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故 박수근(朴壽根)의 그림들 3

생 · 몰 : 1914年 2月 2日~ 1965年 5月 6日

향년 : 51세

 

 

 

 

작가 故 박완서 氏가, 그녀의 데뷔작인 장편 소설 ‘ 나목 ’ 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 털어

놓은 적이 있었는데, 생존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채 쓸쓸히 소풍길을

끝낸 화가 故 박수근 氏를 대변하고 싶었다고 했었다.
한국 전쟁 중에 화가 故 박수근 氏는, 미군 PX에서 군인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며 생
계를

꾸렸었는데, 故 박완서 氏는 유난히 말이 없던 故 박수근 화가를 건방지게도

구박을 했으며 그저 그런 화가로 치부했다는 거였었다.


그러던 어느 날 故 박수근 화백은, 일제 때 조선미술 전람회에서 입선한 작품이

실린 도록을 들고 와 故 박완서 氏에게 보여 주었었다고 한다.
스카프 따위에 초상화을 그려주곤 몇 달러를 챙기던 화가가,
확연히 다르게 보인 것은 그 일이 있고 나서였다고 했었다.

선전(鮮展) 도록을 들고 온 것은, 자기를 무명화가로

보지 말아 달라는 무언의 시위였던 거였다.


전쟁이 끝나고 故 박수근 화백은, 조선호텔에 있던

반도화랑에 자주 드나들었었다고 한다.
그 당시 반도화랑은, 가장 앞서 가는 갤러리였다.
전시회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는 걸핏하면 나타났었다.
용무가 없으면서도 들르는 그 이유를, 화랑 관계자가 물었었다.

그러자 故 박수근 화백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더듬거렸었다.
한참 지나 밝혀진 바로는, 반도화랑에 좌변기가 있었는데, 가난한

화가의 집에는 재래식 변소밖에 없어서 였다고 한다.
그는, 변비 때문에 용변이 무척 힘들었었다고 한다.


아는 이들은 故 박수근 화가를, 천성이 곱고 · 다정했었던 화가로 기억한다.
자신을 얕보는 듯한, 나이 어린 여성에게 고함 한 번 치지 않고 말없이 도록을 펼쳐 보이던 사람 … .
화장실을 무단 사용하는 게 미안해, 얼굴을 붉히던 사람 … .
그랬던 그가, 지금 최고의 화가로 존경받고 있는 故 박수근 氏이다.
그 사람이라고 해서, 자기 이름을 알리고 싶은 욕구가 왜 없었을까?
하지만 그는, 티없는 영혼은 설치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던 거였었다.

 

 

 

 

 

少女

 

 
  

 젖먹이는 아내

 

귀로

 

歸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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路上

 

 

 

모란

 

 

 


나무와 여인

 

 

 

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