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1882년 이 자리에 성당을 만들려고 준비할 때는 건축가가 가우디가 아니었다 합니다.
제일 처음 이 성당을 생각한 서적상인 보카벨라라는 사람은 성 요셉을 향한 신앙심이 대단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전 재산을 모두 털어 성 요셉을 섬기는 성전을 짓고 싶었나 봅니다.

그는 성전 건축 위원회가 설립되고 처음 이 성전의 건축을 책임진 사람은 가우디가 아니라
그의 스승인 프란시스코 데 P 비야르라는 사람이었다네요.
건축이 시작되고 일 년이 지날 즈음...

워낙 대단한 건축물이기에 큰 비용이 들어가게 되고 그 비용을 줄이기 위해 돌 사용을 줄이고 벽돌 사용을 권장했답니다.
비야르는 처음 그가 설계한 방법을 바꿀 수 없다고 주장하고 성당 건축에 손을 뗀다고 선언했답니다.
당황한 건축 위원회는 그에게 계속 맡아달라 부탁했지만, 그는 자기의 애제자인 32살의 젊은 가우디를 천거함으로
이 성전의 역사가 가우디로 바꾸며 새롭게 시작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위원회에서 극구 만류하고 계속 맡아달라고 했지만, 그는 애제자의 능력을 믿었나 봅니다.
위원회는 아마추어처럼 왜 그래~

그러니 이 세기적인 건축물은 이런 이유로 가우디라는 걸출한 건축가를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니...
그럼 가우디는 반품 들어온 것을 처리했다는 말입니까?
사람 팔자 아무도 모릅니다.
지금에 이르러 그를 가르친 스승은 몰라도 청출어람인 가우디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요.

그러나 처음 계획이 틀어지며 이듬해 가우디가 성당 설계의 책임을 맡게 되어 지금까지 짓고 있다고 합니다.
만약, 처음 설계대로 성당이 지어졌다면, 우리가 흔히 보아왔던 그저 그런 모습의 성당이었을까요?
그 또한 알 수 없는 일이겠지요?
그러나 결과적으로 가우디에 의해 세계적인 건축물이 탄생했네요.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 성당을 보기 위해 수백만의 관광객이 이곳으로 모여듭니다.
그들이 이곳에 뿌리는 돈이 엄청나지 않겠어요?
그래서 가우디가 바르셀로나를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나 봅니다.
수난의 파사드로 나가는 문에는 이렇게 가운데 Jesus라고 쓴 청동으로 만든 문이 있습니다.

문을 나서면 바로 가운데 기둥에 묶인 예수의 조각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무척 고통스러워 하지요?

서쪽 파사드는 수난의 파사드라고 하며 가우디가 아닌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이곳 바르셀로나 출신 건축가인
조셉 마리아 수비라츠(Josep Maria Subirachs 1027.3.11-2014.4.8)에 의해 완성되었다 하네요.
남쪽의 문은 영광의 문이라 하며 아직 공사 중이라고 합니다.

가우디 말했지요?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은 신의 선이다.”
그러나 가우디는 신을 위해 위의 사진처럼 그의 조각품에 곡선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수비라치는 아래 사진처럼 인간의 선이라는 직선을 사용했습니다.

이게 뭡니까?
가우디 이론에 반기를 드는 겁니까?
위의 사진에 보이는 파사드가 바로 수비라츠에 의해 완성된 고난의 파사드라는 서문입니다.
우리 같은 사람이 보아도 두 사람의 색깔이 완전히 다릅니다.
고전적이고 현대적이고...
사실적이고 추상적이고...
둥글고 부드럽고 모나고 각지고...
그래도 시작과 끝이라는 알파와 오메가를 출입문 바로 위에 새겨놓았습니다.
아마도 시작과 끝을 모두 신을 위해 바친다는 의미일까요?

그러나 위의 사진처럼 그는 수난의 파사드에 가우디의 모습을 남기므로 다르지만, 그의 정신을 계승했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나 봅니다.
그런 그도 2014년 4월 8일 타계했다는 소식입니다.
그는 수난의 파사드 외에도 몬세라트에 있는 Ramon Llull이라는 작품이 있고 카탈루냐광장의 조형물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올림픽 공원에 그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파사드에 새긴 조각은 예수의 마지막 삶 중 마지막 이틀간의 이야기를 그렸다 합니다.
재판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까지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고통스러운 장면이 많이 보입니다.
원안은 가우디의 생각이지만, 가우디 사후 30년이 지난 1954년 수비라치라는 조각가가 수난의 파사드를 완성하게 되었지요.
표현은 개인의 생각 차이겠지만, 그 의미는 두 사람이 같지 않을까요?

그는 평소 존경했던 가우디의 작품을 이어받는다는 의무감과 영광에 무척 부담감을 느꼈을 겁니다.
동쪽 탄생의 파사드는 조각의 형태가 무척 고전적이고 부드럽고 곡선을 많이 이용했다면,
이곳 서쪽은 현대적이고 추상적이고 직선의 모습을 볼 수 있네요.
같은 성당이라도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이렇게 크게 달라집니다.

오랜 시간 가우디를 연구하고 그의 작품을 관찰하며 공부했고 드디어 수난의 파사드를 완성했다네요.
그러나 그는 자기의 색깔대로 가우디와는 달리 추상적이고 직선을 사용해 단순화함으로 현대적인 모습을 연상시키네요.
최후의 만찬 모습이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모습은 우리 눈에도 사뭇 달라 보입니다.
예술이란 같은 답을 이렇게 서로 달리 표현하지만, 의미는 같다는 매력이 있네요.

제일 위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이 보이고 그 아래 한 여성이 손수건을 들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예수가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의 언덕을 오를 때 베로니카라는 여성이 자신의 손수건으로 예수의 얼굴을
닦아주었다는 이야기를 표현한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나 손수건에는 예수의 얼굴이 선명한데 베로니카의 얼굴은?
작가가 익명으로 처리하려 했을까요?
아니면 베로니카가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달라고 부탁해서일까요.
그러나 베로니카의 얼굴 모습은 만들지 않았네요.
미완의 여백인가요?
그러니 더 궁금해지잖아요.

위의 사진은 작전타임 시간이 아닙니다.
노동자들의 식사나 휴식시간도 아닙니다.
최후의 만찬 장면입니다.
사진 찍기도 쉬운 위치가 아니네요.

앉아있는 사내가 무척 괴로워하는 모습을 그렸네요.
조각 왼쪽에 수탉도 보이고요.
닭잡아 먹고 오리발 내미는 모습인가요?
이 조각은 예수의 제자인 베드로에 대한 이야기를 그렸나 봅니다.
예수가 예언했다지요?
수탉이 울기 전에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한다는 말 말입니다.
이번에는 오리발이 아니고 닭발인가요?

"이 사람을 보라!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발견하지 못하였다,"고 고뇌하는 사내.
죄가 없음을 알고도 유대인들의 요구에 따라 유죄판결을 내리고 고민하는 모습인가요?
사람은 현실을 알고도 행동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말 힘든 결정이 아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