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을 쓸 때 나의 가장 큰 기쁨은 여러 가지 수법과 문체, 상황을 짧은 기간에 차례차례 시도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가지 모티프를 여러 각도에서 입체적으로 바라보고, 추구하고, 검증하고, 여러 인물을 여러 인칭으로 묘사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음악으로 말하면 ‘콘셉트 앨범’ 격에 속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 무라카미 하루키


여자 없는 남자들 - 8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문학동네

제목처럼 ‘여자 없는 남자들’을 모티프로 삼은 이번 소설집에는 말 그대로 연인이나 아내로서의 여성이 부재하거나 상실된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병으로 인해 사별하거나(「드라이브 마이 카」), 외도 사실을 알게 되어 이혼하고(「기노」), 본인의 뜻으로 일부러 깊은 관계를 피하는 경우도 있으며(「독립기관」), 혹은 이유도 모르는 채 타의로 외부와 단절되기도 한다(「셰에라자드」). 대학 시절을 회상하는 구성의 「예스터데이」와 카프카 소설 속의 세계를 무대로 한 「사랑하는 잠자」를 제외하면 모두 중년 남성이 주인공인데, 그 때문인지 예전 작품들과 비교해 현실적이고 진중한 분위기가 강하고, 남녀를 비롯한 인간관계의 깊은 지점을 훨씬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한때 방황하는 청춘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하루키 소설이 현실과 맞닿아 보편적인 소재를 진부하지 않게 풀어냈다는 면에서, 이번 소설집은 기존의 팬들은 물론 보다 폭넓은 연령대 독자들의 공감을 끌어내기에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는다는 건, 특히 남자와 여자가 관계를 맺는다는 건, 뭐랄까, 보다 총체적인 문제야. 더 애매하고, 더 제멋대로고, 더 서글픈 거야. (드라이브 마이 카, 37쪽)


 우리가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설령 그 사람을 깊이 사랑한다 해도. (드라이브 마이 카, 49쪽)


 내가 아는 한, 가후쿠 씨 부인은 정말로 멋진 여자였어요. 물론 내가 안다고 해봐야 가후쿠 씨가 아는 것의 백분의 일도 못미치겠지만, 그래도 나는 그렇게 확신해요. 그런 멋진 사람과 이십 년이나 함께할 수 있었던 걸 가후쿠 씨는 뭐가 어째됐건 감사해야 한다,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잘 안다고 생각한 사람이라도,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타인의 마음을 속속들이 들여다본다는 건 불가능한 얘깁니다. 그런 걸 바란다면 자기만 더 괴로워질 뿐이겠죠. 하지만 나 자신의 마음이라면,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분명하게 들여다보일 겁니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나 자신의 마음과 솔직하게 타협하는 것 아닐까요? 진정으로 타인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나 자신을 깊숙이 정면으로 응시하는 수밖에 없어요.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드라이브 마이 카, 51쪽)


내적인 굴곡이나 고뇌가 너무도 부족한 탓에, 그 몫만큼 놀랍도록 기교적인 인생을 걷게 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 수는 그리 많지는 않지만 우연한 기회에 눈에 띄곤 한다. 도카이 의사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독립기관, 117쪽)


♣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인생을 시작한다는 건 당연히 무척 힘든 일이겠지요. 그런 면에서 나는 남들보다 큰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저 나름대로 라이프스타일이 몸에 배고, 웬만한 사회적 지위가 생기고, 그런 다음에야 나 자신이라는 인간의 가치에 대해 깊은 의심을 품는다는 건 또다른 의미에서 무척 힘든 일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인생이 완전히 무의미하고 쓸모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젊을 때라면 그나마 변혁의 가능성이 있고 희망을 가질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 나이가 되면 과거의 무게가 짓누르는 힘이 너무 큽니다. 쉽사리 다시 시작할 수가 없어요. (독립기관, 143쪽)


