 나를 원하는 곳에서 살꼬야~"라고 마음먹습니다.
이런 여자이기에 토번 사람에게 아직도 깊이 각인되어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 아름답게 산 문성공주도 54세의 나이로 라싸에서 숨을 거둡니다.
평생을 라싸에서 지내며 장안의 뉴 트렌드를 언제나 앞장서 받아들여 라싸에 가져왔고
토번 사람이 조금 더 행복해지고 편리해질 수 있다면 어떤 일도 마다치 않았습니다.
그녀가 티베탄에게 끼친 영향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나이가 들었어도 그녀는 문성 할머니가 아니라 공주입니다.
1500년도 지났지만, 지금도 문성공주입니다.
한번 공주는 영원한 공주입니다.

아름답게 산다는 일은 어떤 일입니까?
사람마다 그 기준이 다르잖아요.
어떤 사람은 명품가방을 들어야만 행복하다 느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봉사함으로 삶의 의미를 느끼고 살아가지요.
그녀가 죽자 토번은 마치 친어머니가 죽은 것처럼 온 나라가 비통에 잠겼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녀를 기리는 사당을 티베트 어디에나 볼 수 있답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한평생 살아도 이렇게 아름답게 산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정략결혼이었고 공주도 아닌 여자를 공주로 과대 포장하여 시집을 보냈지만, 티베트는 그녀를 통하여
중원의 앞선 문물을 받아들임으로 대변혁을 이루었으며 당나라도 골칫거리인 토번이나 그 이웃에 있는 민족으로부터
한동안 조용히 살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