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라이, 중형 불가피… 구카이라이(보시라이 부인), 사형선고 가능성

 

베이징=최유식 특파원

입력 : 2012.04.17 03:05

원자바오, 엄정한 사법 처리 강조… 중국 지방 省·市·軍, 사건 이후 충성 맹세 잇따라
문화대혁명 때 같은 분위기 - 胡 주석 주도, 보에 대한 조치… 입장 밝혀야 할 상황 내몰려
양대 파벌, 정치적 타협할 듯 - 中 지도부 대립 팽팽하지만 양측, 보시라이는 제거하되 차기 상무위원 9명 중 다수 상하이방·태자당 채울 가능성

 

"결연히 당 중앙의 결정을 지지하며, 우리가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한다." "당 중앙의 결정은 영명하고 정확하며, 적절하고 과감하다."

지난 10일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서기의 공산당 정치국원 직무 정지가 결정된 이후 중국 각 지방 성시(省市·성 및 직할시) 당위원회가 연일 쏟아내는 충성맹세이다. 군부에서도 궈보슝(郭伯雄) 중앙군사위 부주석, 류샤오장(劉曉江) 해군 정치위원 등이 가세했다.

지난 2월 초 왕리쥔(王立軍) 전 충칭시 공안국장의 미국 망명 시도로 시작된 보시라이 사건이 전면적인 권력 투쟁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공청단파를 이끄는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주도로 태자당 계열의 보 전 서기에 대해 취한 이 조치가 적절했는지에 대해 각 성시와 군, 기업의 당 조직이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류샤오치(劉少奇) 전 국가주석, 린뱌오(林彪) 전 국방부장 등이 숙청당한 문화대혁명 때 같은 분위기라는 말도 나온다.

◇中 지도부, 보시라이 처리 싸고 대립

보시라이 사건은 중국의 차기 권력이 결정되는 오는 10월 18차 당대회를 8개월 앞둔 시점에 일어났다. 차기 상무위원이 유력시되던 보 전 서기의 측근 왕리쥔이 지난 2월 6일 미국 총영사관으로 들어가 망명을 요청했다. 지난해 11월 충칭의 한 호텔에서 사망한 영국인 닐 헤이우드 사건에 보 전 서기의 부인 구카이라이(谷開來)가 관련돼 있다고 보고했다가 공안국장에서 해임당하자 신변 안전에 위협을 느꼈다는 게 이유였다.

이 사건 처리를 둘러싸고 중국 최고지도부(정치국 상무위원 9명)는 대립했다. 보 전 서기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과 왕리쥔의 피해망상증에서 벌어진 사건인 만큼 처벌할 수 없다는 입장이 맞섰다. 보 전 서기는 3월 초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국회)에 나와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는 등 건재를 과시했다.

그러나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는 후진타오 주석의 의지는 강했다. 최고지도부는 결국 보 전 서기를 충칭시 당서기직에서 해임하는 것으로 타협을 했다. 이 과정에서 보 전 서기와 절친한 저우융캉(周永康) 상무위원이 끝내 해임에 반대해 상무위 표결에서 기권표를 던진 것으로 전해졌다.

◇당 중앙에 도전한 보시라이 제거

추가 조사 과정에서 구카이라이가 헤이우드를 독살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상황은 반전
됐다. 후 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이끄는 집권 공청단파는 지난 10일 보 전 서기의 정치국 위원 직무를 정지하고 당 기율 위반 혐의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에 착수하는 강공책을 폈다. 보 서기를 옹호해왔던 상하이방·태자당 연합세력도 이 추문(醜聞) 앞에는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명분을 쥔 후 주석은 보시라이 가족의 부패, 군 커넥션, 좌파 사이트를 이용한 중국 최고지도부 비방 등 당 기율 위반행위 전반으로 조사 범위를 확대했다. 수년간 좌파 노선인 충칭 모델을 내걸고 당 중앙에 대항해온 보 전 서기를 이번 기회에 확실히 제거하겠다는 뜻이다.

