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수목원 - 육림호>

 

겨울나무는 나무의 본질을 보여준다.

눈이 시릴만큼 푸르름을 자랑했고 붉게 타오르는 아름다움도 과시했었다.

혹한의 계절에 모든 것 다 내려놓고

나이테라는 징표를 위해 지금은 자기자신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작년 겨울은 눈도 많이 내렸고 날씨도 정말 추웠다.

21011년 폭설이 내린 국립수목원의 모습 (http://blog.daum.net/myfoods/8525209)

 

겨울나무의 의연한 자태를 보기위해 올 겨울에도 국립수목원을 찾았다.

작년에 느꼈던 한파는 아직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겨울은 겨울이다.

일주일 전에 쌓인 눈은 아직 녹지도 않았고 찬바람이 얼굴을 스칠 때면 마치

가느런 회초리가 지나가는 느낌이다.

 

무슨 미련이 남아서 꽃씨를 다 보내지 못했을까?

가지에 매달린 채 메말라 가는 야생화의 꽃씨가 한 겨울의 풍경을 연출한다.

 

나무라는 것이 원래 인생을 비교하는 식물이 아닌가...

겨울나무를 블로그에 포스팅하기 위해 앵글에 담아왔는데...

요상하게도 겨울나무가 블로그의 세상과 오버랩이 된다.

겨울나무로 쓰고 블로그(blog)로 읽어도 되겠다.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던 그 여름날...

오고 가는 많은 사람들을 편히 쉬게 만들어 주었던 곳.

꼬마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웃음소리도 들었고, 인생을 이야기하는 어르신들의

도란도란한 목소리도 들었을 것이다.

차가운 겨울...

지금은 덜 녹은 눈과 낙엽만이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무의 본질을 잃지않으려 의연한 자세를 유지하지만

겨울이라는 계절은 역시 시련일 수 밖에 없다.

 

이웃 나무의 자람을 위해 소중한 분신인 가지 몇 개가

짤려나가는 아픔을 맛 보았고,

 

 

희생도 부족하여 느닷없는 날벼락도 맞았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 하였던가.

나무는 벼락 맞아 죽을지언정 결코 쓰러지진 않는다.

 

작은 개울이 꽁꽁 얼어버린 겨울...

가만히 쳐다보니 개울가의 겨울나무는 더 많은 시련을 받고 있는 듯 하다.

양지바른 쪽의 땅보다 더 꽁꽁 언 곳에서의 겨울나기...

이 겨울나무에게 찾아오는 봄은 여느 나무보다 더 찬란하고 눈부실 것이다.

 

 

오랫동안 버티어 온 세월의 흔적들이 표피에 남겨지면

그 속의 나이살들은 더욱 견고한 동그라미를 그리며

더 큰 나무로 자리를 지킬 것이다.

그리고...

 

또다른 생명체와 함께 하는 진리를 보여준다.

내가 있음에 다른 이가 존재하는 것...

거목이 이끼를 존중하는 진리는 도대체 어떤 진리일까?

 

이미 큰 나무는 어느 계절에 상관없이 위풍당당한 모습이다.

날 선 도끼가 내리찍어도 이겨낼 수 있는 위용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제 아무리 위용이 넘친다 하여도 나무는 나무다.

전기톱 하나면 수 백년의 생명도 몇 분만에 무너진다.

 

한 여름날에 초록을 길게 늘여뜨려 불어오는 바람에 살랑이며

멋진 자태를 뽐내던 수양버들의 겨울 모습...

 

앙상한 가지만이 얽히고 설킨 채 겨울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다.

수양버들.... 그 초록의 포장만 벗겼을 뿐인데 이렇게 참혹한 풍경인가...

 

 

 

 

하루만의 위안   (조병화)

 

잊어버려야만 한다.
진정 잊어버려야만 한다.
오고 가는 먼 길가에서
인사 없이 헤어진 지금은 그 누구던가
그 사람으로 잊어버려야만 한다.

온 생명은 모두 흘러가는 데 있고
흘러가는 한 줄기 속에
나도 또 하나 작은
비둘기 가슴을 비벼대며 밀려가야만 한다.

눈을 감으면
나와 가까운 어느 자리에
싸리꽃이 마구 핀 잔디밭이 있어
잔디밭에 누워
마지막 하늘을 바라보는 내 그날이 온다.
그날이 있어 나는 살고
그날을 위하여 바쳐온 마지막 내 소리를 생각한다.

그날이 오면
잊어버려야만 한다
오고 가는 먼 길가에서
인사 없이 헤어진 지금은 그 누구던가
그 사람으로 잊어버려야만 한다.
 

조병화 시인은...

흐르는 인생속에 상실과 만남의 무수한 반복들..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위안과 보람, 그리고

주어진 시간을 감사한 마음으로 이 시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이 시가....

 

자꾸....

 

내 블로그와 연관이 되는 느낌이다...

 

(아름다운 시 구절을 너무나 쉽게 미물과 연관시키는 내 속물... 참 용감하다..)

 

 

그래서일까...

뭐든지...

나와 연관된 모든 것들을 이렇게 흰눈으로 ...

흰색으로 모두 덮어버리고 싶다.

 

가지 많은 나무는 바람도 잘 든다.

그 바람을 이기기 위해 뿌리는 더 깊히 내린다.

세찬 바람에 뿌리 채 뽑히는 나무도 간혹 있다.

 

정말 현명한 나무는 세찬 바람에

몇 가지들만 희생할 뿐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억센 환경이 더 강한 나무를 만들어 낸다.

쉽게 자라고 쉽게 무성해진 나무는 쉽게 뽑힐지도 모른다.

자연의 조화는 인생의 조화가 아닐까...

어쩌면 블로그 세상의 이치와도 같다.

 

미국에서 작은 일기로 시작된 블로그가 지금은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그 문화를 누림에 있어서 

보다 더 당당하고 떳떳한 자세를 갖추었으면 좋겠다.

그렇지못한 블로그라면....

 

스스로 가지를 쳐내고, 그래도 안된다면 스스로 고사되는 것이 현명한 처세일 것이다.

뿌리가 썩은 나무는 아무리 버티어도 오래가지 못한다.

 

겨울바람은 겨울나무의 표피에 더욱 깊은 골을 파내고 있다.

깊히 패일 수록...

다가오는 봄날에 더욱 더 많은 가지들과 잎사귀로 무성히 자라나는 거목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