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하셨습니다.그런데 창락현은 의외로 기자와 백이숙제와도 관계가 깊은 고장이었습니다.이곳은 청주지역으로 《우공추지》에서 고조선의 강역으로 인정한곳입니다.기자에 대한 내용은 《 창락현 속지》뿐만 아니라 《상서》의 주소(注疏)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뿐만 아니라 근래에는 고대문자(동이갑골문)들이 발굴되어 비상한 관심을 불러이르키고 있는곳이기도 합니다.

http://blog.daum.net/gusan0579/8006623

  • 2012.03.15. 11:24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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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이와 숙제의 은신처가 북해바닷가로 알려져 있었는데 이곳이 바로 창락이었습니다.

    http://blog.daum.net/gusan0579/8009083

  • 2012.03.15. 15:19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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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기자일행이 국도로 등주까지 갔다 하더라도 등주에서는 배로서 바다를 건널수 없다는 사실은 대청광여도에 상세히 기록되어있습니다.따라서 사문도로 건널 수 있는 포구는 창락이나 청주입니다.

    http://blog.daum.net/gusan0579/8009369

  • 2012.03.16. 17:24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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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흠정사고전서에 수록된 《조선사략》에는 단군과 조선의 위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있습니다.『단군은 동방의 9종족중에 최초의 군장이라고 하였다.나라의 이름을 조선이라 하였는데 해가 솟아오르는 동표(東表)에 있었다.옛날에 이곳을 조선이라 불렀다.』조선이 있었다는 동표(東表)에 대한 설명은 《상서》《우공추지》《후한서》등의 구이족(九夷族) 설명에 들어있습니다.모두가 등주를 우이지역이라 하고 등주 건너편 사문도를 동표(東表)라 하였습니다.동표에 대한 글은 바로 이 역사교실에 실려있습니다.창락과 사문도는 기자와는 별개일 수 없는 관계가 얽혀있습니다.


    http://cafe.naver.com/manchuria/238

  • 2012.03.17. 06:14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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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흠정사고전서에 수록된《조선사략》권 1에는 기자와 그를 따르던 5천명의 얘기도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http://blog.daum.net/gusan0579/8014909

  • 2012.03.17. 17:24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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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조선이라고 부르던 동표지역에는 다음과 같은 서한군국도의 낙랑조선과 서진시대의 낙랑군이 그려져 있습니다.이곳이 곧 낙랑조선의 평양성인것입니다.고조선의 평양성이 한반도에 있지 않았으니 기자가 건너간 사실이 없었고,기자가 건너간 평양성은 바로 동표에 있던 사문도입니다.이곳이 군자국이요.불사국이었던 고조선의 요람이었습니다.

    http://blog.daum.net/gusan0579/8014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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