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분 토론」400회 출연 후기

- 이제는 백토를 지켜야 할 때

 


MBC 「100분 토론」(애칭<백토>)이 어느덧 400회를 맞이했다. 얼추 9년의 역사에는 한국 현대사의 주요 의제가 빼곡히 꽂혀있다. 400회를 맞이한 <백토>에 출연하게 된 것은 큰 영광이었다. 당대의 내로라하는 논객들과 함께 뭔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되고 있는 이명박 정부 1년을 논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다. 이를 반영하듯 400회 방송의 여진은 인터넷에서 직장에서 계속 화제가 되고 있다.

 


9명이나 되는 패널 숫자와 제한된 시간, 그리고 다른 패널의 이야기를 중간에 끊고 들어는 무례를 범할 뻔뻔함도 없었기에 내 이야기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기는 하다. 그러나 공식적인 의견 표명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은 현역 정치인으로서 신해철, 김제동, 진중권씨 등 네티즌의 사랑을 받는 분들의 발언기회가 많아지는 것이 그닥 나쁘지는 않았다.

 


<백토>가 400회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백토>의 탁월한 의제설정 역할과 남다른 시대감각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 사회의 격동하는 주요 이슈에 대한 엇갈린 견해들을 종합해서 들을 수 있었고, 여론의 방향이 정해졌으며, 이슈의 우선순위를 매길 수 있었다. 또한, 토론에 익숙지 않은 우리 한국사회에 토론문화의 교과서 역할까지 하여 다른 방송사들이 경쟁적으로 토론 프로그램을 만드는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또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스타 논객들의 배출이다. <백토>의 힘은 이슈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우는 토론 프로그램의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걸출한 스타 논객들을 탄생시켰다. 스타 없는 영화나 드라마, 심지어 프로구단을 상상할 수 없듯이 스타 없는 토론프로그램도 이젠 상상하기 어려워졌다. 그만큼 토론 프로그램의 대중화와 전국민적 신드롬을 <백토>는 이뤄낸 것이다.

 


물론 대부분 출연 패널들의 견해가 상대방의 논리와 설득에 감화되어 바뀌는 일은 거의 없었다. 어차피 판단은 시청자들의 몫이었으니까. 오죽하면 끝장 토론이라는 형식을 빌어 장장 6시간 가까운 토론이 이어졌던 적도 있었다.

 


문제는 국민적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는 <백토>의 예사롭지 않은 운명이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MBC의 최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20주년 기념식에서 MBC에 대한 정명(正名)을 거론했다. “MBC는 공영방송인가? 민영방송인가?, 지난 1년간 MBC는 무엇을 했으며, 최대주주인 방문진은 무엇을 했는가?” 다그쳤다. 방송통신정책의 최고 수장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MBC에 대한 민영화의 포문을 연 것이다. 이를 두고 MBC 노조에서는 ‘방송통제위원장’의 협박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우리는 이미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방송프로그램들이 중단되고 변경되는 아픈 경험을 했다. YTN의 <돌발영상>과 KBS의 <시사투나잇>과 <미디어포커스>가 대표적이다. 국민의 입장에서 권력에 대한 감시와 사회정의를 지켜내던 프로그램들이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 음모의 희생양이 되어 버린 것이다. MBC의 <PD수첩> 역시 광우병 촛불시위를 촉발한 괘씸죄의 대가를 꼼짝없이 당해야 했다. <백토>역시 왕성한 사회적 의제 설정과 건강한 비판자 역할을 다하는 한, 건강한 여론 조성의 아고라(agora) 역할을 다하는 한, 혹세무민의 정치를 기도하는 이명박 정권에겐 눈엣가시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백토> 400회 출연의 감회가 새삼스러운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백토> 9년, 400회의 역사는 민주정부 10년과 궤를 같이해 왔다. 우리 현대사의 어느 시기보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왕성하게 함양되어 왔던 시기였기에 <백토> 400회의 역사가 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통제하려는 의도를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있는 이명박 정권에 의해서 <백토>의 왕성한 에너지가 위축되거나 건강한 여론 조성의 역할이 작아지지 않기를 기원해야 하는 원망스러운 시절이 다가왔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올해 통과를 목표로 재벌과 거대 신문사에 지상파 방송사의 소유권을 넘겨주고 사이버모욕죄 도입을 골자로 하는 언론장악 7대 악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언론통제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악법 중의 악법이다. 재벌과 일부 거대 신문사에 MBC의 소유권이 넘어간다면 <백토>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정말 상상하기조차 싫어진다.

 


<백토> 400회를 맞이하여 <백토> 500회, 1,000회 특집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이제 우리 시청자들이, 국민들이 <백토>를 지키는 심정으로 나서야 할 때이다. 400회에 대한 높은 국민적 관심과 애정, 격려를 이어나가 500회, 1,000회 특집을 기대하고 기다릴 수 있도록 재벌과 신문에 대한 방송 소유를 허용하는 악법을 반드시 막아내겠다는 다짐을 거듭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