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훈 국제부 차장

입력 : 2011.07.10 23:06 조선일보

김태훈 국제부 차장
영국 런던 그로브너광장에서 지난 4일 고(故) 로널드 레이건(1911~2004) 전 미국 대통령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당초 대처 전 총리가 축사를 할 예정이었으나 건강이 나빠 참석하지 못하자 윌리엄 헤이그 외무장관이 대처의 축사를 대신 읽었다. 그 축사에 이런 구절이 있다. "다음 세대들이 이 동상을 보며 그가 우리에게 베푼 것을 되새기기를 바랍니다." 대처가 사용한 '다음 세대(future generations)'와 '되새긴다(remind)'란 표현을 보며 역사의 동어반복(同語反復)적 속성을 떠올렸다.

레이건은 소련을 해체하고 탈냉전 시대를 연 인물이다. 레이건이 냉전체제를 끝내는 과정을 지켜본 대처는 "그가 총 한 방 쏘지 않고 일을 해냈다"고 말한 적 있다. 그런데 동서냉전 해소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레이건은 평화를 입에 올리기보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소련을 압박하는 정책을 썼다. 당시 소련과의 평화공존을 외치던 미국 내 진보진영은 그에게 '전쟁광(狂)' '대결주의자'라는 비난을 퍼부었다. 하지만 오늘날 세상은 누가 옳았는지 다 알고 있다.

동서냉전의 최후 현장인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길을 두고도 30년 전 대소(對蘇)정책을 놓고 벌어졌던 갈등의 역사가 그대로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해 한 문학기행 행사에 참가했다가 천안함 폭침을 둘러싼 논쟁을 지켜봤다. 당시 한 참석자가 천안함을 공격한 북한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하자 다른 참석자가 "그러다 전쟁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평화가 깨지면 당신이 책임질 수 있느냐"고 따졌다. 구체적 양상은 레이건 시대와 다르지만 본질은 무엇이 평화를 지키는가라는 물음을 둘러싼 갈등의 반복이었다.

레이건이 소련과의 군비경쟁에 나선 것은 전쟁을 원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평화를 담보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당시 경제난에 몰린 소련으로 하여금 승산 없는 군비경쟁을 포기하게 하는 현명한 전략이었던 것이다. 이는 재임 시절 공산세력과의 공존만이 평화를 위한 길이라고 외치다 소련에 조롱당하며 실패만 거듭했던 카터의 외교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미국의 보수논객 스티븐 헤이워드는 '지미 카터의 진실(The Real Jimmy Carter)'이라는 책에서 "인권과 평화를 내건 카터의 대외정책은 한마디로 패배주의"라고 지적했다.

유럽에서는 요즘 레이건 추모 열기가 한창이다. 옛 동구권의 헝가리·폴란드·체코 등 동유럽 국가들이 레이건의 업적을 기리는 행사를 잇달아 열고 있다. 반면 '평화주의자' 카터에게 감사를 표했다는 소식은 어디서도 들리지 않는다.

카터는 헛된 평화 구호를 앞세워 한반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북핵 위기를 평화롭게 해결한다며 1990년대 중반 북한에 들어갔다가 결과적으로 북한에 핵개발 시간만 더 벌어주고 말았다.

최근 한·미 양국에서 대북 관계를 개선하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우리 정부도 그 필요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궁극적 관계개선과 평화정착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다만 레이건의 길과 카터의 길 가운데 무엇을 마음에 되새겨야 할지 곰곰이 따져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