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곳에 살면서도 주말에는 경주 외곽도로가 막힌다는 것을 그저께 처음 알았습니다.

  포항시외버스 터미널에서 경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는데 차가 많아서 길이 막히길래 조바심을 쳤습니다.

  출발 예정 시간까지는 그래도 여유가 있었지만, 해마다 식전 공연에서 단골로 듣는 "신라의 달밤" 노래를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경주시외터미널에 내려서 급하게 택시를 타고 이미 어둠이 짙게 깔린 황성공원 주차장에 닿으니 먼저 배번을 받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행사장에 도착해보니 한눈에 봐도 이전만큼 참가자가 많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행사장 앞자리에 빈 좌석이 많길래 하나 차지하고 앉아서 공연음악에 맞추어서 몸을 흔들거리면서 가져간 저녁식사 대용 떡과 배부받은 간식을 먹어치웠습니다. 배낭 무게를 줄이자는 심산이었고, 주최측에서 제공하는 먹거리만으로 허기지거나 하지 않았고 나중에 움직이다보면 귀찮아져서 배낭에 들어있는 먹을거리도 꺼내기 귀찮아서 그냥 도로 가져온 경험이 여러 번 있기 때문입니다. 먹고 마시고 하면서 카메라로 공연하는 분들의 사진도 찍고, 키 큰 소나무 옆으로 얼굴을 내민 휘영청 밝은 달도 쳐다보면서 들뜬 마음으로 출발을 기다렸습니다.














  


  출발하면서 체크카드를 배부하는 곳은 여전히 66km 참가자들과 30km 참가자들이 뒤섞여 혼잡스러웠지만 참가 인원이 적어서 그런지 예년만큼은 혼잡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체크카드를 따로 만들거나 배부 시간을 달리해서 코스별로 출발 시간을 좀 명확하게 구분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황성공원을 나서서 강변산책로에 접어드니 잘 정비된 산책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쾌적하게 잘 다듬어 놓은 길을 걸으니 발밑이 안심도 되어서 한결 기분이 좋았습니다.

  빠르게 밀치듯이 지나가는 젊은 사람들을 보고 속으로,

'그래, 먼저 가거라. 아마 한참 뒤에 다시 만날거야' 하면서 나이 탓으로 느린 걸음을 애써 위로하며 묵묵히 걸었습니다.

오랜 걷기연습으로 걸음걸이 빠르다는 소리를 늘 듣는 편인데, 걷기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걸음걸이 빠르기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를 앞질러갔지만 평소에 걷는 속도대로 걸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보니 일부 학생들이 뛰거나 다른 사람들이 걷는데 방해가 될 만큼 갑자기 방향을 바꾸길래 조금 자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보문단지로 접어드는 동궁원 근처까지 길이 잘 정비되어 있었기에 걷는데는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자원봉사로 길 안내를 하는 분들께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며 걷다보니 생각보다는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듯 싶었습니다.

  참가자들의 격려 한 마디가 추운 밤을 꼬박 새우는 그분들에게는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이후에도 건널목이나 횡단보도를 지날 때마다 친절하게 안내를 하는 행사관계자분들을 만나면 빠짐없이 인사를 했습니다











  보문단지를 지나서 30km 참가자들과 갈라진 뒤부터는 앞서거나 뒤따르는 사람들의 수가 갑자기 줄어들어서 암곡으로 접어들 때는 이미 주변이 조용해졌습니다. 구부러진 길이 많아서 그런지 조금이라도 거리를 줄이려고 도로 한복판으로 무심코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고는 아찔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만 지나가는 차들이 조심스럽게 운행을 해주더군요. 달빛은 밝아서 산모퉁이를 지날 때를 제외하고는 먼 곳의 물체도 제법 알아볼 정도였습니다. 무장산 가는 길은 억새밭이 유명해서 주말이면 교통을 통제한다는 안내판이 길 곳곳에 있을만큼 사람들이 몰리는가 봅니다. 와동마을 구판장 앞을 지날 때 보니 오뎅을 먹는 사람들이 있길래 그냥 주최측에서 주는 것인줄 알고 다가갔다가 주민들이 준비해서 참가자들에게 팔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제법 줄을 서서 기다리길래 그냥 지나쳤습니다. 해마다 그곳을 지나가니 마음 같아서는 조금이라도 팔아주고 싶었습니다. 1년에 한 번씩 가는 길이지만 덕동댐 주변에는 경치가 좋아서 그런지 새로 지은 전원주택도 많이 늘어났고 공사 중인 곳도 여러 군데 있었습니다.

가느덩재(관해령, 추령재)로 올라가는 경감로는 자랄 때 추억이 많은 길입니다.






