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있는 동안 읽을수 있는 두껍지만 술술 익히는 경제학 서적.

작년 국방부의 '불온서적'으로 지적되어 이슈가 되었을 때 '그런갑다~' 했었는데 생일선물로 받은후에 한동안 책장에 모셔져 있었다가 이번 기회에 찬찬히 살펴보았다.

 

'불온서적'이라는 기준 자체가 지금 시대에 얼마나 우습고 가당키나 하냐만은 또 한편 '어디 얼마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했으면 국방부가 그랬을까' 라는 기대(?)를 하면서 읽어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봤을때 (적어도 내 기준으로는) 불온하다거나, 빨간색의 느낌이 있다거나, 북한을 주적으로 하는 대한민국 국군 장병들의 사기 진작에 저해를 가져다준다거나 하는 느낌은 하나도 받지 못했다. 한마디로 국방부의 결정은 완전한 삽질이요, 쉣(shit, 糞)스러운 짓거리였다는 것이다.

 

경제학 개론 성적이 C밖에 안되지만 그 짧은 식견으로도 한눈에 보기에 이 책은 경제'성장'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책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세계경제의 성장률이 급격히 둔화하고 난 이후에 선진국들은 신자유주의 노선과 자유방임에 대한 절대적인 신봉을 통해 일련의 정책들을 추진해왔다.

 

그러한 것들의 일환으로 보호무역의 철폐와 관세 인하, 외국인 투자규제 철폐, 민영화,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한 통화규제와 금리인상, 재정흑자정책, 지적재산권 강화 등이 추진되어왔다. 그런데 사실은 선진국들이 이런 것들의 중요성에 대해 실컷 강조해놓고선 자기네들보다는 개발도상국들에게(그들의 앞뒤 상황을 가리지 않고) 철저하게 지키라고 촉구해왔다.

 

장하준은 풍부한 역사적 선례를 들어, 지금 자유무역과 같은 가치를 옹호하는 선진국들이 실은 보호무역과 각종 규제, 유치산업 보호 등의 국가 주도 산업전략 등을 통해서 경제를 성장시켜 왔다는 반론을 제시한다. 물론 그러한 사실들 자체로 '자유방임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는 증거가 될수는 없지만, 적어도 IMF,세계은행,WTO의(장하준은 이 3개의 기구를 '사악한 삼총사'라 칭한다) '명령'을 따르는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의 나라들이 그렇지 아니했던 1950~1970년대 사이의 경제성장률보다 절반 수준의 성장률로 연명하는 현실은 그의 주장에 충분한 설득력을 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개발도상국들에게 대출을 구실로 그들의 경제주권을 침해하고 국민 생활을 어지럽히는 농간을 부리는 선진국들이 '나쁜 사마리아인'이라 불리우는게 당연한 것일지도. 지금이야 전례없는 금융위기때문에 난리가 나고 미 연준 의장도 쇼크상황의 책임소재에 대해 고개 푹 숙이고 있는 상황이 되었지만 이 책이 나온 2007년만 해도 신자유주의 질서에 대한 반기를 드는게 철모르는 소리로 인식되고 있었으니 장하준의 이러한 '폭로'는 정말 불온한 움직임으로 다가올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이 정말로 '불온'해지기 위해서는, 저자가 한가지 빼먹은걸 채워넣어야 한다. 일부러 그런건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해서 그런건지 알 길은 없으나, 선진국들이 왜 그런 위선적인 말과 행동을 하는지 그 원인에 대한 설명은 하나도 나와있지 않다.

 

'선진국에게만 이익이 되는 불평등한 구조가 재생산된다'라는 이야기는 있지만, 구체적으로 개발도상국에게 요구하는 것들을 통해서 부자 나라들이 무엇을 얻는지, 신자유주의적 해법을 통해 진짜 이익을 보는 것은 누구인지에 대해 속시원히 해답을 주고 있지는 않는다. 물론 그걸 단숨에 벗겨버리는 일을 할 사람이 있다면 정말 대단한 인간이겠지만..

 

문제의 해법에 대해서도 장하준은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자꾸 현실에 자기들의 이익을 위한 이론을 끼워맞추다 보니 자유시장에 대한 맹목적인 환상만 갖게 되는것 같은데, 빨리 정신차리고 진짜 개발도상국의 국민들이 풍요롭게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한다'는 식이다. 자본주의 경제가 잘 돌아가려면 자유주의와 국가주의(혹은 개입주의, 보호주의) 양자를 필요할 때 적절하게 혼용하여야 하는데, 그렇게 안하니 문제라는 생각이 깊게 담겨있는것 같다.

