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레도에서 다시 마드리드로 돌아왔다.

프라도 미술관스페인 광장, 마드리드 왕궁, 마요르 광장까지 일정에 잡혀 있는데

프라도 미술관에 도착한 시각이 오후 4시가 다 되어가고 있으니

도무지 이 일정에 어떻게 소화해낼지 걱정이 앞선다.

단체 여행은 안그래도 수박 겉핥기 여행이 될 수 밖에 없는데 이렇게 시간에 쫓기는 처지가 되었으니 겉핥기라도 할 수 있을지...ㅠㅠ

감상을 하면서 천천히 관람하면 하루는 족히 걸린다는 프라도 미술관인데

예전에 보았던 작품들보다도 훨씬 더 적은 수의 작품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단 생각에 미리부터 기운이 빠지는 것 같다.





마드리드에서 본 것들을 지도에 표시 해 보았다.

녹색 테두리안에 쓰여진 것들은 예전 여행에서만 본 것들이고.

프라도 미술관에서 스페인 광장까지 가는 길을 지도상에서 찾아보면

지난 번 처럼 그란비아를 거쳐 가는 게 더 빠를 것 같은데

이번엔 반대 방향인 아토차역톨레도문을 지나서 갔다.

그란비아 쪽이 교통 체증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일단 마드리드 첫 일정으로 프라도 미술관에 왔으니 프라도 미술관에 대한 이야기부터~

프라도 미술관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미술관과 함께 세계 3대 미술관으로 꼽히고 있는 대형 미술관으로

3만점이상 되는 방대한 양의 회화와 조각을 소장, 전시하고 있는 미술관이다.

작품 구성을 보면 스페인 회화 부문이 충실해

스페인 회화의 3대 거장으로 불리는 엘 그레코, 고야, 벨라스케스를 비롯해

16~17세기 스페인 회화의 황금기에 활약했던 화가들의 주옥같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스페인 왕실과 관계가 깊었던 네덜란드의 플랑드르파 작품과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인 라파엘로와 보티첼리 등 이탈리아 회화 작품들이 많다. 

그 외에 독일, 프랑스 등 유럽 회화의 걸작과 고대의 조각 작품군도 전시되어 있고...



위 사진에 찍힌 부분은 고야의 문으로,

 프라도 미술관의 3개의 문 (고야의 문, 벨라스케스의 문, 무리요의 문) 중 하나이다.

(사진에 보이는 모습으로 봐선 보수 공사 중인가 싶기도 한데,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프라도 미술관의 3개의 문 (고야의 문, 벨라스케스의 문, 무리요의 문)> 





 

예전에는 이 고야의 문으로 입장했던 것 같은데 오래 전 일이고 보니 기억이 왜곡됐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어쨋거나 이번엔 3개의 문 중 어느 것도 아닌 아닌 다른 입구를 통해 프라도 미술관으로 입장~





각각의 문에는 그 문 이름의 주인공인 고야, 벨라스케스, 무리요 동상이 서 있다.





미술관 입장을 위해 이동 중~






입구로 들어서기 전 왼쪽 언덕에 위치한 산 헤로니모스 엘 레알 성당(산 헤로니모스 왕립 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지나치기는 어려울 듯한 아름다운 외관의 산 헤로니모스 엘 레알 성당

후안 카를로스 1세를 비롯한 왕자들의 임관식이 거행되던 유서 깊은 장소이고

나폴레옹 지배 하에서는 프랑스 군대의 지휘본부로 사용했던 아픈 역사의 장소이기도 하다.





보안 검색대를 통과한 우리는 시간 관계상

프라도 미술관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위주로 하여 작품을 돌아보았다. 

프라도 미술관 1층에는 엘 그레코의 작품을 비롯해 15~16세기에 활동한 스페인 국내외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고야, 벨라스케스와 함께 스페인의 3대 거장으로 불리는 엘 그레코는 '가장 순수한 스페인의 혼을 표현한 화가'로 평가되고 있다.

 프라도 미술관에 있는 그의 작품은 <성 삼위일체>, <수태 고지> 등 모두 39점이며

 그중에서도 <가슴에 손을 얹은 기사의 초상>은 엘 그레코의 작품 가운데 최고의 수작으로 꼽힌다고 한다.





15~16세기 플랑드르파 회화의 대표작으로는 히에로니무스 보슈 <쾌락의 정원>과,





 브뤼겔<죽음의 승리>가 전시되어 있고,





15~16세기의 이탈리아 회화로는 르네상스의 주역 라파엘로의 <양을 모는 성가족>,





보티첼리의 연작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 이야기>,





  안젤리코<수태 고지> 등 종교화의 대작들이 있다.