◇보시라이 중형 불가피

보 전 서기는 이번 사건으로 정치 생명이 끝났을 뿐만 아니라 중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살인사건에 연루된 구카이라이는 사형을 선고받을 수도 있다. 원자바오 총리는 16일 발행된 당 기관지 '구시(救是)' 기고문에서 '지도 간부들은 중대 사건이나 부패사건을 적기에 조사·처리하지 않는 부문이나 지방에 대해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고 강조해 엄정한 사법 처리를 예고했다.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과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차기 최고지도자) 등 상하이방·태자당 상층부는 반발 기류가 적잖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표면적으로 반응은 내놓지 않고 있다. 명분에서 밀리는 싸움이라는 판단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보 전 서기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되고 18차 당대회가 본격화하는 시점을 전후해 반격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양측이 보 전 서기는 제거하되 차기 상무위원 9명 중 다수를 상하이방·태자당 연합세력이 갖는 형태로 타협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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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우드, 밀반출 금액 크자 많은 몫 요구… 구카이라이 격분, 살해 지시"

상하이=여시동 특파원

입력 : 2012.04.17 03:05

헤이우드 청산가리 독살 의혹, 보시라이 부인 행보 어떻길래
부친, 문화혁명 때 구속으로 초등학교 제대로 졸업 못해 건축 미장공·정육점원 생활…
78년 베이징대 법학과 입학 "보시라이가 밀려난다면 내 법률사무소서 일하면 돼"

"보시라이가 만약 정계에서 패해 밀려난다면 내 법률사무소에 와서 월급쟁이를 하면 된다."

영국인 사업가 닐 헤이우드를 청산가리로 독살한 혐의를 받고 있는 구카이라이(谷開來·52·사진)가 한때 남편 보시라이(薄熙來·63) 전 충칭(重慶)시 서기의 정치 장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들리자, "걱정말라"며 한 호언이다. 과거 변호사로 잘나갈 때의 일이다.

구카이라이는 6·25 전쟁에 참전한 군인 출신의 아버지와 항일운동 투사 출신인 어머니가 문화혁명 때 모두 구금되면서 혹독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언니 4명은 모두 농촌으로 하방(下放)됐고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구카이라이만 남게 됐다. 그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채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건축판의 미장일을 하고 정육점에서 고기 자르는 일을 했다. 하지만 워낙 손재주가 좋아 그가 고기를 가지런하게 썰 때면 사람들이 눈이 휘둥그레져 구경하곤 했다고 홍콩 언론들은 전한다.

영국인 사업가 닐 헤이우드. /출처=데일리메일
구카이라이는 좀 더 장기적인 생계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비파를 배웠는데 아주 짧은 기간에 전문 연주가 수준에 도달했다고 한다. '마오쩌둥(毛澤東) 서거'라는 다큐 영상물에 배경음으로 깔린 비파음은 그가 연주한 것이다.

문혁 말기 대입시가 부활된 이듬해인 1978년, 구카이라이는 명문 베이징대 법대에 합격한다. 후에 남편이 될 보시라이와 대학 동문이 된 것이다.

두 사람이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지난 1984년이다. 보시라이가 다롄(大連)시의 낙후한 시골 진(金)현의 부서기로 가 있을 때 구카이라이가 교수와 현지 조사차 갔다가 만난 것이다. 후에 구카이라이는 "그의 숙소에 갔더니 더럽기 짝이 없었다. 찢어진 종이상자 안에 있던 작은 사과 한 알로 우리를 대접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이때 보시라이에게 호감을 느낀 그는 당시 미국 모대학에 장학생으로 선발돼 있었으나 과감히 유학을 포기하고 보시라이 옆에 남기로 한다. 보시라이는 부인이 있었으나 후에 이혼하고 구카이라이와 재혼했다.

中충칭서 행정구역 합병 반발 시위 - 중국 충칭(重慶)시에서 남쪽으로 100㎞정도 떨어진 완성(萬盛)구에서 지난 13일 아기를 안은 한 주민이 무장 경찰관들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 10일 이 지역 주민들은 행정구역 합병에 반발해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이번 시위는 경기 침체에서 비롯됐으며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 해임과는 무관하다고 당국이 밝혔다. /AP 뉴시스
한편 보시라이 일가의 부패사건과 관련, 지난해 11월 피살된 영국 기업인 닐 헤이우드가 구카이라이가 거액을 해외로 빼돌리려는 계획을 폭로하겠다고 위협한 뒤 독살됐다고 로이터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구카이라이는 지난해 헤이우드에게 거액을 해외로 옮겨달라고 요청했고, 생각보다 큰 액수임을 알게 된 헤이우드가 예상보다 많은 몫을 요구하자 이에 격분한 구카이라이가 살해를 지시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