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故 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의 그림들 6
故 마르크 샤갈
그는 시골의 미술 학교를 거쳐, 페테르스부르크 왕실 미술학
교를 졸업하고, 1,910年 파리에 유학을 떠났었다.
그리하여 아카데미 쥘리앙에서 공부하면서, 故 피카소와 입체파의 영향을 받았었다.
1,966年 故 샤갈은, 17점 연작인 ‘ 성경의 메시지 ’ 를 프랑스 정부에 기증했었다.
故 말로의 연작을 포함하여, 故 샤갈의 작품을 전시
하는 국립박물관의 건설을 추진했었다.
니스 시가 토지를 제공하는 형태로 1,973年, 화가의 86살 생일에 니스 시는
‘ 샤갈 미술관 ’ 을 개관했으며, 1,985年 98세로 세상을 떠났었다.
그의 무덤은, 이후 주변 셍 폴(Saint Paul)의 유대인 묘지에 묻혔었다.


바바를 위하여
“ 이제야, 제 2의 청춘이 열렸다 ” 라고, 결혼식장을 나오면서
노화가(老畵家 65세)인 故 샤갈은 부르짖었었다.
25세 연하인, 검은 눈의 어여쁜 러시아 여성 바바를 위하여
이 그림이 그려져, 그녀에 의해 보존되고 있었다.
故 샤갈의 바바에 대한 헌신의 정도는, 감동적인 이야기거리
가 될 정도로, 같은 제목의 작품을 남기고 있다.
이 작품은 검은 색을 배경으로 한, 유난히 정결한 얼굴과 시원하고 맑은 눈이 노란
말의 초록색 눈과 대조를 이루며, 괏슈 특유의 수수한 맛을 풍겨준다.
아담과 이브
이 작품은 故 샤갈의 작품 중에서, 면을 가장 세분화한 작품일 것이다.
당시 그는, 벽에 故 세잔의 복제화를 몇 장이나 붙여 놓을 정도로 故 세잔의 만년 입
체파의 모체가 된 조형 이념을 동경했었고, “ 우리들은, 모두 세잔에서 출
발했다 ” 라고 고백한 故 레제 · 故 브라크에 가장 심취해 있었다.
일찍이, 제작을 통해서 다양한 형태의 기하학적인 해체를 철저히 파고들려
고 결의하고 있었던 것을, 이 작품을 통해서 추측할 수가 있다.
이 작품은, 형태가 그렇게 세분화되도 유동적이고 · 음상이 또렷
또렷한, 마치 故 바하의 토카타를 듣는 것처럼 장엄하다.
이러한 수법은, 후일 렝스 성당이나 메쓰 성당의 스
테인드글라스 제작에서 되살아났었다.
故 샤갈의 다른 작품에서도 그러하지만, 인물의 표정에 있어서 음산한
면은 금단의 열매를 딴 악의 주제가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술잔을 높이 쳐든 이중 초상
비테부스크의 처가에서, 명의 추이를 관망하면서 그린 작품들에서 가장 대표할 수
있는, 그의 사랑의 찬가가 바로 이 술잔을 높이 쳐든 이중 초상이다.
故 샤갈은 이 작품을 통해, 그의 스타일에 있어
명확한 하나의 전기를 가져왔었다.
화면 전체에 명쾌한 빛이 넘치게 되고, 더구나 억제된 약동감을 가지고 있어 보이
는 까닭은, 배경 오른편에 두텁게 노란 마티에르가 왼쪽의 청색과 효과
적 불협화음을 이루면서, 세 인물을 일체화하는 요소에 의하여
심정의 흐름이 극적으로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의 딸 이다가, 천사처럼 아버지의 머리 위에서 날개치고 있고, 그 주
변에서 부부의 몸 쪽으로 붙어서 흐르는 짙은 파랑색은, 윤곽
이 아니고 피와 살의 결합을 강조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선은, 처음 나타난 것으로 후일의 서정적 작품에서 더러 나오게 된다.
전원의 창
예술가로서 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끊임없이 생존 자체를 걱정하며 살아야
했었던 故 샤갈의 신산한 삶은, 사회주의 혁명을 지지했었으면서도 공
산정권의 희생자가 됐었고, 절대주의 화가 말레비치와의
경쟁에서 밀려 영원히 조국을 떠나야만 했었다.
아늑한 녹색 정원을 창밖에 둔, 신혼의 보금자리다.
선명한 초록 화면의 한 중간에, 하얀 간이 커튼이 걷어올려져 있다.
밤에는, 커다란 창을 반만 가릴 수 있도록 된 커튼의 백색
이 깨끗한 그들의 신혼 감정처럼 청결하다.
