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저우는 유비에 있어 약속의 땅이었고 또한 저주의 땅인 셈입니다.
같은 장소라도 이렇게 천당과 지옥이 될 수 있나 봅니다.
유비가 제대로 된 성을 얻어 당시 군벌로 안팎으로 대우 받고 행세하게 된 근거지가 바로 징저우 성이었고
촉한을 세우는 근본이 된 곳이 바로 징저우 성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어요?
이때까지는 희망의 땅이었습니다.
마치 쌍무지개 뜨는 황홀한 미래를 그린 곳이지요.

그리고 유비가 천하 통일의 대업을 물거품으로 돌리게 된 이유도 징저우 성을 지키던 관우가 지키라는 성은 지키지 않고 군사를
끌고 밖으로 싸돌아다니다가 오나라 여몽의 협공을 받고 사망하며 장비도 유비도 모두 사망으로 이르게 한 곳도 여기이기 때문에
저주의 땅인 셈이죠.
지키라고 할 때 지키기만 하면 될 텐데...
골목대장 놀이라도 하고 싶었나 봅니다.
결국, 중국인이 신으로 모시는 관우의 방심과 오판으로 징저우만 잃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관우의 오만한 성격은 결국 손권의 아들을 관우 딸과 혼사를 치르자는 제안을 범의 자식을 어떻게 개의 자식과 혼사를
치를 수 있느냐고 막말을 하는 바람에 손권의 자존심을 건드렸고 이는 관우의 목숨까지 연관 지어 버립니다.
물론 그게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겠지만...
그럼 손권이 개를 낳았다는 말인가요?
유비 부인 중 손 부인이 손권의 여동생인데 그럼 완전 개판인가요?
관우가 하늘처럼 떠받드는 주군이 개와 살았다는 말입니까?
공명은 방통이 죽자 서천으로 떠나며 관우에게 뭐라고 신신당부했습니까?
북쪽이 조조를 막고 손권과는 동맹하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렇다면 혼사가 들아왔더라도 점잖게 사양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렇게 하는 게 보통 사람의 사양방법이 아니겠어요?

관우는 손권을 강동의 오소리라고도 함으로 손권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오만함도 보인 경솔한 사람임이 틀림없나 봅니다.
어디 오소리 얼굴 한번 보고 갈까요?
여러분은 이렇게 잘 생긴 오소리 본 적 있으세요?
그리고 사람 생김새를 가지고 흉보는 게 아닙니다.
그런 일은 천박한 일이지요.
더군다나 천하의 관우가 말입니다.
결국, 이 모든 문제는 관우가 스스로 초래한 일이며 대업을 망치게 한 가장 큰 원인 제공을 했다는 책임론에서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또 한 사람...
오만함으로 말미암아 인생은 망친 사내가 있었죠.
마속 말입니다.
가정을 지키라는 명령을 무시하고 적을 섬멸한다고 군사를 이끌고 산꼭대기로 올라갔다 망한 사내 말입니다.

관우는 징저우 성만 잃는 게 아니라 자기 목숨과 장비, 유비의 목숨까지 한꺼번에 가져갔으며 이로써 한실의 재건이니
천하 통일이니 하는 것은 그냥 구호에만 그치고 물 건너가게 되었잖아요.
무슨 신이 자기 하나로 이렇게 큰 사건을 초래했나 모르겠어요.
정말 어처구니없는 관우네요.
관우에게도 빠떼루가 필요할까요?

형주란 바로 천하 제패를 위한 첫걸음인 셈입니다.
유표는 원래 황족이기에 처음으로 형주에 부임하여 내려와 그런대로 아주 행복하고 조용한 세월을 보냅니다.
그러나 형주는 당시 중원에서는 아주 풍요로운 지역이었고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전략적 도시이기에 일찍이
오나라의 노숙 자경은 오나라 군주에게 삼분 천하를 건의합니다.
이는 공명이 주장한 삼분 천하보다도 더 빠른 시기였지요.

공명과 다른 점은 공명은 오나라와 위나라 그리고 촉으로 나누는 삼분 천하였지만, 노숙의 주장은 위나라 조조와
손권의 오나라 그리고 형주의 유표가 천하를 셋으로 나눈다는 게 다른 점입니다.
그러니 여기에는 유비는 안중에도 없었지요.
그만큼 유표가 차지했던 형주는 나라의 기틀이 될 정도로 대단히 좋은 지형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유비란 당시에는 미미한 떠돌이였다는 말이기도 하고요.
공명이 처음 유비를 만났을 때 첫 마디가 바로 형주를 취하고 익주를 취한 후 천하를 셋으로 나누라고 하였지요.
형주란 세 나라가 첨예하게 머리를 맞댄 곳으로 그 전략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곳이라는 의미일 겁니다.
원래 조조가 차지하고 있었던 곳으로 조조가 손권과 싸우는 사이에 유비는 큰 힘도 들이지 않고 슬쩍 먹어
형주를 취하게 되므로 이곳은 늘 누구나 눈독을 들이고 째려보고 있는 곳이 되었다네요.