생판 갯가 촌놈이었던 우리가 경주 시내에 나갈 일은 학교 대표로 무슨 대회에 참가하는 정도가 전부였는데, 농사일을 열심히 도와주고 어렵사리 적은 돈을 얻어서 경주 책방에 책을 사러 나간 적도 몇 번 있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고향 친구 하나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재를 넘어보지 못하다가 군대에 갈 때 처음 이 재를 넘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도 있습니다.

  추령재에서 먹는 왕뚜껑 라면은 미쳐 불지않은 라면이지만 따뜻한 국물로 한기를 녹일 수 있기에 별미입니다. 추령재에서 컵라면을 먹을 때와 석굴암 주차장에서 시락국밥을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자리에 앉거나 하지 않고 서서 잠시 쉬다가 내내 걸었습니다.



  날씨가 추울거라고 해서 두터운 겨울용 다운파커도 준비해 갔지만 생각보다는 춥지 않아서 한 번도 꺼낼 일이 없었습니다. 나도 이전에는 그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출발할 때 옷을 두껍게 입으니 움직이면서 땀을 흘리고 나중에 쉴 때 땀이 식어서 한기를 느끼지만 올해는 티셔츠 차림으로 출발하여 오히려 땀을 흘리지 않았기에 장항삼거리에서도 별로 춥다고 느끼지 못했습니다.

  여러 번 참가해서 길이 익숙해져서 그런지 첫번째 체크 포인트는 물론이고 이후의 네 체크 포인트까지 가는 것이 별로 지루하거나 멀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장항쉼터에서 석굴암 주차장까지 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바람이 제법 강하게 불던 이 구간에서는 깜박 졸면서 걷기도 했습니다. 아마 구간별로 본다면 가장 힘들고 지루한 구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석굴암 주차장에 도착하니 바람이 제법 불어서 간이천막에 들어가서 따뜻한 국밥을 먹고 한기를 면했습니다. 새벽 네 시쯤에 먹는 해장국밥은 별미였습니다. 천막 안에서 국밥을 먹다가 멀리 진주에서 온 대학동기 걷기매니아 최박사를 만나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열네 번째 참가한다는 최박사 앞에서 열 번도 되지 않는 내 참가 기록은 무색하지만 우리도 나이가 있으니(?) 언제까지 참가할런지 모를 일이라서 서로 속내를 드러내 보이기도 했는데, 일단 저는 열 번은 채우고나서 그 다음부터는 건강상태를 봐서 아내나 외손자들과 30km코스를 같이 걸을까 싶다고 이야길 했지만 욕심 같아서는 이 대회가 있는 한 스무 번쯤은 더 참가하고 싶다고 생각을 합니다.

  국밥을 먹고 화장실 입구에서 발가락 사이에 바셀린을 다시 바르고 얇은 마라톤용 속 양말을 하나 꺼내 덧신었는데 불국사까지 내리막길에서는 물론이고 이후에도 발바닥은 편했습니다. 물집방지용으로 발바닥에 붙인 스포츠 테이프 덕분에 발바닥도 아무 탈이 없었습니다. (저는 키네**테이프를 잘라서 발가락 뿌리부터 발바닥 아치 부근까지 통으로 붙이는데 오래 걸어도 발바닥 통증은 없어서 이 방법을 꾸준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특정한 상표를 이야기했는데 그래도 값이 싼 다른 스포츠테이프 보다는 접착력도 좋아서 몰리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걷기대회 참가자를 배려하여 새벽에 불국사 경내 입장을 허용할 때도 있었는데 출입문이 굳게 닫혀 있어서 담벼락을 끼고 돌았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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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오롱호텔에서 불국사 삼거리까지는 인도의 보도 블럭이 울퉁불퉁하니 돌출 부위가 많고 엉망이어서 발목을 다칠까봐 염려가 되어 조심해서 도로 가장자리 흰선 밖으로 걸었습니다. 새벽 시간이라서 통행하는 차량이 거의 없어서 뒤쪽으로 신경을 쓰면서 그렇게 걸었습니다. 불국사 삼거리에서 통일전으로 접어드는 갈래길까지는 대형차가 무섭게 달리는 산업도로 구간이라서 공포심도 생기고 매연도 좀 심한 구간이라서 걸으면서 즐겁지 않은 유일한 구간입니다. 빨리 그 구간을 벗어나고 싶어서 남산자락에 걸린 보름달을 찍고 나서는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출발하고부터 이때까지 둥근달과 함께 걸었습니다. 몇 년 전에는 방둑길을 걸을 때도 있었고 지난해에는 벼가 누렇던 논 사이로 난 시멘트 길을 걸었는데 올해는 다시 도로 갓길로 이동을 했습니다.

