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배경지식을 설명한 데에는, 유태인의 성공에 바탕이 된 유태 문화를 이해하려면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위 그림의 항목들은 모두 유태인들이 과거의 역사를 살아오면서 다져온 부와 생존의 불문율이다.

 

   유태 문화 가운데 '고유의 역사 사상'은 두 가지 요소로부터 생겨났다. 하나는 '신이 아브라함에게 밝은 미래를 약속했다'고 하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바빌론의 포로'경험이다. 바빌론 유수 시대에 이르러 유태인들은 모든 것에 종교적인 의미를 부여해 이해하려는 습관이 생겼다. 그래서 메시아 사상이 생겨났다. 신이 밝고 행복한 미래를 약속했다는 종교적 사상은 유태 문화에 강력한 서바이벌 정신을 심어주었다. 유태인은 행복한 미래가 도래했을 때 꼭 살아남아서 그 역사적 순간에 존재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이어지는 항목은 무엇을 의미할까? 유태교는 역사의 초기부터 문서화된 법전을 갖고 있었다. 그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고 모세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매우 논리적인 선조였다. 이 두 가지 요소는 후세에 수많은 랍비들이 유태교를 시대에 맞는 합리적인 형태로 해석해가는 데 도움을 준다. 즉 '유연한 계율체계'를 가능하게 해준다. 만일 구전의 전통만을 지키고 있었다면 법전이 지닌 진정한 의미를 유지해가는 일도 곤란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랍비들은 탈무드를 문서화했다. 그리고 논리적인 사고력이 없었다면 법전을 새로운 환경에 적응시켜가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선지자가 왕족들까지 비판해 온 사실은 지금까지 살펴본 그대로이다. 그들과 같은 존재가 용인되고, 후에는 존경까지 받게 되었던 것은 유태교가 논리적인 면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실제로 유태교는 아브라함의 '아버지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되었다. 앞에서 유태인이 전 유럽, 나아가서 전 세계로 퍼져갔다는 것을 설명했기 때문에 '지리적 분산'에 관해서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편 '종교의 비중앙집권화'란 무엇을 말하는가? 유태교에서는 본래 제사장이 성전 안에서 의식을 행하는 것이 신앙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거듭되는 성전의 파괴와 그에 따른 유태인의 지리적 분산에 따라 신앙의 존손을 위해 종교의 형식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유태교는 생존을 걸고 신앙 방식을 크게 변화시킨다. 그때까지의 제사장과 성전 중심의 형식에서 벗어나 랍비에 의한 시나고그에서의 기도 중심 형식으로 변모했다. 시나고그는 성전처럼 일부러 건설할 필요도 없었고, 빈 방만 있으면 충분했다. 제사장은 세습제였기 때문에 아버지가 제사장이 아니면 제사장이 될 수 없었지만, 랍비가 되는 것은 전문적인 교육을 받으면 누구나 가능했다. 유태 문화에서는 개인의 논리성과 능력이 매우 중요하며 이것이 곧 존경의 이유였기 때문에 세습제 제사장의 제도를 쉽게 버릴 수 있었다. 지리적 분산과 동시에 유태인은 가는 곳마다 항상 '소수자 집단'이었다. 또한 중세 이래 유태인은 어디에 살더라도 생존을 위해 주위 사람들(특히 비유태인)의 평판에 민감할 수 밖에 없었다. 유태교의 자선(베풂, 상호부조)에 대한 기본 이념은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는 유태 문화의 바탕을 이루는 사상이기 때문에 유태교를 믿지 않는 유태인들에게도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위 그림에서 맨오른쪽의 네모들, 다섯 가지 요소들은 유태인들이 부를 쌓고 생존하기 위해 이제까지 이용해 온 도구들이다. 왼쪽의 타원은 이 도구들이 수천 년의 세월에 걸쳐서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지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 이 도구는 도대체 어떤 것들일까? 이 모든 도구들을 총칭하는 이디쉬어 단어가 있다. 그것은 '이디쉬 코프(Yiddishe Kop), 직역하면 '유태인의 머리'이다.

 

: The Rule, 67~71쪽, 앤드류 서터, 2008. 10, 북스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