미술관 2층에는 궁정화가 벨라스케스를 비롯해 17세기 유럽에서 활약한 유명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왕족의 초상화를 비롯한 수많은 작품들을 남긴 벨라스케스의 대표작인 <시녀들>!!

이 작품을 보기 위해 프라도 박물관을 방문하는 이도 있을 법한, 유럽 회화사에서도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시녀들]


▶벨라스케스가 주문받은 국왕 부부(펠리페 4세와 왕비)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을 때, 펠리페 4세의 딸인 마르카리타 공주가 찾아와 왕 부부에게 가고 싶어 징징거리는 것을 시녀들이 달래고 있는 장면을 그린 것임  

벽에는 그림 속 공간을 더 넓어 보이게 만들어 주는 두 개의 거울이 있고, 작은 거울 속 두 인물이 국왕 부부임

▶벨라스케스는 이들을 그림 속 화가가 그리고 있는 그림의 모델이 되게 하여 관객과 마찬가지로 그림 밖에 위치하게 하는 동시에 작품 안의 거울 속에 비친 모습으로 그려넣음으로 작품 속의 구성원이 되게 함  

왼쪽에 화구를 든 남자는 벨라스케스 자신이며,  왕과 왕비를 그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도 그려넣음으로써 화면 안과 밖의 모호한 공간 개념을 만들어 공간적인 착각을 일으키게 함 

▶1600년대 회화의 자연주의 양식이 최고의 절정에 이른 작품으로 피카소와 고야를 포함한 많은 예술가와 이론가들에게 영감을 준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음

벨라스케스의 검은 옷에 그려진 붉은 십자가는 성 야고보 기사단의 상징으로, 그림이 완성된 이후에 문장을 받고 덧칠하여 그린 것이라고 함






17세기의 플랑드르파 회화로는 루벤스<성가족>, <사랑의 정원>, <세 여신> 등 수많은 걸작을 볼 수 있으며

네덜란드 회화로는 렘브란트<자화상>이 있다.





스페인 회화의 보물인 고야의 작품은 2~3층에 전시되어 있으며,

특히 전시 면적이 작은 3층은 고야의 전용 전시실이나 마찬가지~

고야는 궁중을 비판하고, 타락한 왕실을 표현한 화가이다.

이런 풍자를 당시 왕실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하고

그를 최고의 화가라고 칭찬하는 어리석음으로 훗날 우리에게 최고의 화가를 남겨주었다.

스페인의 일상적인 풍경을 생생하게 묘사한 밝은 분위기의 초기 작품들을 비롯해 

카를로스 4세의 의 궁정 화가가 되어 그린 <카를로스 4세 일가>, <옷을 벗은 마하>, <옷을 입은 마하> 등 누구나 알만한 작품들과

인간 내면의 고뇌와 갈등을 주로 표현한 만년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옷 벗은 마하>, <옷 입은 마하>



[옷을 벗은 마하, 옷을 입은 마하]


스페인의 재상인 고도이를 위해 그려졌다고 전해지는 작품

▶소문난 난봉꾼이었던 고도이에게는 누드 미술작품들만 모아 놓은 비밀의 방이 있었는데 <옷 벗은 마하>는 그 방에 걸려있던 작품이라고 함

▶고도이는 <옷 벗은 마하> 앞에 <옷 입은 마하>를 걸어놓고 도르래를 이용해 <옷 입은 마하>를 움직임으로써 <옷 벗은 마하>를 감추었다 드러냈다 하며 감상했다고 함 

▶1808년 고도이의 누드화들이 발각되어 종교재판에 회부되면서 화가인 고야도 재판에 불려나갔으나 티치아노의 <다나에>와 벨라스케스의 <비너스의 화장> 에 따라 그렸다고 해명하여 처벌받지 않음(스페인 교회가 누드화에 엄격했지만 티치아노와 벨라스케스는 교회 미술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존경받는 대가였기 때문)

▶고도이의 실각 후 폐쇄된 저장실에 보관되었다가 1834년에 <옷 입은 마하>만 세상에 다시 공개되고, 두 그림이 모두 빛을 본 것은 1900년의 일로, 고도이 재상의 비밀의 방에서 가끔 방문객을 맞은 이래 근 한 세기만의 일임

