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이성훈 특파원

입력 : 2012.03.14 02:12  조선일보

伊 궁전, 바사리가 그린 벽화에 "찾으라 그러면 발견할 것이다"
내시경·레이저 검사했더니 다빈치 사용 특유의 물감이… 다빈치의 '앙기아리 전투' 추정

1975년 이탈리아 피렌체 베키오 궁전(현 피렌체 시청사). 마우리치오 세라치니 미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르네상스 예술의 거장 조르조 바사리가 그린 벽화 '마르치아노 전투'를 찬찬히 뜯어보고 있었다. 이탈리아 출신의 공학자인 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잃어버린 명화를 추적 중이었다. 세라치니 교수는 한 전투병이 든 초록색 깃발에서 이탈리아어로 된 문장 하나를 찾아냈다. '체르카 트로바(Cerca Trova·찾으라, 그러면 발견할 것이다).'

세라치니 교수는 이 문장이 다빈치의 미완성 걸작 '앙기아리 전투'의 존재를 암시하기 위해 바사리가 남긴 메시지라고 확신했다. '앙기아리 전투'는 다빈치의 스케치와 후세 화가들의 모사(模寫)를 통해 존재했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뿐 흔적을 찾을 수 없는 미술계 최대 미스터리였다. 30년 넘는 다빈치 그림 찾기가 이렇게 시작됐다. 그 집념이 세인의 관심을 끌며 '다빈치 코드' 소설과 영화에선 예술품 진단 전문가로 실명이 등장했다.

(위 사진)세라치니 교수 탐사팀이 이탈리아 피렌체의 베키오 궁전에 있는 조르조 바사리의‘마르치아노 전투’벽화에 구멍을 뚫고 벽 뒤에 있는 또다른 벽화의 성분을 분석하고 있다. (아래 사진)1975년부터 그림의 행방을 추적해 온 세라치니 교수는 바사리의 벽화를 현수막으로 가린 뒤 구멍을 뚫었다. 현수막에 그려진 이 그림은‘앙기아리 전투’를 모사해 그린 것으로 알려진 루벤스의 작품이다. /로이터 뉴시스

피렌체공화국은 1500년대 초 그 지역에서 활동하던 두 천재 화가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에게 베키오 궁전 내 '500년의 방' 양쪽 벽에 각각 그림을 그리도록 했다. 다빈치에게는 피렌체가 밀라노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앙기아리 전투', 미켈란젤로에겐 피렌체가 피사에 대승한 '카시나 전투'가 그림의 주제로 주어졌다.

하지만 미켈란젤로가 교황의 부름을 받고 로마로 떠나면서 두 사람의 '맞대결'은 무산됐다. 이미 '최후의 만찬'을 완성했던 다빈치는 1505년 그림 작업에 돌입했다. 다빈치는 이 과정에서 기존에 쓰지 않던 새 물감으로 벽화를 그려나갔다. 하지만 이 물감은 빨리 마르지 않고 흘러내리는 단점이 있었다. 이 때문에 1년여간 작업에 매달렸던 다빈치는 끝내 그림을 완성하지 못하고 피렌체를 떠났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1500년대 초 베키오 궁전 벽에‘앙기아리 전투’를 그리기 전 그렸던 습작.

다빈치의 '앙기아리 전투'는 그로부터 50여년 후 베키오 궁전이 증·개축되는 과정에서 사라졌다. 증·개축 작업은 바사리가 맡았다. 세라치니 교수는 평소 다빈치를 존경했던 바사리가 다빈치의 그림을 그냥 없애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세라치니 박사가 이끄는 탐사팀은 레이저와 레이더, 자외선 및 적외선 카메라 등을 사용해 벽과 주변 방들을 샅샅이 측량, 바사리의 리모델링 이전 도면을 복원했다. 16세기 문서들과 탐사팀의 조사결과를 대조해 바사리의 그림 뒤에 다빈치의 벽화가 존재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림에 작은 구멍을 내고 소형 내시경 등을 동원해 숨은 벽화의 성분을 분석해 보니, '모나리자' '세례 요한' 등을 그릴 때 다빈치가 사용한 특유의 물감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AP 등 외신들이 12일 전했다.

하지만 다빈치의 작품이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난관이 많다. 우선 벽면 뒤 그림이 진짜 다빈치의 그림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또 다빈치의 작품을 찾아내기 위해 바사리가 남긴 작품을 훼손할 수 없다는 비판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