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없는 이 바아알길~"
그래요 나그네 설움이 아니겠어요?
사실, 철저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길을 나섰지만, 이런 매서운 겨울은 겪어보지도 못했고 또 아무리 추워도
실내에 난방하고 살았기에 문성공주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나 봅니다.
가끔 그녀의 눈에 맺힌 눈물을 본 사람은 佳人 외에는 없었습니다.
강물을 거슬러 본 사람만이 그 강물의 세기를 알 수 있다 했습니다.
이런 역경을 헤치고 간 문성공주였기에 나중에 중원으로 돌아올 기회가 있었지만, 과감히 포기하고 영원히 티베탄과
함께했는지 모릅니다.
아름답다라는 말은 용모뿐이 아니라 이런 마음이 더 중요한 가치를 지닌게 아닐까요?

당시에 전하는 중국스러운 말에 의하면 공주가 이 시를 짓자 흐르던 강물이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서쪽으로 흘렀다 하면
여러분은 믿으시겠어요?
물론 믿기 어려울 겁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환장하게도 물줄기가 반대로 흐르는 강이 있어 도류하(倒流河)라는 이름의 강이 있답니다.
정말 못살겠다~

한 달여의 모진 고생을 하며 이듬해 봄, 문성공주는 드디어 황하의 발원지이자 토번의 변경인 하원(河源)에 도착합니다.
참 멀고도 험한 길이었습니다.
평생을 궁 안에서만 살던 문성공주는 처음으로 거친 땅을 가로질러 먼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하원이라는 동네는 이름조차도 물의 근원이라네요.
시기적으로 봄이라 이곳은 제법 풀이 돋아나고 양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그런 곳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보면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하더군요.

문성공주는 지금까지 풀 한 포기 없는 척박한 길을 왔기에 내심 걱정했지만, 이 평화로운 모습을 보니
걱정 하나는 던 것 같았습니다.
아무리 동토의 땅이라도 이렇게 계절이 바꾸며 새로운 풍경을 보여줍니다.
세상은 아름다운 봄을 더 아름답게 하려고 겨울은 그리도 춥고 쌀쌀맞게 했나 봅니다.
이런 곳이기에 여기도 사람이 살았고 그 척박한 가운데에서도 사랑이 움텄나 봅니다.
사랑은 보고 느낀 자는 정말 위대한 사람입니다.

오랜만에 이곳 하원에서 쉬며 원기를 차리는 동안, 라싸에 머물던 송찬간포는 공주가 하원에 도착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냥 참고 기다릴 수 없지요.
곧바로 금위군을 이끌고 앗싸~ 하면 라싸를 출발해 하원으로 내달립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공주에 대한 기대감...
사내라면 그게 얼마나 궁금한 일인지 알 거예요.

특히 그는 한족과 장족이 이제는 한집안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에 당나라에서 선물한 한족 스타일 두루마기와 허리띠를 두르고
예쁘게 단장하고 먼 길을 달려온 신부를 만납니다.
佳人이 옆에서 송찬간포를 보니 싱글벙글... 어찌할 줄 몰라 합니다.
그래서 눈짓을 주었지요.
아니 아니 아니 되오~ 왕이면 왕답게 체통을 지키라고요.
송찬간포도 쑥스러웠는지 빙그레 웃더군요.
이로써 토번의 역사상 처음으로 한족의 옷을 입은 토번사람이며 한족의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는 첫 번째 토번의 왕인 셈입니다.

송찬간포는 공주에게는 알리지 말라고 하며 단숨에 달려왔답니다.
사실 그래야만 공주가 더 놀랄 것 아니겠어요?
아마도 도착해 문성공주에게 "서프라이즈~"라고 하려나 봅니다.
배려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하는 거라고 했잖아요.

토번의 황량한 광야를 말달리며 거칠게 살아왔던 송찬간포...
생전 처음 보는 화려한 장식으로 더욱 아름다운 문성공주를 보는 순간 숨이 멎습니다.
꽃이 피었기로 이렇게 탐스럽고 예쁘게 피었을까요?
佳人이 옆에서 건들지 않았다면 아마도 송찬간포는 바로 그 자리에서 숨이 멎어 죽었을 겁니다.
넓은 초원을 달리며 거칠 게 없이 살아온 사내라도 이렇게 여자 앞에는 심장이 벌렁거립니다.
지금은 토번을 호령하는 왕이 아니라 신부를 처음 보는 순간의 평범한 사내잖아요.

지금까지 거칠고 까무잡잡한 여자만 보다가 우유보다 더 뽀얀 피부의 여인을 보니 그럴 수밖에요.
그녀의 하얀 피부는 마치 어린아이의 피부보다 더 보드랍고 피부에서 풍기는 냄새조차 숨을 멎게 합니다.
순간 어찔한 느낌이 들어 휘청거리기에 佳人이 부축했지 그렇지 않았으면 젊은 사내가 꽈당하며 자빠져버렸을 거에요.
냉수 한 대접 권하니 단순에 벌컥벌컥 다 마셔버립니다.

문성공주 또한 송찬간포를 보는 순간 중원의 기생오라비 같은 그런 사내와는 다른 까만 피부에
고원의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초원을 야생마처럼 질주하며 살아온 강인한 근육질의 사내를 보는 순간
"아~ 사내란 역시 강한 맛이 있어야 해~"라는 생각에 미치자 그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하는 짧은 탄식과
입가에 살며시 미소마저 피어오릅니다.
그래요... 맨날 어디 음식점 메뉴판에 김치찌개만 보고 삽니까?
가끔 스테이크도 보고 짜장면 같은 새로운 메뉴도 보며 살아야지요.
순간적으로 문성공주는 송찬간포의 단단한 가슴에 팍 안기는 상상을 하다가 佳人이 바라보니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붉히네요.

그 미소를 보는 순간 송찬간포 역시 "이 사람이 바로 내 여자야!"라는 생각에 미치자
이번에는 왜 또 환장하게도 가슴이 벌렁거리고 손발이 덜덜거리며 오그라드는 것 같습니다.
이런 기분 태어나 처음입니다.
천생연분...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요?
문성공주도 송찬간포의 사내다운 모습에 그만 가슴에 팍! 안기고 싶은 감정을 억누르고 그동안 몇 달간 고생하며
여기까지 온 고생이 춘삼월 봄눈 녹듯 사라지고 아지랑이 저 멀리 아름다운 무지개 속으로
갑자기 초원을 가르며 나무 한 그루를 빙빙 돌며 신성일 엄앵란의 촌스러운 "나 잡아 봐라~'라는 놀이가 하고 싶어집니다.
그래요.
가장 촌스러운 게 가장 아름다운 놀이일 수 있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이렇게 유치찬란한 佳人의 이야기도 때로는 심심풀이로 좋을 때도 있지요.

그날 밤...
문품송이 이루어졌답니다.
문품송이 뭐냐고요?
문성공주를 품은 송찬간포지 뭐겠어요. 그쵸?
중간 부분은 생략합니다.
하늘이 놀라고 땅이 흔들리는 첫날밤을 보낸 두 사람은 아침에 해가 중천이 되도록 일어나지 못합니다.
이로써 문성공주를 따라온 일행과 송찬간포의 금위군은 비상해제에 들어가 하루를 쉬는 특별 휴가를 받습니다.
아니군요?
하루만 쉬는지 알았는데 열흘간 푹 쉬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