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기운이 이 땅 곳곳에 펼쳐지리 - 태백산 천제단

가슴 뛰는 혼의 여정, 천손문화연구회 선도문화 탐방기 - 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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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선도 연구의 본산,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과 천손문화연구회는 지난 6월 21일~22일, 2014년 상반기 정기답사의 일환으로 강원국학원과 함께 태백·강릉지역의 선도문화를 돌아보고 그 의미를 되새겼다.  태백·강릉 선도문화 탐방기를 7회에 걸쳐 싣는다.

※ 강원국학원 · 천손문화연구회 태백·강릉 선도문화 탐방 기획기사
[1편] 태백산을 오르며 - 태백산 당골광장 천부경 비석(클릭)
[2편] 정화수를 길었던 곳, 그 물맛은 으뜸이라 - 용정(龍井), 망경사(望鏡寺) (클릭)
[3편] 하늘의 기운이 이 땅 곳곳에 펼쳐지리 - 태백산 천제단


# 하늘의 기운이 이 땅 곳곳에 펼쳐지리. 하늘·땅·사람이 하나가 되는 곳 – 태백산 천제단

망경사에서 천제단으로 가는 길은 계단이 대부분이라 힘들기도 하다.  나무 계단이 끝나면 돌 계단이 이어진다. 계단에서 내려다본 망경사가 조금씩 멀어질 때쯤, ‘단종비각’이라고 쓰인 건물이 나타난다. 안내문에  따르면 단종이 영월에서 승하한 뒤 태백산 산신령이 되었고, 이후 단종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매년 음력 9월 3일 이곳에서 제(祭)를 지낸다고 한다.

▲ 단종비각. 오른쪽 돌계단이 천제단을 오르기 위한 마지막 단계이다.

단종비각의 오른편으로 계단을 10분 정도 올랐을까.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태백산'이라 쓰인 큰 비석이었다.  그 옆으로 천제단이 있다. 구름이 자욱하게 깔려 신령스러운 분위기가 천제단을 감싸고 있다.  천제단을 보니, 순간 아득한 느낌이 들면서 머릿속에 생각이 사라지고 잠시 정적 속에 있는 듯 했다. 이곳이 바로 하늘의 기운을 받는 곳이구나!


태백산 정상부에는 총 3기의 천제단이 있다. 잘 알려진 ‘한배검’ 비석이 있는 천제단은 천왕단(중단)으로, 이를 중심으로  북쪽 300m 떨어진 장군봉에 있는 천제단을 장군단(또는 상단), 다시 천왕단 아래쪽으로 200m가량 내려간 곳에 있는 천제단을 구을단(또는 하단)이라고 부른다. 답사팀은 일단, 각 천제단을 모두 보고 천왕단(중단)에서 모여 설명을 듣기로 하였다.

먼저 찾아간 곳은 천왕단에서 200m가량 내려간 곳에 있는 구을단(하단)이었다. 구을단(하단) 가는 길은 ‘이 길이 맞나’하는 의심이 계속 들 정도로 외길에, 수풀을 헤치고 내려가야 했다. 한 10분 정도 내려오자 고졸한 형태의 돌로 쌓은 천제단이 우리를 맞이하였다.

▲ 구을단(하단) 가는 길과 구을단의 모습. 구을단을 가려면 단종비각을 지나 올라온 길에서 바로 왼쪽의 작은 길로 들어가(맨 위 사진) 수풀을 헤치고 내려가면(사진 중간) 구을단이 나타난다(사진 아래)
    
천왕단(중단)이 자동차로 말하면 ‘그랜져’라면 구을단(하단)은 ‘모닝’에 비유할 수 있을까. 장방형(長方形)의 동·서·남쪽으로 계단이 난 형태로 규모는 많이 다르지만 흘러나오는 분위기는 참으로 신령스러웠다. 이 ‘구을단’은 단군조선의 5대 단군인 ‘구을 단군’이 쌓고 이곳에서 직접 제천의식을 집전하였다 하여 ‘구을단’으로 불린다. 
▲ 장군단(상단) 가는 길. 천왕단 뒤쪽으로 돌아보면 능선 끝에 아슴푸레 장군단이 보인다. 능선을 따라 장군단으로 이동 중인 답사팀.
   
답사팀은 장군단(상단)으로 이동하였다. 천왕봉에서 장군단이 있는 장군봉으로 가는 길은 300m 정도인데, 능선을 따라 걷는다. 그 길에서는 눈 앞에 걸리는 게 없어 그대로 하늘과 만나게 된다. 걷는 동안 가슴을 탁 트이게 하였다. 게다가 이 부근은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이라고도 불리는 주목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기묘하게 뒤틀린 모습에 고목(枯木)인 것 같으면서도 파릇한 싹이 나 있다. 이런 주목에 눈이 쌓인다면  가히 절경이겠구나 싶었다. 겨울에 눈이 내리면 꼭 다시 한 번 태백산을 오르리라.