▶두 그림은 1901년부터 프라도 미술관에 전시되어 관객을 맞고 있음






<카를로스 4세 일가>



[카를로스 4세 일가]


▶대규모 왕실 그룹 초상화로 전시실 벽 한 쪽을 거의 다 채울 정도의 크기임

▶한명씩 따로 초상화를 그린다음에 하나로 합쳐서 그린 그림

▶보통의 왕실 단체 초상화와는 달리 왕비인 마리아 루이사와 양 옆의 아이들이 중앙을 차지하고 있고 왕인 카를로스4세는 살짝 옆으로 비켜져 있으며 왕과 왕비의 표정도 대조적임 

▶강한 카리스마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멍청한 모습으로 그려진 왕과 도도하게 턱을 치켜들고 중심에 서 있는 왕비...권력의 중심이 누구에게 있었는지를 입증해 주는 그림이며 14명의 자식 중 양 옆 아이들은 고도이의 자식이라는 풍문이 있음

▶실제로 카를로스 4세는 부와 권력에 취하여 백성을 무시하고 국정에 무능했으며, 왕비인 마리아 테레지아는 문란한 사생활을 즐기며 권력의 중심에 서 있었다고 함

▶왕과 그의 가족들의 화려한 이면에 존재하는 탐욕과 허영, 퇴폐를 냉정하게 그리고 있음






<1808년 5월 2일> , <1808년 5월 3일>



[1808년 5월 2일, 1808년 5월 3일]


1808년 5월 2일- 프랑스군 점령 당시 프랑스에 대항했던 스페인 마드리드 시민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

▶전통적인 전쟁 그림과는 달리 영웅이나 승리의 순간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군중들의 광기와 잔인성에 초점을 두어 전쟁의 잔인함과 절망한 군중들의 발작적인 폭력을 그림으로써 스페인 시민들에게는 약간 껄끄러울 수도 있는 작품이 됨

▶1808년 5월 3일-프랑스 군에 맞선 스페인 마드리드 시민들의 봉기가 실패한 후, 다음 날인 5월 3일, 시민 봉기의 가담자들이 프랑스군에 의해 잔인하게 처형 당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으로 마드리드 시민들의 영웅적인 에피소드를 기리기 위해 그려짐

▶흰 셔츠를 입고 양 팔을 십자가 모양으로 벌린 채 죽을을 맞이하고 있는 이(수도사)가 이 그림의 주인공이며 그림 속 사건을 기록한 기사에 따르면 이 날의 총성은 새벽 4시경에 시작되었고 이 총성과 함께 43명의 반란자들이 처형 당했다고 함

▶인간의 야만적인 행동과 끔찍한 전쟁의 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이 날 죽은 이들의 영을 기리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음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고야가 말년에 은둔 생활을 하며 그린 '검은 그림' 연작 중 가장 유명한 작품

▶고대 로마의 농경신인 사투르누스(그리스 신화에서는 크로노스라 일컬음)가 아들 중 한 명에게 왕좌를 뺏길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자신의 아들을 차례로 잡아먹는다는 신화를 출발점으로 삼은 그림

▶이 작품에 대한 여러 해석 중 하나는 말년의 고야가 자신을 스스로 사투르누스처럼 묘사했다는 것

고야의 부인은 여러 번의 임신을 했지만 사산된 아이도 많았고 태어나더라도 일찍 죽어서 결국 성인이 된 자식은 딱 한 명 뿐이었다고 하는데, 이는 고야가 젊었을 때 문란한 생활을 한 탓에 매독에 걸려, 이런 이유로 아기들이 태어나지 못하고 죽거나 일찍 죽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으며, 고야가 청력을 잃도록 만든 열병도 매독이 원인이었을 것이라 이야기가 있음

▶나이가 든 고야는 자신의 잘못 때문에 죽게 된 아이들을 생각하며, 자책하고 <자식을 잡아 먹는 사투르누스>를 그린 것 같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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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짧은 프라도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스페인 광장으로 향한다.


스페인의 도시마다 있다는 스페인 광장!!

 마드리드의 스페인 광장은 사진 속에서 많이 본 곳으로 그만큼 잘 알려진 곳이다. 

(스페인 광장이 잘 알려지게 된데는 소매치기들의 몫도 클 듯....) 

소매치기들이 우글댄다는 소릴 12년 전에도 수없이 들었는데 달라진 점이 없는지 이번에도 역시 당부의 당부를 거듭한다.



