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혜원 신윤복(申潤福)의 그림들 3
아버지인 故 신한평의 영향을 받은 故 신윤복도, 도화서의 관원
이 됐었는데, 관직은 첨정과 첨절제사에 이르렀었다.
그는 인물화와 풍경화 외에도 많은 양의 풍속화를 남겼었는데, 그 중에는 양반
의 위선적인 태도와 이중 잣대 · 부녀자들의 이중 잣대를 신랄하게
풍자한 해학이 담긴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1,800年 정조 사후,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사라지
면서, 그의 작품 활동도 쇠퇴기에 접어들었었다.
그가 남긴 작품은, 1,813年의 작품까지 전해지는데, 대략 1,813年 이후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 정확한 사망일과 사망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미인도(美人圖) 2
기다림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여인의 모습
뒤로 하고 있는 여인의 손에는, 스님의 옷과 모자가 들려 있는데,
그로 봐선 스님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추측이 가능한 상황.
故 신윤복의 그림은, 배경의 물체 하나 하나에 의미를 가지고 있어 주의
깊게 살펴 봐야 하는데 드리어진 버드나무가 고개 돌린 여인
의 애타는 마음을 나타내고 있는 듯하기도 하다.
유곽 쟁웅
기방 문 앞에서, 대판 벌어진 싸움판의 모습.
장죽을 문 기생은 구경을 하고, 붉은 옷을 입
은 별감은 싸움을 말리고 있다.

연소답청(年少踏靑)
종이에 채색 · 28. 2 x 35. 3 cm · 간송미술관 소장
‘ 연소답청 ’ 이란, 젊은 선비들이 푸른 새싹을 밟는다는 뜻으로
조선 후기 양반들의 유한놀이 문화인, 들놀이를 말한다.
야금모행
늦은 겨울 밤, 기생이 동침을 원하는 양반을 따라 어디론가 가는 모습.
붉은 옷을 입은 별감이, 양반과 기생의 성매매를 중개하고 있다.
노중상봉
정변야화
쌍검대무(雙劍對舞)
종이에 채색 · 28. 2 x 35. 3 cm · 간송미술관 소장
이부탐춘(嫠婦耽春) · 故 혜원풍속도첩(蕙園風俗圖帖)
이부는, 과부를 뜻하니, 소복을 입은 여인이 마당에서 짝짓기
하는 개와 참새를 보곤 웃음을 머금고, 몸종은 나무
라듯 그 과부의 허벅지를 꼬집는 모습.
해학적이면서도, 여필종부를 강요하는 남존여비 사상
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를 읽을 수 있다.
送別蘇判書世讓(송별 소판서 세양) · 소세양 판서를 보내며 · 황진이(黃眞伊)
황진이의 명성을 듣곤, 멀리서 놀러온 소세양(蘇世讓)은 “ 나는, 30일만 같이 살면 능히
헤어질 수 있으며, 추호도 미련을 갖지 않겠다. ” 라고 장담하곤 머물다가 떠나
려 할 때, 황진이가 작별의 한시인 ‘ 송별소양곡(送別蘇陽谷) ’ 을 지어
주자, 감동하여 출발을 늦춰 그녀 곁에 머물렀었다고 한다.
이 때, 황진이가 읊은 시가 바로 ‘ 송별 소양곡 세양(送別蘇陽谷世讓) ’ 이라고 한다.
霜中野菊黃(설중야국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