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한자 한자어- 홍지문(弘智門)과 숙정문(肅靖門)

한자 한자어
    ♤ 홍지문(弘智門)과 숙정문(肅靖門) ♤ 조선조 초에 정도전(鄭道傳)은 한양의 성문과 중앙의 종루 이름을 사람이 살아가면서 늘 지켜야 할 다섯가지 도리, 즉 인(仁) 의(義) 예(禮) 지(知) 신(信)의 오상(五常:五行)을 따서 붙였다. 그리하여 흥인지문(興仁之門:동대문), 돈의문(敦義門:서대문), 숭례문(崇禮門:남대문), 홍지문(弘知門), 보신각(普信閣)이란 이름을 지었다. 그러나 홍지문(弘知門)은 그 당시 정치인들은 백성들이 똑똑해져서 정치를 바르게 하는지 잘못하는지를 구별할 줄 아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북대문을 홍지문이라고 부르는 것에 반대해서, 그 당시 뜻으로 개혁(改革)과 정화(淨化)라는 의미를 지닌 숙청(肅淸)이라는 말을 붙여 '개혁의 문'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북대문인 숙청문은 북한산 동쪽 산마루턱의 성북구 성북동 계곡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숙청문은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나라를 세운지 5년만인 1396년에 완공하였던 것. 그러나 당시 풍수학자 최양선(崔楊善)이 “동쪽, 서쪽 봉우리는 정궁인 경복궁의 양 팔과 같아 닫아 두어야 한다” 고 건의, 축조한지 18년만인 1413년에 폐쇄하였다. 숙청문은 태종 13년에 폐쇄된 채 있다가 1504년(연산군 10년)에 동쪽으로 약간 옮겨 석문만 세워 숙정문[肅靖門]이라 불렀다. 그 뒤 가뭄이 심하면 음의 기운이 강한 숙정문을 열어 비가 오기를 기원했으며 장마가 심하면 닫았다고 한다. 또 순조때 실학자 오주(五洲) 이규경(李圭景)은 저서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篆散袴)"에 ‘ 숙청문은 음의 자리에 있어 열어두면 서울 장안의 여인네들이 바람난다’고 쓰고 있다. 이는 정월 보름 이전에 숙정문 을 세번 오가면 액운이 없어진다고 해서 부녀자들의 나들이가 많아지자 남정네들도 모여들어 풍기가 문란해졌기 때문에 그와 같은 속설이 퍼진 것이라 한다. 숙종 4년 1715년 지금의 세검정 길가 홍제천 위 (상명대학교 앞쪽)에 세운 수문인 한북문(漢北門)을 숙종이 친필로 弘智門이라고 이름을 써붙여서 홍지문이 새로 생기게 되어 북대문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본래 북대문인 숙정문 은 석문만 있던 것을 1976년 북악산 일대의 성곽을 복원하면서 문루를 짓고 숙정문 肅靖門)’이란 편액을 달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