 

이쯤되면 이 책은 좌파적이지도, 시장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퍼뜨리고 있지도 않다는걸 알게된다. 경제가 다시금 성장하기 위해서는 20여년 넘게 전지구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자유시장에 대한 맹신을 깨고 새로운 판을 짜야한다는 아주 건전하고 상식적인 문제의식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그렇담 다시 국방부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이들이 얼마나 몰상식한 인간들인지는 장하준 교수의 이론적 성향에 대해 조금이라도 들춰다보면 잘 알수 있게 된다. 한국 경제학계에서 박정희 시대 경제개발로부터 IMF로 이어지는 시기에 대한 논란 중 2가지로 나뉘는 견해가 있다. (소수의 맑스경제학을 제외하고)

 

하나는 박정희의 토건형 개발독재가 정경유착과 재벌특혜, 건설부문 제외한 내수 부진 등 한국 자본주의 병폐 구조를 더욱 확산시키고 개별적 경제주체들의 힘을 제약해왔다고 주장하는 견해다. 이들은 정치적 민주화 이후에 경제 민주화 또한 중요해졌다고 말한다.

(여기서도 두가지 방향으로 갈리는데 여기선 일단 생략)

 

두번째는 박정희 시대 중요산업에 대한 금융특혜와 정부보조금, 기간시설과 공공부문에 대한 대규모 정부투자와 국영기업, 수입금지 조치, 외환통제, 저작권과 상표권에 대한 관대한 태도 등이 오히려 한국경제의 규모를 성장시키는데 기여를 했다는 견해다. 그리하여 역설적으로 한국은 자유방임주의가 아닌 개입주의를 통해 번영을 누려온 좋은 케이스라는 점을 내세워 신고전파 경제학에 대항한다.  

 

여기서 박정희 군사독재에 대한 평가는 일단 보류된다. 또 '개발독재'에 대해 새롭게 조명하기도 하는데 장하준은 주로 이쪽에 속하는 경제학자다. (물론 그가 박정희를 좋아하는건 아니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경제정책의 기본 방향으로 흔들림 없었던 개입주의 정책들이 초국적 금융자본들에게 '정실 자본주의'로 비웃음 당하고 나름 세워진 '국민경제'의 기초가 흔들리는 것을 보면서 이들은 IMF의 프로그램들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쏟아낸다.

 

이런 시각의 연장선에서 이 책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쓰여졌다. 어쩌면 1960년대부터 이어진 '한국경제의 기적'을 높이 평가하고(실제 책에는 그런 표현이 수두룩하다) 앞으로의 발전을 위하여 대안을 찾아야 하노라 외치는 이 책은 지금, 오히려 실용적인 경제 관료와 관계자들에게 널리 읽힐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책의 논점은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생각해볼만한 '신자유주의냐, 대안적 세계냐'가 아니다. 사실상 '자유주의냐 개입주의냐'에 더 가까운 것이다. 그 수위는 한마디로 고교 경제교과서 초입부에 나오는 수준에 가깝고 조중동의 '올해의 책' 선정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만한 내용임이 확실하다.

  

이런 책을 놓고 불온서적이라니 지 버릇 남 못준다는 속담 그대로 국방부는 아주 타임머신타고 쌩쑈를 하고있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막말로 박정희 시대가 (어떤 한 부분에선 지금보다)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을 잡아가는 꼬락서니가 아닌가?

 

도대체 이런 사태는 한국적 특수성에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지금 살고있는 시대의 꼬라지가 그런것인지 참 헷갈리는 요즘이다.

 

ps:

한국사회구조에 대한 수업에서 박정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때마다 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분명 그 시대 축적한 부의 절반은 이른바 '유혈적 테일러리즘'(노동자에 대한 비인간적 혹사)를 통하여 이루어지진 것이 맞다고 생각되지만 그가 따르고자 했던 일본식 초기 코포라티즘 모델(노동권을 제약하되, 전체주의 국가가 복지국가 모델을 제시하는 사회모델. 물론 식민지에서 수탈한 잉여이윤을 통해 세워졌다. 일본은 실제로 1930년대에 세계 최초로 생리휴가제를 고안했으나 도입하진 못했다)이 오랜 세월을 거쳐 현대적 제도의 형태로 잘 다듬어졌다면 한국사회의 형태는 또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해본다.

 

..하지만 솔직히 그렇게 끌리진 않는다. 또 노조조직률 상승, 임금상승률과 관계없이 실제 한국 노동자들의 삶의 질이 높아지게 된 시기는 87년 이후다. 즉 그들의 투쟁을 통해 그나마 입에 풀칠이라도 하게 되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