레티로 공원 옆을 지나는 중~

차를 타고 갈 때도 딴 짓을 않고 열심히 보다 보면 일정에 잡혀있지 않은 건축물들을 덤으로 더 보게 될 때가 있다.

스쳐지나가면서 본 것이기에 본 것이라 말하기도 뭐하지만 나는 이렇게라도 더 볼 수 있는게 좋다 .  



[부엔 레티로 공원 Buen Retiro Park]


원래는 16세기에 펠리페 2세가 자신의 두 번째 부인이었던 영국의 튜더 메리 여왕을 위해 지은 부엔 레티로 별궁의 정원임

건물들은 프랑스와의 전쟁 때 거의 파괴되고 현재 군사박물관과 프라도 미술관 별관으로 사용하는 건물만 남아 있음

1868년까지 귀족들만 출입할 수 있었으나 이후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시민들이 넓은 호수에서 보트를 타며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됨

공원에는 3개의 갤러리가 있으며, 일요일에는 거리 예술가들이 모여 색다른 즐거움을 전해준다고 함

공원에 자리한 15,000그루 이상의 나무가 마드리드 시내 중심가에 신선한 산소를 공급해 주기 때문에 ‘마드리드의 허파’라고 불림






<시벨레스 분수>



[시벨레스 분수]


마드리드 중앙부의 시벨레스 광장 한가운데 있는 분수로 마드리드시의 대표적인 상징물

분수 중앙에 세운 조각상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풍요와 자연의 여신 시벨레를 형상화한 것으로 여신 시벨레가 대리석으로 만든 수사자 두 마리가 끄는 4륜전차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을 조각한 것임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가이자 아티스트인 벤투라 로드리게스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1782년에 네오클래식 양식으로 완성 
웅장한 규모의 원형 분수는 원래 프라도 미술관 외부에 있었으나 19세기에 이곳으로 이전한 것이라고 함






<알칼라문>



[알칼라문]


▶일명 <스페인의 개선문>으로 시벨레스 광장 맞은편에 있음

▶1778년에 카를로스 3세의 명으로 궁정 건축가 사바티니가 건축함

▶아라곤에서 이 문을 통해 마드리드로 오는 상인들에게 마드리드가 얼마나 중요한 도시인지 보여주기 위해 세웠다고 함

알칼라문의 5개의 통로 중, 중앙의 3개는 아치 형태이며 양쪽 끝 통로 상단에는 장식이 붙어 있음

▶스페인 독립을 기념해 알칼라문 주변을 독립광장이라고 함 






<왼쪽은 알카라 거리의 메트로 폴리스 건물, 오른쪽이 마드리드에서 가장 긴 거리이자 가장 역사가 오래된 거리인 그란비아>







마드리드에 세워진 첫 번째 기차역이자 가장 큰 기차역인 아토차역( Atocha Station)을 지난다.

아토차역 옆에 12년 전 여행 때는 보지 못했던 원형 건축물이 생겼길래 궁금해 찾아보니

2004년에 발생한 마드리드 열차 테러사건의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만든 추모관이란다.

2004년 3월 11일 아침, 연이은 폭발음이 마드리드의 평범한 아침 출근길을 뒤흔들었다.

지옥을 방불케 했다는 아토차역의 그 아침~

이 열차 테러사건은 스페인의 이라크전 참전에 대한 보복으로 이슬람 국제 테러단체인 알카에다가 벌인 동시 다발 테러사건이었다.

191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무자비한 사건이고.

  원통형 내부의 유리벽에는 수천 개의 추모글과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톨레도 문>



[톨레도문]


마드리드 서남부 끝에 위치한 고풍스러운 지역 라티나 지구의 원형 로터리 중앙에 세워져 있는 거대한 규모의 문

프랑스가 스페인를 지배하던 시기인 1812년에 건축이 시작되었으나 1814년 프랑스의 스페인 지배가 막을 내리자 건축도 함께 중단되었다가

페르디난드 7세 재위 시기에 건축이 다시 재개되어 1827년에 완성됨

3개의 통로가 있으며 3개의 통로 위에는 각각 조각상들이 장식되어 있음 

이 문의 남쪽 면은 마드리드에서 남쪽으로 7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주요 도시 톨레도를 향하도록 조성함






< 3개의 탑이 서 있는 원형 지붕의 산 프란시스코 엘 그란데 성당 Basílica San Francisco El Grande>



[엘 그란데 성당]


13세기 초, 아시시의 산 프란시스코가 순례 중에 세웠던 성당 자리에 1784년 프란시스코 카베사스 수도사의 설계로 건축된 원형 성당

원형의 본당 주위를 6개의 예배당이 에워싸고 있는 구조

거대한 원형 천장은 건축가 사바티니의 작품

성당 내부에는 수르바란과 고야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고 함






마드리드의 이런 저런 건축물들을 구경하며 이동하다보니 어느새 스페인 광장 도착~ 

스페인 광장은 그란비아가 시작되는 지점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12년 전엔 인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이른 아침에 와봤었는데

어스름 해질 무렵에 오니 눈에 띄는 다름이 없음에도 뭔가 좀 다른 느낌!!