▲ 장군단의 모습. 세로가 긴 방형 제단으로 뒤쪽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이다.
   
장군단은 세로가 긴 방형의 제단으로 앞쪽이 넓고 뒤쪽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이다. 천왕단(중단)이나 구을단(하단)과는 달리 언제, 누가 쌓았는지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그 연원을 알기 힘들다고 한다. 장군단까지 둘러본 답사팀은 다시 천왕단(중단)으로 돌아와 정경희 교수의 설명을 듣기 위하여 자리에 앉았다.

“천제단 3기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하단은 3개의 단 중에서도 가장 역사적 시기가 올라갑니다. 하단을 ‘구을단(하단)’이라고 합니다. ≪단군세기≫에서는 ‘구을’을 5대 단군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을단(하단) 주변에 있는 봉우리 이름이 ‘부소봉’(또는 ‘부쇠봉’이라고도 한다)입니다. ‘부소’는 1대 단군인 단군왕검의 둘째 아들이라고 ≪규원사화≫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BC.24세기의 1대 단군의 아들과 관련된 봉우리, 5대 단군의 이름이 들어간 천제단. 이런 것만 보아도 구을단(하단)은 단군조선 초기, 개국 시기까지 그 연원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 태백산 등산지도. 천제단 옆에 부쇠봉을 확인 할 수 있다(출처 : 태백산도립공원 사이트http://tbmt.taebaek.go.kr/)

정경희 교수가 말을 이었다.



“그 다음 ‘남태백’이 기록에 나온 것은 ‘부도지(符都誌)’, 그 중에서도 ‘소부도지(小符都誌)’입니다. 단군조선이 북부여로 이름을 바꾸고 나라를 이어갔으나 점점 세력이 기울자 ‘파소신녀’를 중심으로 한 최고위층 신녀세력이 경주지역으로 이주 후 단군조선과 북부여의 전통을 이어받아 신라를 건국하고 큰 천제단을 만들었습니다."

한국 선도의 존재론과 역사인식을 담고 있는 유일한 기록인 '부도지(符都誌)'는 4세기 후반, 박혁거세의 후손이자 신라 귀족이었던 박제상이 한국 선도의 제 분야를 망라하여 지은 ≪징심록≫ 15지 중 1지에 해당한다. '부도지'는 천부경의 핵심 사상을 마고 신화의 형식으로 풀어내어 우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기술한 것이 특징. 여신으로 의인화된 ‘마고’는 천부경의 ‘일(一)’, ‘기(氣)’를 말하는 것으로 우주의 중심에너지, 천부(天符)를 뜻한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마고’ 사상은 북부여에서 신라로 전승된, 고구려나 백제와는 다른 신라 고유 사상이라는 것이다. 태백산 천제단은 ‘마고단’이라고도 지금도 부르는데, 이는 태백산 제천단이 신라 계통의 천제단임을 알려준다.


▲ 부도지에 나타난 천부사상 도식화. 우주의 중심 에너지인 천부를 중심으로 물질세계를 이루는 기,화,수,토 4원소가 배치되어 있다.(출처 : 정경희, 「홍산문화 옥기에 나타난 ‘조천’사상(1)」 『선도문화』 11권


신라의 지배층은 건국의 주체세력인 파소신녀 집단이 단군조선에서 이주하면서 함께 가져온 단군조선의 사상(천부사상 또는 천부경사상)으로 국가를 경영하고자 하였다. 천제단 역시 그 사상을 반영하여 중앙에 천부단을 만들고 바깥에 기, 화, 수, 토를 상징하는 4개의 보단을 세웠다. 이런 에너지 원리에 근거해서 세계를 다스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고, 역사적인 의미와 신령스러움을 주는 땅을 찾아 선택한 것이 태백산이다.

“단군조선은 요동지역에서 이미 큰 나라를 경영하고 있는 대국이었습니다. 나라의 중심이 만주 쪽 이다 보니 아무래도 한반도는 나라의 변방이었습니다. 강화도 마니산의 참성단은 초대 단군왕검이 한반도를 경영하기 위하여 세운 천제단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태백산은 변두리였기에 단군조선의 입장에서는 의미부여가 좀 떨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신라는 달랐습니다. 신라 왕실은 단군조선의 선도사상을 잇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천제단을 세웠고, 기록에 따르면 신라의 파사왕, 일성왕 등 박씨 성을 가진 왕들이 여기까지 직접 올라와 제천을 하였습니다. 왕이 직접 제천을 할 정도면 규모도 크고 넓어야 하는데 조건에 맞는 곳은 이곳, 중단입니다. 아마 신라의 천제단은 이곳이었을 것입니다.”

▲ 천왕단(중단) 앞에 모여 앉은 답사팀. 전날까지 비가 내린 태백산은 짙은 구름이 가득했다.


