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야화 (107)허거사의 귓속말

 
용바위마을이 깊은 시름에 빠졌다. 한양의 판서 대감이 자기 아버지 묏자리를 하필이면 용바위 코앞에 잡았기 때문이다. 권세 등등한 판서는 진작에 풍수지리에 능한 지관을 불러 팔도강산 방방곡곡 명당을 찾아 뒤지다 이곳 용바위를 찍게 된 것이다.

용바위마을은 제법 큰 집성촌으로 1년 내내 언쟁 한번 일어나는 일 없이 안온하게 살아가는 마을이다. 병풍 두른 듯한 용마루산에 집채만 한 용바위는 산을 떠받치고 마을 앞으로는 굽이굽이 내가 흘러 이 마을엔 가뭄이 없다. 삼월 삼짇날이면 소를 잡고 갖가지 제물을 장만하여 마을 어른들이 유건을 쓰고 용바위 앞에 제상을 차리고 거창하게 산신제를 올린다. 마을을 보호해 주는 용바위에 해코지를 하면 안된다고 그 근처에서는 나물도 못 캐게 하는데 그 앞에다 묘를 쓰겠다고 하니 마을이 발칵 뒤집힐 수밖에.

발인 날짜는 각일각 다가오는데 남녀노소가 모두 모여 머리를 맞대고 막을 궁리를 해 보지만 결론은 한숨뿐이다. 상여가 못 들어오게 길을 막자, 묏자리에 드러눕자… 의견을 냈으나 어느 것 하나 될 성 싶은 게 없어 모두가 술만 퍼마시며 울분을 토하는데 그 와중에 허거사가 나타났다. 마을 어귀 주모한테 반해서 잊을 만하면 나타나 며칠 동안 주막에 머물며 수작을 걸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파락호다.

“촌장 어른, 소문 들었소이다. 저한테 맡겨 주시면 간단히 돌려보내겠습니다.”

“복안이 뭐요?”

“말할 수 없습니다.”

운구날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을 때라 촌장은 자포자기한 상태로 허거사에게 “마음대로 해 보라”고 일렀다. 이튿날, 당대의 세도가 판서 대감네 장례답게 운구행렬이 십리나 이어졌고 용바위마을의 저항이 있을세라 왈패 100여명이 만장을 들고 앞장섰다.

그들이 마을 어귀에 다다르자 예상 밖으로 멍석이 펼쳐지고 술상이 차려졌다. 파락호 허거사가 도포를 의젓하게 차려입고 왈패 만장꾼들에게 술잔을 권하자 곧이어 꽃으로 덮은 상여가 내려앉고 상주인 판서 대감이 나타났다. 허거사가 점잖게 상주를 멍석에 앉히고 꿇어앉아 문상을 했다.

“대감, 천하명당을 잡았습니다. 소인도 방방곡곡을 훑어봤습니다만 이런 명당을 못 봤습니다.”

판서는 속으로 ‘그럼 그렇지. 너희 놈들이 저항해 본들 별 수 있겠어’ 하며 흐뭇한 표정으로 술잔을 들이켰다. 바로 그때, 허거사가 판서 대감 곁에 바짝 다가앉아 귓속말을 몇마디 하자 갑자기 얼굴이 파랗게 질리더니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고 이를 맞부딪쳤다. 판서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장막 지주를 잡고 일어섰다.

“여, 여 여봐라. 사,사, 상여를 돌려라.”

상여 행렬은 족제비 앞의 살모사처럼 머리를 돌려 되돌아갔고, 용바위마을에는 밤새도록 잔치판이 벌어졌다. 동네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허거사는 “무슨 말을 했기에 판서 대감이 사색이 됐느냐”는 물음에 웃기만 할 뿐 입을 열지 않았다. 촌장이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허거사, 소원이 뭐요?” 물으니, 그는 부끄러운 표정으로 “주막집 주모가 제 마음을 몰라 줍니다.”

촌장이 이 동네 일가친척인 주모를 불러오라 하니 심부름 갔다 온 아이가 말하기를 부엌문을 잠그고 목욕 중이라 했다. 주모와 합방을 하고 사흘을 머문 허거사는 비밀을 털어놓지 않은 채 어디론가 훨훨 떠나 버렸다. 그가 판서 대감에게 했던 귓속말은 이것이다. “대감, 그 묏자리는 삼대 안에 임금이 나는 자리입니다.” 새 임금이 난다는 것은 곧 반역을 뜻하는 것이기에, 판서가 사색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출처] 사랑방 야화 (107)|작성자 고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