  주최측에서 이 글을 보신다면 이 구간을 차가 다니지 않는 들판길로 걷도록 코스를 조정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통일전 앞 도로의 은행나무 가로수길의 잎은 단풍이 완전히 들지 않아서 좀 아쉬웠습니다. 역시나 올해도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었습니다만 은행나무 잎이 단풍이 덜 들어서 별로일거라 싶었습니다. 막걸리 한 잔을 얻어 마시고 바나나도 한 개 먹고 집사람에게 도착 예정 시간을 알려주고나서 화랑교육원 주변의 잘 생긴 소나무 사진도 찍고 경상북도산림연구원의 잎때깔이 고운 수목사진도 몇 컷 찍으며 여유롭게 걸었습니다. 해마다 55km를 지나는 이 지점쯤에 오면 지쳐서 다리를 끌면서 걸어가는 고등학생들을 많아 만났는데 올해는 한 사람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역광으로 보이는 수목 사이로 부부가 나란히 걷는 모습을 보니 부럽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젊은 참가자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준 대신에 부부가 함께 참가한 분들이 여럿 있었고 서로 힘을 북돋워주며 걷는 것을 보고는 참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이곳에서는 다리를 건너서 박물관쪽으로 가서 천마총을 지나서 노서동 고분을 거쳐서 황성공원으로 가던 시내 중심가를 경유하던 코스에서, 다리를 건너지 않고 바로 고속도로 밑 굴다리를 지나서 월정교가 보이는 길로 가는 코스로 바뀌었는데, 같이 걷던 분이 지난 해 경주 지진의 여파 때문에 코스가 바뀐 것이라고 설명을 해줘서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지난 해 15회걷기대회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기에 지진이 발생하여 혹시나 생길지 모르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한다고 응급조치로 건물이 많은 시내 중심가를 경유하던 코스에서 주위에 높은 건물이 없는 코스로 바뀌었는데 박물관 옆을 지나다가 교동을 지나서 강둑 쪽으로 이어서 갔으니 지난해는 후반부에 거리도 멀게 느껴졌고 유난히 지루했던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같이 참가했던 아들 녀석이 준비 부족으로 발바닥이 아프다고 다리를 질질 끌고 걸어서 가다가 멈추다가 했었던 지난해와는 달리 올해는 통일전 앞에서 만나서 이후로 쪽 동행한 한국가스기술공사 대구경북지부에 근무하신다던 박**님과 같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걸어서 그런지 지루하던 이 구간도 가볍게 통과했습니다.

  겨울을 지내러 강변에 온 철새도 구경하며 물그림자가 비친 강변의 풍경도 사진으로 담고 밝은 가을 햇살 가운데를 성큼성큼 걸어서 10시가 되지 않은 이른 시각에 공원에 도착하였습니다.


































  완보증과 기념메달을 받고나서 무대에서 같이 기념사진도 찍고 주최측에서 주는 막걸리도 한 잔 마시고나서 내년에 또 만나자는 약속을 뒤로하고 헤어졌습니다.

  10여년 전에 이 대회를 처음 알고 나서 울릉도에서 근무하던 시기와 미리 신청했던 조선일보춘천마라톤과 날짜가 겹친 때를 제외하고 빠짐없이 참가를 했는데, 올초에 갑자기 건강에 문제가 생겨서 조심하는 중이어서 혹시나 무리를 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도 많이 했지만 무사히 완보를 했습니다. 그런 사정으로 어느 때보다도 완보의 기쁨이 더 컸습니다.

  사람마다 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저는 신라의달밤165리 걷기대회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꼭 참가하고 싶은 매력적인 걷기대회라고 생각합니다. 평소에 일정한 거리를 꾸준하게 걷는 사람이라면 다소 긴 거리이지만 여유있게 걸으면 체력에는 별 무리가 없으며, 주최측에서 제시하는 유의 사항을 지키고 본인이 조금만 주의한다면 안전에도 문제가 없는 대회가 아닌가 싶습니다. 더구나 저는 가까운 곳에 살고 있으니 참가하기도 쉬워서 더 애착이 갑니다.

  오히려 지나친 기대 끝에 얻은 실망으로 질책을 하여 오랜 기간 동안 준비를 하고 밤 새워 봉사하며 고생한 보람은 온데간데 없도록 느끼게 될 따가운 질책 때문에 이제 대회 개최를 그만 두겠다고 하면 어쩔까 싶을 정도입니다.

  조금이라도 자세한 내막을 안다면 요구를 하기에 앞서서 격려도 함께 하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준비하시고 안내해주시던 분들 그리고 함께 먼 길을 걸으며 무언의 격려를 보내주신 분들 모두 참 고마웠습니다.

  다시 내년을 기다립니다.

  그리움이 부르는 그 길로 가겠습니다.


   (대회 홈페이지에 올렸던 글을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