단군조선의 선도사상을 국가경영의 원칙으로 삼은 신라는 김씨족(族)이 왕을 독점하기 시작하면서 그 원칙이 흐려지기 시작하였다. 신라는 유교를 통치수단으로 본격 도입 하면서 중국의 삼산오악(三山五嶽) 제도를 본 따 3개의 가장 중요한 의미의 산(삼산,三山)과 그보다 한 단계 낮은 등급의 5개의 산(오악,五嶽)을 지정하면서 ‘산(山)’도 등급을 매겼다. 태백산은 신라 초기 왕들이 직접 정상까지 올라가 천제를 올리던 신성한 지역이었으나, 오악 중 하나로 지정되면서 그 상징성이 약해지고 격이 낮아졌다.


그나마 선도 전통이 남아있는 고려 시대까지는 국가에서 제관을 보내어 제사를 지내는, 중요성을 인정받는 산이었다. 그러나 유교 국가인 조선 시대에 들어서면서 제천을 준비하는 신사가 부수어지고, 불에 타는 등 수난과 고초를 겪다가 결국 시간이 흐를수록 의미가 잊혀가고 제사의 규모도 영세해졌으며, 무속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민족정신을 잃어버리자 외래 사상과 종교가 판을 치며 정작 주인을 뒷방늙은이 취급을 한 꼴이니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 6월 말이었지만 태백산 정상은 온몸이 오들오들 떨릴 정도로 추웠다. 우산으로 바람을 막고, 우비로 추위를 이기며 천제단의 의미와 역사를 배우는 이들의 모습에서 열정과 희망을 느낀다.

무속으로 전락하여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였던 태백산 천제단은 대일항쟁기를 거치며 그나마도 허물어져 돌무더기만 쌓여 있었다. 광복 후 대종교 종단이 나서서 마니산 천제단의 형태를 본떠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천제단은 천·지·인(天·地·人)을 뜻하는 원방각(圓方角) 형태로, 원(圓)은 하늘, 방(方)은 땅, 각(角)은 사람을 상징한다. 자연의 모습을 본떠 만들었다면 하늘을 뜻하는 원(圓)이 위로 올라가고 땅을 뜻하는 방(方)이 아래로 내려와야 하는데 천제단의 모습은 반대로 되어 있었다. 단순히 실수라고 하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다.  정경희 교수의 설명이 궁금했다.

▲ 천왕단 내부. 위는 땅을 뜻하는 방(方)형, 아래는 하늘을 뜻하는 원(圓)형으로 되어 있다.


“에너지의 순환을 의미합니다. 하늘의 에너지는 땅으로 내려오고, 땅의 에너지는 하늘로 올라는데 우리 조상들은 천제단에서 하늘을 상징하는 ‘원’을 밑으로 깔아서 하늘의 에너지가 땅까지 깊이깊이 뿌리를 내려 땅 위의 모든 에너지가 하늘의 밝은 에너지를 받을 수 있도록 기원하였습니다.”

갑자기 누군가 손을 번쩍 들고 질문을 하였다.

“원방각 형태라고 하셨는데, 원(圓)하고 방(方)만 있는데요, ‘각’은 어디에 있나요?”

“천제단은 하늘의 기(氣)에너지를 받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의미가 없습니다. ‘각’은 사람, 사람이 저 자리에 섰을 때 천지인이 하나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곳에서 하늘에 제(祭)를 올리고 그 기운을 받아 땅으로 내리는 역할을 할 때, 하늘의 기에너지가 세상에 펼쳐질 수 있다는 의미를 담은 것입니다. 마음을 열고 사람이 저 자리에 섰을 때 하늘의 기운과 사람의 기운이 하나로 통하는 것이고, 그것이 신인합일, 천인합일입니다.”

인간성 상실의 시대, 인성 회복이 교육을 비롯한 각 분야의 중요한 이슈인 요즘, 인간의 존재 이유와 역할에 대한 통찰이 이보다 더 깊을 수 있을까. ‘천제단’을 통하여 수천 년 전의 깨달은 우리 조상들의 메시지가 들려오는 것 같다. 인간의 역할은 하늘의 기운으로 세상을 조화롭게 만들고 생명력을 나눠 세상을 살리고 펼치는 것이라고. 그렇기에 인간이 지구 위의 다른 종(種)들보다 더 위대하다는 상대적인 평가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그저 지구에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체 중 ‘인간’이라는 종(種)에게 주어진 ‘역할’이며, 그 ‘역할’을 잘 해내었을 때 전 지구 공동체가 조화롭게, 그리고 그 구성원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오늘도 태백산의 천제단은 그 자리에서 한결같이 말하고 있다.

▲ 제천단에 올라 기원을 올린다. 원력을 세우고 하늘 기운을 이 땅 위에 펼치리라.
▲ 선도문화 부활, 파이팅!
   


✔ 강원국학원 · 천손문화연구회 태백·강릉 선도문화탐방 네번째 기획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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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조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