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 민주주의는 의원내각제와 대통령제로 나뉘게 된다. 한국은 4.19 혁명을 통해 이승만 정권을 하야시킨 후 대한민국 역사상 유일한 내각제 기반의 헌정체제를 세우게 된다.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한 후 국민들은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6.15 개헌에 의해 내각제 기반의 헌정체제가 세워지기는 했으나 장면 내각은 사회혼란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다. 의원내각제여서 그런지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은 있어도 윤보선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제2공화국 수립 후 윤보선 대통령은 형식적인 국가원수였고 장면 내각에 실권이 있었다. 이때 큰 문제는 두가지가 있었다. 장면의 민주당 신파와 윤보선의 민주당 구파간에 갈등은 물과 기름처럼 갈등이 커지면서 정부의 정책적 실행이 원활하지도 못했고 시민들의 요구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며 각종 사회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이 태어난 생가는 충남 아산시 둔포면 신항리 143번지에 위치해 있다. 중요민속자료 196호로 지정된 전 대통령 생가에는 99칸의 저택중 사랑채, 안채, 문간채, 행랑채 등만이 남아 있다. 이 생가는 윤보선 전 대통령의 부친인 윤치소가 1907년에 지었다고 한다. 이곳 주변은 해평윤씨 집성촌으로 윤씨 집안의 가옥들이 남아 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엄연히 대통령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윤보선 대통령의 존재감은 미비하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뒤를 이었지만 윤보선은 사라진채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 바로 이어진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아산의 한적한 곳에 윤보선 전 대통령 생가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지역별로 역대 대통령 기념관은 모두 있지만 윤보선 전 대통령은 생가만 겨우 그 흔적을 이어가고 있다. 



당시 육군 소장이었던 박정희가 군사정변으로 권력을 잡으면서 9개월여의 짦은 재임기간을 끝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이승만 1인 독재 체제에 거부감이 있었던 학생과 시민들은 원하는 것이 많았으나 경제성장은 정체되었고 실업률과 물가는 동반 상승하면서 국민들의 불만은 해소되지 않았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장면 내각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드라이브했으나 제대로 실행하기도 전인 1961년 5월 16일 박정희는 자신의 세력과 육군참모총장 장도영을 끌여들어 군사정변을 일으키며 실행 할 수 있는 기회는 사라져버렸다. 



이곳에서 태어나 1913년 일본 유학길에 올랐던 윤보선은 이후 여운형을 따라 상하이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영국에서 옥스퍼드와 에든버러 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그는 해방후 서울시장 및 상공부장관을 맡으며 출세가도를 달렸으나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과 사사오입등의 개헌을 통해 이승만의 장기집권을 도모하자 야당들을 통합하여 민주당을 탄생시킨다. 



지금까지 유일한 충청도 출신의 대통령은 윤보선이었다. 1962년 3월 짦은 임기를 마지막으로 윤보선은 사퇴한다.  1963년 5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와 맞붙었으나 15만 여표의 표차로 낙선 한후 계속 야당에서 정치생활을 하다가 1990년 서울 안국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박정희 정부는 장면 내각에서 세워놓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일부 수정하여 본격적으로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때 경부고속도로는 물론 도로와 항만등의 사회 간접 자본이 확충되었다. 지금의 재벌들은 모두 그때 만들어졌으며 국내에서 지배적 위치를 넘어서 독점적이 위치를 차지하였다. 



윤보선과 박정희의 악연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이어진다. 1964년 국교 정상화라는 명목으로 한일 교섭이 비밀리에 추진되었는데 이는 미국의 압력뿐만이 아니라 경제개발을 위한 자금마련이 가장 큰 동기였다. 이때 윤보선을 비롯한 야당인사들은 ‘대한일 굴욕외교 반대 범국민 투쟁위원회’를 결성하여 반대투쟁을 다짐했다. 이후 박정희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시민이나 학생들에게 호의적인 언론에 권력의 칼날을 들이대자 윤보선은 ‘언론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요, 탄압이며 나아가 언론 그 자체를 말살하려는 독재의 극치’라고 비난했었다. 



윤보선은 해방후 출세가도를 달렸으나 제3대, 제4대, 제5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1960년에는 내각제를 기반으로 하는 과도기 정부에서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다. 이후 제5대, 제6대 대통령선거에 출마는 했으나 당선되지는 못했다. 한국은 아직도 긴 민주화과정속에 있다. 모든 발전은 순식간에 이루어지지 않고 역사의 긴 흐름에서 완성되는 것처럼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자신의 이상을 굽히지 않고 끝까지 나아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과 민주주의가 안착된 영국에서 공부한뒤 조국 민주화에 평생을 바쳤던 윤보선 대통령 생가에 방문해보니 민주주의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끔 해주는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