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부터 1973년까지의 10년간은 대한민국에서 제빵공업의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이다.

현존하는 모든 제빵회사들이 이 시기에 설립되었으며

외국의 제빵라인을 도입하는 등 대량생산체제를 구축한 시기였다.

한국 제빵공업의 선두주자는 삼립식품이었다.

 

 1963년에 삼립산업 제빵공사로 출발한 삼립식품은 1966년 삼립빵을 대량 생산하기 시작한 이후

1968년에 상호를 삼립식품공업(주)으로 변경하고

현재의 위치인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에 대규모 생산라인을 갖추었다.

1969년에는 유지업체로 출발한 서울식품이 제빵시설을 도입하여 빵을 생산했고

부산에서는 삼미식품과 기린(부산삼립)이 등장했다.

 

이어 70년에는 신동아그룹이 한국콘티넨탈식품을 설립 콘티빵을 생산했고

72년에는 삼립의 방계회사로서 현재의 샤니가 한국인터내셔날식품공업이란

상호로 제빵업계에 진출했다.

 

또한 1973년에 부산에 삼우식품이 설립됨으로써 대량생산업체는

서울에 4개, 부산에 3개로 총 7개업체가 되었다.

이들은 대리점 판매방식과 루트(Ruote)판매방식의 두가지 판매방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대리점 판매방식은 전국 각 대리점에 본사가 빵을 공급하고

대리점에서 각자 판매사원을 두어 소매상에 공급하는 것이었고

루트판매방식은 회사, 학교, 대형슈퍼 등에

회사에서 직판차량을 동원하여 직접 공급하는 방식이었다.

이 시기의 초기에는 제품의 종류가 다양하지 못해

판매경쟁도 심하지 않았으나 1970년대에 들어서는

공급이 수요를 능가함으로서 극심한 경쟁을 하게된다.

이후 75년에는 부산의 삼우식품이 폐업하고 76년에는

 

부산의 삼미식품이 샤니에 흡수되어 제빵회사는 총 5개사가 되었고

지난 1988년 3월 한국콘티넨탈이 노사분규로 폐업해

현재에는 삼립, 샤니, 기린, 서울식품 4개사만이 남아있다.

한편 제빵4사는 호남지역에서 강세를 보이던 콘티빵의 대리점흡수를 위해

치열한 접전을 벌였는데 결국 샤니가 70%이상 흡수함으로써 급신장의 기틀을 마련했다.
국내제빵업계는 70년대까지 양산5개사가 전체 1,500억 빵시장 중 85%선을 차지했으나

 80년대 들어서 차츰 베이커리업계에 시장을 잠식당하기 시작하였다.

 

 

1970년대 당시 제일 유명했었던 한국의 제빵회사로

삼립식품의 삼립빵과 콘티넨탈 식품의 콘티빵이 자웅을 겨루었고

그외 군소 회사로써 삼미빵과 제일빵과 우주빵및 지방 곳곳에는

가내공업 형태로 빵을 만드는 소규모의 공장이 꽤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삼립식품과 샤니,기린 서울식품의 네 회사를 제외한

나머지 군소의 제빵 회사들은 모두 병합되거나 없어져 버렸다.

 

성호68의 김문준은 한때 샤니 식품에서 근무한바 있었다.

작고한 코미디언 김형곤씨가 선전했었던 콘티빵은 70.80년대 식빵과 호빵으로 유명했었다.

 

그리고 한때 1970년대 초,중반에 우주빵을 만들었던 우주식품의 사장은  

1980년대 초 KBS 방송의[지금 평양에선] 드라마에서

북한 인민군 호위 총국장으로 출연하여

[이~ 쌍 ~바 새끼래...] [최은희... 내 웃음소리 한번 들어 보김메] 등의

대사로 유명했었던 [오백룡]역의 이춘식씨 였었다.