겨울이라 풀밭에 누워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았지만

보통은 마드리드 시민들이 풀밭에 눕기도 하고 벤치에서 휴식을 취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곳이란다.

  




스페인 광장의 중앙에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작가 세르반테스 서거 30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기념탑이 있다.





탑 앞에는 소설 속 두 주인공,

로시난테를 타고 있는 날씬한 돈키호테와 당나귀를 탄 뚱뚱한 산초판사 동상이 있고.





<돈키호테와 산초판사 동상>





유럽의 광장 치고는 소박하고 작은 편인 광장인데

이곳이 레트로 공원보다 알려져 있다보니

단체 여행에서는 매번 이곳을 빼놓지 않고 방문하는 것 같다. 

 자유 여행이었다면 이번엔 이곳 대신 레트로 공원을 가봤을텐데...ㅠㅠ





기념탑의 옆면을 지나,





뒷면까지 둘러보고 스페인 광장을 떠난다.

(기념탑 뒷부분 가운데 좌상은 이사밸 여왕으로 이슬람 세력을 몰아재고 스페인을 통일 시킨 인물임)





이번엔 왕궁으로 이동~

큰 광장을 사이에 두고 마드리드 왕궁알무데나 대성당이 마주보고 있고

오리엔테 광장에는 펠리페 4세 기마상이 있지만,





해가 진 뒤에 도착해서 왕궁은 보이지도 않고 펠리페 4세 기마상만 간신히 찰칵~





어쩔 수 없이 12년 전 사진을 소환해 본다.





이건 알무데나 대성당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고.

근위병 교대식이 있어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던 것 같다.

알무데나 대성당은 16세기에 건설이 시작되었지만

정치적 문제와 스페인 내전, 재정 결핍등의 이유로 100년이 넘는 기간 후에 완성되었으며,

그 때문인지 여러 건축 양식이 혼재되어 있다고 한다. 





고전주의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마드리드 왕궁

스페인 건축의 절정이라고 평가받는 마드리드의 대표적인 명소~

인파 때문에 왕궁 안쪽 사진은 그때도 못찍어서

픽사베이에서 퍼온 사진으로 대신한다.





왕립극장은 멀찌감치에서 훑어보고,





마요르 광장으로 go go~





왼쪽편 건물 사이 장식등 아래 아치문 들어서면 마요르 광장이다.

(마요르 광장에는 외부로 통하는 아치형 문이 9개 있다고 함)

오른쪽 편으로 가면 산 미겔 시장이고.






마드리드 시민의 휴식처인 마요르 광장 에 들어섰다.






4층 건물들이 빙 둘러싸고 있는 사각 광장인 마요르 광장

펠리페 3세의 명으로 1619년에 건설되었다.

3번의 화재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953년의 일이고.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광장 중앙의 펠리페 3세 기마상~ 





밤인데도 사람들이 북적북적.





늘 그럴 수도 있겠지만

크리스마켓이 열리고 있어서 사람들이 더 많지 않았나 싶다.





한 바퀴 빙~ 둘러 보았는데 마음의 여유가 없어 더 그랬는진 몰라도

딱히 사고 싶단 생각이 드는 물건은 눈에 띄지 않았다.

아이들의 눈으로 보았다면 갖고 싶은 것 투성이였을까??





여기 저기서 노랫 소리도 들리고 웃음소리도 들리고

흥이 넘쳐나는 분위기~





이제 고단했던 하루 일정을 끝내기 위해 아치형 문을 나선다.

다음날은 처음 가보는 세고비아 일정이 끼어 있는 날!!

다음날을 기대하며 너무나 힘들었던 첫째날을 마무리한다.

45시간 동안 눕지도 자지도 못했던 탓에 얼른 호텔로 가 쉬고 싶단 생각이 얼마나 간절했던지...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