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염시태(
방, 방, 방... 정말 많은 방이 연속적으로 이어집니다.
그 방에는 유물이나 예술품을 전시해 두기도 하고 또 어떤 방은 방 자체가 유명 화가가 그린 그림이 있는 곳도 있습니다.
그런 곳은 방 자체가 예술품이라는 말이겠죠?
교황이 머무는 곳은 이렇게 명품으로 치장하고 사나 봅니다.
이런 곳에 살면서 과연 핍박받고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사람의 아픔을 알 수 있을까요?
정말 아름다운 프레스코화죠?
바티칸 박물관에는 무척 많은 방이 있어 기억만으로는 다시 재생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 같은 기억력이 좋지 않은 사람의 가장 좋은 방법은 이동 순서를 사진으로 남기는 방법이 가장 좋습니다.
다녀와 사진을 순서대로 보면서 다시 그 시간으로 들어가 봅니다.
1858년 교황 피우스 9세는 프란시스코 포체다노에게 이 방의 그림을 부탁했답니다.
교황이 1854년 8월에 선포했던 무염시태 교리의 의미를 살리는 프레스코화를 부탁했답니다.
아마도 위의 사진에 보이는 모습이 교황 피우스 9세가 선포했을 때의 장면으로 생각됩니다.
옛날에 무염시태라는 말은 사용했지만, 요즈음에는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conceptio immaculata)라고 한다네요.
그 명칭이 어떻게 변했던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너무 어려운 말입니다.
이 말은
가톨릭
이제 라파엘로의 방으로 건너갑니다.
라파엘로라고 하면 누구나 이름을 한 번 정도는 들어보았을 화가가 아닌가요?
시스티나 성당에 만족하지 못한 교황 율리우스 2세는 1508년 그의 서재를 위해 만든 방이 라파엘로의 방이라 합니다.
모두 네 개의 방이 있는데 연대순으로 보면 서명의 방, 엘리오도르의 방, 보르고의 화재의 방 그리고 콘스탄티누스의 방이
있는데 이중 아테네 학당을 그린 서명의 방이 가장 유명하다고 하네요.
봉숭아 학당이 아니고 아테네 학당이랍니다.
당시 26살이었던 라파엘로에게 방을 마음대로 채우라고 했다네요.
정말 파격적인 제안 아닌가요?
처음에는 알지도 못한 라파엘로를 브라만테의 추천으로 알게 되며 교황청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네요.
브라만테는 라파엘로가 같은 고향 사람이라고 적극적으로 추천했다니 고향이 다른 사람은 어디 서러워 살겠어요?
이렇게 예술계도 동향을 우대하니...
이는 그만큼 라파엘로의 재능을 믿고 맡겼다는 의미겠네요.
그러나 라파엘로는 이곳의 프레스코화를 모두 끝내지도 못하고 젊은 나이에 요절하자 그의 제자들이 마무리한 곳이랍니다.
교황은 라파엘로를 추기경으로 임명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니 정말 아꼈나 봅니다.
그의 대표작은 뭐라고 해도 아테네 학당이 아닐까요?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 등 역사적인 학자를 모두 한곳에 모은 상상화 말입니다.
위의 사진처럼 바티칸 박물관의 입장권에는 라파엘로가 그렸다는 아테네 학당의 그림 일부가 있습니다.
내일부터 라파엘로가 그렸다는 방의 그림을 구경하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라파엘로 산치오 다 우르비노(Raffaello Sanzio da Urbino, 1483년 4월 6일 ~ 1520년 4월 6일)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유명한 화가 중 한 사람입니다.
그의 생애는 태어난 날과 사망한 날이 묘하게 같은 날입니다.
그러니 생일날 죽었다는 말이네요.
천재는 뭐가 달라도 다르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