♣ 하바라는 그날 밤, 아직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들어 셰에라자드를 생각했다. 그녀는 어쩌면 이대로 모습을 감출지도 모른다. 그는 그것을 염려했다. 결코 일어날 리 없는 일이 아니다. 셰에라자드와 그 사이에는 어떤 개인적인 규칙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연히 누군가에게서 주어진 관계이고, 그 누군가의 기분 하나로 언제든 끊어질 수 있는 관계였다. 말하자면 두 사람은 가느다란 실 한 올로 가까스로 이어져 있을 뿐이다. 아마도 언젠가, 아니, 틀림없이 언젠가 그것은 끝을 고할 것이다. 실은 끊기리라. 늦냐 빠르냐의 차이일 뿐이다. 그리고 셰에라자드가 떠나버리면 하바라는 더이상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 이야기의 흐름이 거기서 뚝 끊기고, 이야기되었어야 할 미지의 신기한 이야기들은 이야기되지 않은 채 사라져버린다. 또 어쩌면, 그는 모든 자유를 빼앗기고 그 결과 셰에라자드뿐 아니라 다른 모든 여자에게서 멀어져버릴지도 모른다. 그럴 가능성도 크다. 그렇게 되면 이제 두 번 다시 그녀들의 젖은 몸속에 들어갈 수 없다. 그 몸의 미묘한 떨림을 느낄 수도 없다. 하지만 하바라에게 무엇보다 힘겨운 것은, 성행위 그 자체보다 오히려 그녀들과 친밀한 시간을 공유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인지도 모른다.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말하자면 그런 것이다. 현실에 편입되어 있으면서도 현실을 무효로 만들어주는 특수한 시간, 그것이 여자들이 제공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셰에라자드는 그에게 그것을 넉넉히, 그야말로 무한정 내주었다. 그 사실이, 그리고 그것을 언젠가는 반드시 잃게 되리라는 사실이 그 무엇보다도 그를 슬프게 했다. (셰에라자드, 213~214쪽)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한 여자를 깊이 사랑하고, 그 후 그녀가 어딘가로 사라지면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잘 아시다시피) 그녀를 데려가는 것은 간교함에 도가 튼 선원들이다. 그들은 능수능란한 말솜씨로 여자들을 꼬여내, 마르세유인지 상아해안인지 하는 곳으로 잽싸게 데려간다. 그런 때 우리가 손쓸 도리는 거의 없다. 혹 그녀들은 선원들과 상관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지 모른다. 그런 때도 우리가 손쓸 도리는 거의 없다. 선원들조차 손쓸 도리가 없다. 어쨌거나 당신은 그렇게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 눈 깜짝할 사이다. 그러고 한번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어버리면 그 고독의 빛은 당신 몸 깊숙이 배어든다. 연한 색 카펫에 흘린 레드 와인의 얼룩처럼. 당신이 아무리 전문적인 가정학 지식을 풍부하게 갖췄다 해도, 그 얼룩을 지우는 건 끔찍하게 어려운 작업이다. 시간과 함께 색은 다소 바랠지 모르지만 얼룩은 아마 당신이 숨을 거둘 때까지 그곳에, 어디까지나 얼룩으로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얼룩의 자격을 지녔고 때로는 얼룩으로서 공적인 발언권까지 지닐 것이다. 당신은 느리게 색이 바래가는 그 얼룩과 함께, 그 다의적인 윤곽과 함께 생을 보내는 수밖에 없다. 그 세계에서는 소리가 울리는 방식이 다르다. 갈증이 나는 방식이 다르다. 수염이 자라는 방식도 다르다. 스타벅스 점원의 응대도 다르다. 클리퍼드 브라운의 솔로 연주도 다른 것으로 들린다. 지하철 문이 닫히는 방식도 다르다. 오모테산도에서 아오야마 1가까지 걸어가는 거리 또한 상당히 달라진다. 설령 그후에 다른 새로운 여자와 맺어진다 해도, 그리고 그녀가 아무리 멋진 여자라고 해도(아니, 멋진 여자일수록 더더욱), 당신은 그 순간부터 이미 그녀들을 잃는 것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선원들의 의미심장한 그림자가, 그들이 입에 올리는 외국어의 울림(그리스어? 에스토니아어? 타갈로그어?)이 당신을 불안하게 만든다. 전세계 이국적인 항구의 이름들이 당신을 겁에 질리게 한다. 왜냐하면 당신은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는 게 어떤 일인지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당신은 연한 색 페르시아 카펫이고, 고독은 절대 지워버리지 않는 보르도 와인 얼룩이다. 그렇게 도독은 프랑스에서 실려오고, 상처의 통증은 중동에서 들어온다. 여자 없는 남자들에게 세계란 광대하고 통절한 혼합이며, 그건 그대로 고스란히 달의 뒷면이다. (여자 없는 남자들, 330~3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