 

 

 

탤런트: 이춘식씨

 

 

 

SPC 허영인(許英寅·) 회장

 

한국에서 최장수 제빵회사인 삼립식품의 삼립빵은 올해로

회사가 설립된지 67년째를 맞고 있다.

 

1980년대 중반에 허영인 회장 그가 시작한

 ‘파리바게뜨’는 한국 베이커리(Bakery·제빵제과점)

 문화를 통째로 바꾸어 버린 대 히트작이었다.

분가해 나올 때 샤니는 삼립식품의 10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는 삼립이 대량 생산되는 빵 시장을 장악하고 있으니 베이커리 시장에 눈을 돌렸다.

당시 그쪽 또한 태극당이나 고려당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는 베이커리의 개념을 아예 바꾸자고 생각했다.

당 자가 붙은 브랜드도, 인테리어도, 메뉴도 모두 바꿨다.

미국식 빵이 장악하고 있던 한국 시장에 크루아상(croissant), 바게트(baguette) 등

유럽식 빵을 들여와 ‘파리크라상’ 1호점을 내자 손님이 밀려들었다.

그만큼 시대 조류에 따라 바뀌어진 형태의 제빵점으로

성공을 하려고 전국에서 가맹점 문의가 쇄도했었다.

지금 파리바게뜨 가맹점은 전국에 2010년 2400개로 늘어났고 

매출액은 2009년 1조 원을 돌파했다.

 

외국 어디에서도 이런 베이커리 체인을 찾기는 쉽지 않다.

배스킨라빈스, 던킨도너츠, 커피전문점 ‘파스쿠찌’ 등

그가 들여온 브랜드는 모두 성공했다.

현재 SPC의 전체 가맹점은 2011년 3000개를 넘어 섰다.

 

  

 

 

1970년대 삼립빵의 광고

 

 

 

 

1970년대 초의 삼립빵과 콘티빵  나무상자

 

 

 

서울 한성여고에서 삼립식품 크림빵 5000만개 돌파 기념으로

크림빵을 30년 전 가격 10원에 판매하는 이벤트 - 2005년 6월 29일

 

 

 

 

그 옛날 1970년대 마산 성호교 밑에 삼미빵 대리점이 있었던 자리 (왼쪽) 제삼록 X선과 바로 위

 

 

 

 

그리고 삼립식품의 삼립빵과 이름은 비숫했었던 삼미빵의 대리점은 바로

마산 성호국민학교 입구에 있었다.

 

성호국민학교 시절 부산에 본사가 있었던 마산 삼미빵 대리점은

성호교 입구에서 가장 큰 부잣집이었던 경상고 이사장 송창복씨 집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다.

성호교의 한해 선배였던 성호67 박용구씨의 부친이 운영했는데

박용구씨 부친 4형제는 모두 마산 부림동에서 각각 제빵 도매업을 하였다.

성호국민학교 1학년~5학년 까지의 시절 5월 5일 어린이날은 지금처럼 공휴일이 아니었다.

공휴일로 지정된것은 국민학교 6학년때였던

1975년에 비로소 대통령령 국가공휴일 제정 법안에 의해

어린이 날이 국가 공휴일로 선포되었다.

 

 

 

1970년대 초 삼미빵의 빵상자

 

 

그 옛날 1970년대 초반의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성호국민학교 각 학급의 반장,부반장 어머니들께서는

일찌기 학교에 나오셔서 성호 국민학교앞 삼미빵 대리점에서 빵을 가득 마련해 주었다. 

나무상자에 가득 담아온 사랑이 듬뿍 담긴 삼미빵을 같은 학급의 아동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것이다.

5월 5일 어린이날이 되면 한번씩 1970년 1971년의 성호교 1,2학년때에 5반의 급장이었던

성호 68 이진하의 어머니께서 나누어준

삼미빵에 대한 즐거웠던 추억의 장면이 머리속에서 떠오르곤 한다.

 

 

 

 

 

 

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