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입신양명이라는 것으로 대변되는 출세는 꼭 해야 하는 것일까.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변하면 사람의 원하는 것이 바뀔 수 있을까. 수천년이 지나는 동안 사람이 근본적으로 원하는 것은 바뀌지 않았던 것 같다. 보령 고문서 기획 특별전으로 지난달(4월) 25일부터 7월 2일까지 보령 문화의 전당 기획전시관에서는 '보령의 고문서, 출세와 삶'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 방문해 보았다.




보령에 사시는 분들 조차 1년에 한번 가볼까 말까한다는 보령 문화의 전당을 4~5번은 가는 것 같다. 보령의 색깔을 만나는 곳이면서 보령만의 역사를 접할 수 있는 곳이기에 보령을 방문할 때면 한 번씩은 지나쳐 가는 곳이다.



보령 문학관에서는 우리가족 박물관 나들이라는 프로그램을 우영하고 있는데 월별로 컨셉이 다르다. 오는 6월에는 이야기가 있는 토우, 7월은 반짝반짝 나전공예, 9월에는 달 밝은 추석같은 프로그램이 운영이 되니 가족과 함께 방문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보령의 대표축제인 머드축제에 관한 내용도 이곳에서 접하게 된다. 이제 2달이 채 남지 않은 보령 머드 축제는 대천해수욕장 일원에서 열리며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관광객들의 오감을 만족시킬 예정이다.



고문서라는 것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오늘날로 말하면 공식적으로 발행한 그런 문서인데 세월이 지난 것을 고문서라고 부르는 것이다. 규격을 가지고 공공의 성격을 가진 그런 문서에는 사람들을 규정하는 그런 무언가가 담겨져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과거의 합격을 의미하는 장원급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 



1년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공무원에 도전하고 합격, 불합격의 갈림길에 선다. 예전에도 조정에 등용되기 위해서는 그런 시험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러나 과거를 거치지 않고도 실무능력을 쌓은 실무자가 조정에 등용되어 관료로서 일하기도 했다. 



성씨가 중요했던 이유는 출세를 하기 위해 집안을 보는 것은 국가를 이루고 나서 지금까지 지속되던 일이었다. 광주 안씨는 보령의 웅천읍 소황리, 황교리 일대에 세거하던 가문으로 선산은 웅천읍 소황리에 있다. 그중에 안대진은 1586년 문과에 급제했는데 오천면 소성리 충청수영성에 소재한 저장성 지역 수군장으로 임진왜란에 참전한 계금장군의 덕을 기리는 글을 짓기도 했다고 한다. 



광주안씨의 족보도 지금까지 잘 보존되고 있는데 당시의 삶을 알아볼 수 있는 다양한 자료가 전시관에 전시되어 있었다. 



지금도 입양제도가 운영되고 있지만 과거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가문에 입양되기도 했다고 한다. 예조입안은 1710년 안홉이 처 박씨와의 사이에서 아들이 없어서 동생 안위의 셋째아들인 안익승을 양자로 들였는데 예조에서 승인하였던 서류이다.




국가 공무원이 되는 길은 바로 과거다. 주요한 관리 선발제도였던 과거는 소과, 대과등의 과정을 거쳐 정착하였는데 대과에서는 초시, 복시를 거쳐 33명을 선발하였다고 한다. 




요즘에 개인정보를 세세히 물어보는 사람에게 호구조사하냐고 묻기도 하는데 실제 호구조사는 그 가족구성원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으며 오가작통법에 따른 통호번을 포함하여 상세한 정보와 소유 노비의 현황 까지도 기록이 되어 있었다. 







전국의 수많은 박물관이나 전시관에서 흔히 만나는 옛 자료중에 하나가 교지다. 임금이 4품 이상의 문.무관에게 관직을 임명하거나 시호, 토지 등을 내려줄 때 사용한 명령서로 시명지보, 과거지보등이 새겨진 도장이 찍혀 있다. 



역사속에서 사후에 벼슬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걸 추증이라고 하는데 죽은 뒤에 생전의 공적 등을 살펴 관직을 올려주는 것으로 탁월한 공을 세워 공신에 책봉되면 본인의 처와 부모를 포함하여 3대의 조상에게 높은 관직을 내리거나 생전의 직급을 승진시켜 그 공을 기렸다고 한다. 


사람이 태어난 이상 출세를 하고 싶어하는 욕망은 어떻게 보면 당연해 보인다. 삶을 잘 영위하는 것에 대해 정답은 없지만 과거 사람들의 흔적을 살펴보는 것은 때론 재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