물론 형주의 군주였던 유표가 연의 상에서는 유비에 맡아달라고 했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작가의 소설이고...
그 이유로는 유표는 유비를 같은 종씨라고 예로 대했지만 늘 유비의 음흉한 속마음을 의심했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유표가 중병에 걸렸을 때 그의 큰아들조차 아비의 병문안을 할 수 없었는데 어찌 유비가 감히 이런 이야기를
유표와 독대하고 들을 수 있었겠어요.
만약, 독대했다 하더라도 이는 유비가 독대 후 나와 지어낸 말이라는 게 맞을 겁니다.
유표의 부인이었던 채씨가 괴월과 함께 유표 주변을 장악하고 있었기에 사실이 아니었을 겁니다.
만약, 그런 이야기가 사실이었을지라도 유비는 거절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지요.
만약, 그 자리에서 형주를 맡아 다스리겠다는 약속을 덥석 했더라면 바로 채모를 위시한 그 주변 사람이 심어놓은 자객에게
바로 칼을 맞고 저세상으로 갔을 겁니다.
그러니 정확하게 말하면 만약, 그런 말을 유표가 했더라도 안 받은 게 아니라 못 받았다는 게 정설일 겁니다.

조조는 관도대전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북방을 안정시켰고 그다음 항상 서북쪽 뒤가 불안했던 서량마저도 안정시키고
이제 눈을 남방으로 돌립니다.
그 첫 번째 목표가 바로 군사적 요충지인 형주를 공략하고 그 주변을 안정시키는 일이지요.
이곳 형주란 이렇게 운명적으로 조조가 손을 뻗고 싶은 최우선 순위의 장소입니다.

이를 위해 업성 주변에 큰 인공호수를 파고 그곳에서 수군을 훈련하죠.
오나라 손권도 이곳 형주의 중요성을 알기에 우선 강하라는 곳을 공략해 점령합니다.
이는 형주를 염두에 둔 근거 확보라고 봐야 할 겁니다.

조조가 군사를 이끌고 밀고 내려오자 형주를 물려받은 유표의 둘째 아들 유종은 얼른 조조에 투항합니다.
유종은 큰아들 유기와는 배다른 형제로 채 부인이 낳은 아들이라죠.
유비요?
유비의 특기가 이때도 나오지요.

남으로 도주를 시작합니다.
그곳은 강하라는 곳으로 이미 유표의 큰아들인 유기를 공명이 지혜를 빌려주어 내려보냈던 곳이죠.
이때 민초 10여만 명이 유비의 어진 성품을 사모(?)해 따라나섭니다.
정말 왜 따라나섰을까요?
공명은 유비에게 먼저 빨리 피신하라고 하지만, 유비는 여기서 또 멋진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관중의 소설을 보면 유비는 공명에 "민초가 나를 버릴지언정 내가 먼저 민초를 버리지 않겠다."
이 말은 조조가 했다는 말 "내가 천하를 배반할지언정 천하가 나를 배신하는 꼴을 보지 못하겠다."는 말고 비유해
조조는 간웅으로 만들고 유비는 덕과 인을 숭상하는 어진 사람으로 만든 말입니다.

조조가 들어오면 그 마을을 아주 깡그리 불살라버린다고요?
설마 그랬을라고요.
이 모든 게 작가가 쓴 소설에 불과한 이야기일 겁니다.
조조도 행군할 때 보리밭도 밟지 못하게 한 어진 사내였지요.
한번은 자기가 탄 말이 새가 푸드덕 날며 말이 놀라 갑자기 보리밭으로 들어갔을 때 법은 존귀한 사람에게는 적용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스스로 상투를 자르며 속죄한 적도 있는 멋진 사내였답니다.
물론 보여주기 위한 이벤트였겠지만...

물론, 서주에서 조조 아비가 죽자 조조는 서주를 모두 불살라버리는 그런 짓을 했지만,
그 후 그를 따르던 많은 책사가 뭐라고 하는 바람에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천하가 따르지 않는 영웅은 영웅이 아니잖아요.
중국 모든 왕조의 수명이 짧은 이유는 워낙 지역이 넓기 때문에 지도자의 생각이 곳곳에 미치기 어렵고 그로 말미암아
지방마다 다스렸던 지도자들의 탐욕이 민심이반의 원인이었을 겁니다.
민심을 얻어야 천하를 얻는다는 말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영웅도, 천하도 필요없는 佳人은 민심을 얻기 위해 그런 일을 할 이유가 없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