사랑이 넘쳐, 만물을 모두 같은 아름다움으로 찬미하려는
심정의 행복함이 숨김 없이 잘 나타나고 있다.
그 심정은,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창의 오른편에 쌓아 올려놓은 듯
두개의 옆 얼굴로 故 샤갈과 부인 故 벨라가 그려져 있다.
창 밖의 무성한 자작나무의 풍경은, 그들의 보금자리에서 새로운 세계로서 보는 감
동을, 갈색의 항아리와 빨간 과일을 자연에 바치는 물건으로 창을 통해
서 생명이 일고, 그 생명 다하도록 온갖 곳에 사랑의 중심이
있도록 기도하는 마음이 이 화면을 꽉 메운다.
부인기수
1,924年 이후 故 샤갈은, 완전히 서커스를 파고드는데 사로잡혀 있었다.
확실히 이 세계를 주제로 하는 작품을 통하여, 유태 예술계와의 협력 시대에 몸에
익힌 새로운, 경쾌하고 · 대범한 필법을 충분히 소화시켜 나간 것 같다.
이 작품은, 같은 해에 그린 꿈이란 작품과 함께 창가의 이다 이후 또 한
단계 그의 원숙기에 한 발자국 다가섰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 속에서, 그의 새로운 발견은 형은 데생으로부터 자유이고 · 색채는 형에
서 자유라는 것, 평면적으로 색을 칠하는 가치가 얼룩으로 바뀌고, 새
로운 기호(말의 배면에 있는 기수의 손과 같은)의 발 등 … ,
그는 속박되는 틀에서 한 겹 탈피하는 것이다.
창가의 이다
1,923年 故 샤갈은 두 번째로 파리에 나오게 되고, 다음 해인 24年엔 바르바상쥬
오베르 화랑에서 처음으로 회고전을 갖곤, 여름을 브르타뉴에서 보냈었다.
이 작품은, 파리에 나와서부터 시작되는 제 2 체불 기간의 새로운 그의
양식이 보여주는, 색채와 형을 사랑으로 융화시키는 수법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중요한 그림 이다.
브르뉴 해안의 경승지 브레아섬의 여름이 주는 풍치가, 그
가 사랑하는 딸 이다와 함께 융화되어 있다.
여기에는, 그가 첫 번째 파리 시절에 입체파의 영향으로 그렸던 의도적이
고 · 의식적인 화면의 분할과 어두운 그림자도 없이, 인물은 외계
에 대하여 알맞게 균형 잡혀, 안정되고 조용하게 앉아 있다.
전체의 색조와 마티에르는, 안개가 스며든 것처럼 부드럽게 어울려
데생에 의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색채의 뉘앙스에 의하
여 화면을 처리한 듯 부드러운 정감이 가득하다.
화촉
故 벨라의 죽음은, 故 샤갈에서 있어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그 불행과 고독을 이겨내는 9개월간, 그는 붓을 들지 못
했고, 온갖 그림들을 벽을 향해 돌려놓았었다.
드디어 화가(畵架 · 이젤) 앞에 앉을 기력을 회복하여, 처음으로 그가 손에 잡
은 그림이 12年 전 그가 사랑에 잠겨 살 때 그린, 아르르 캉이었다.
시집가는 신부를 거의 중앙에 그리고, 주위에는 여러 형상과 인물이 여기저기 그려
져 있는 작품으로, 이 오른쪽 반쪽의 테마로서 ‘ 화촉 ’ 이라는 이 작품
을, 왼쪽 반으로선 ‘ 그녀의 주변 ’ 이라는 작품을 그렸었다.
앞 쪽의 투명하고 짙은 푸른색에서, 밝게 멀리 배경의 위로 놓은 신부의 모습으로,
그 주위에는 선회하는 듯 여러 형상을 둘러싸게 한 이 구도는, 혼례를 주제
로 한 故 샤갈의 전작품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주변
이 작품은, 故 샤갈의 애처 故 벨라가 세상을 떠난 다음 해에 그려졌었다.
파리 해방과 더불어, 파리 개방의 소식을 듣고 뛸 듯이 좋아했었던 故 벨라가,
갑자기 돌아오지 않은 사람으로 그의 곁을 떠나고, 故 샤갈은 그 슬
픔을 통하여 그녀와의 삶을 이 작품에서, 마치 스테인글라스
의 작품처럼 투명하고 심오한 색으로 표현했었다.
푸른 밤의 중앙에는, 초승달 빛을 받은 비테부스크의 또 다른 밤이 둥글게 따로 박
혀 있고, 이 둥근 조그만 지구를 아크로바트로 변한 딸 이다가 붙들고 있다.
전경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