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서 미국과는 당분간 안녕이라 말해야 한다. 왜냐면 오늘 밤이면 미국을 떠나 집으로 가기 때문이다. 미국으로의 옴..., 그리 힘들고 멀진 않았다. 마음 먹기까지가 힘들었을 뿐. 미국에 연고자가 있다보니 모든 일이 쉽게 간단하게 결정되고 진행되었다. 그랬던 미국을 살아 생전 다시 오갈 수가 있을까? 살다보면 어떤 변수가 생길런지 알 수가 없겠으나... 굳이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은 아니다 싶다. 그런 미국에서의 마지막 날... 역시 오전엔 쇼핑을 하고 오후엔 그동안 사 모았던 이것저것을 모아 짐꾸리기를 했다. 나 혼자 돌아감으로 인해 50키로 내로 조절을 하느라 몇번이고 쌌던 짐 다시 풀기를 하며 거듭 거듭 저울에 무게를 달고... 베트남의 집에서 집사람이 돌아오기 까지 혼자 살아야 함으로 인한 먹거리(고기와 과일). 지인들에게 나눠줄 간단한 선물들. 불필요한 아영이와 집사람의 옷가지 등등이 내 짐의 전부이며 딱 49.5키로. 이것 외에도 기내용 배낭에 하나 가득. 컴퓨터 가방에도 한 가득... 담고 또 담아야 했다. 그리곤 기다린다. 밤이 되기를.

 

밤하늘

해가 떨어졌다. 이젠 공항으로 가야 할 시간. 밖에 나오니 사위가 어둡고 하늘엔 별만이 초롱하게 빛나고 있다. 아... 저 밤을 꼬박 새워 집으로 가야한다. 베트남에서 한국도 멀다는 느낌인데 미국에서 베트남은 기내식 3번에 간식까지... 총 4번이나 먹어야 만이 도착하는 먼 길이다.

 

휴스톤 공항 안으로

항공권을 지닌 사람만이 공항안으로 들어설 수있는 베트남과는 달리 휴스톤 공항도 한국처럼 환송객들이 공항안으로 자유롭게 들어갈 수가 있었다. 해서 집사람은 내가 갖고갈 짐실은 카터를 밀고... 이모와 티 그리고 아영이가 뒤를 따른다. 동서는 차를 주차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다.

 

휴스톤 공항의 이모저모

공항으로 들어서면 일단은 1층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곳엔 환송객들을 위한 쉼터가 있고 맞은편으론 항공사별로 티켓팅 부스가 있다. 티켓팅을 한 뒤엔 엄청 높은 전동 계단을 이용, 2층의 출국 심사대로 가야한다. 그 심사대를 유리벽 밖에서 환송객이 지켜볼 수가 있다. 즉 출국심사하는 곳까지 환송객이 동행할 수는 있으나 심사대로의 출입은 해당자만 갈 수가 있고... 그때 기내용 짐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것은 곧바로 지켜보던 가족을 불러 되돌려 줄 수가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George Thomas Mickey Leland 흉상

레란드는 미국 텍사스의 저명한 빈곤 퇴치 운동가로서 텍사스의 하원 의원과 민주당 흑인 간부회 의장을 역임한 정치가이다. 텍사스에선 흑인임에도 높게 존경받는 인물이다.

 

 

1972년 텍사스 의회는 최초로 흑인을 비롯한 소수민족 대표를 하원의원으로 선출하기에 이르는데 레란드는 그때 처음 하원의원에 선출된 이래 1974년과 1976년에도 재 선임되었다. 텍사스 주의 입법부에서 6년을 보낸 그는 1978년 텍사스를 대표하여 미연방정부 하원에 선출되었으며 1980년 1982년 1984년 1986년 그리고 1988년에 이어 재선을 했다. 그는 임기동안 가난한 텍사스인에 대한 의료 권리를 옹호했는가 하면 기아와 공중보건 문제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제시하고 자신의 출신처인 아프리카 지역의 기근 위기를 완화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기도 했다. 길거리 무료급식소. 부랑자의 임시 대피소의 수시 방문을 비롯해 굷주림과 고단한 삶을 영위하는 이들에 대한 염려와 관심을 기우릴 것을 촉구하는 입법활동을 하는가 하면 극심했던 유아 사망과 위험에 처한 여성, 굶주리는 이들에게 보다 신선한 음식을 제공하며 노숙자들 위한 질높은 서비스를 창출하는가 하면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들의 대변인이기를 자처했던 그의 노력으로 1985년 아프리카에 8억달러에 해당되는 구호물자를 제공하는 근거를 마련하기도 했다.

 

1989년 8월7일, Leland는 에티오피아의 구제활동 기구인 Fugnido로의 출장중에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이때 Leland를 포함한 총 15명이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되었는데 그의 사후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으로 많은 건물과 이니셔티브 등이 그의 이름으로 개명함으로 그의 명예를 존중하기도 했다. 지금의 휴스턴 조지 부시 인터콘티넨탈 공항의 Mickey Leland 국제 터미널은 그의 이름을 따라 명명되기도 했다.(미국 인물백과사전에서 인용함) 

 

탑승 수속 부스.

원래 가기로 된 날짜에서 몇일 연장된 항공권을 보여주자 "No Need)"라고 한다.

여권을 스켄하는 것으로 그 사람의 항공권 전반이 모니터링되고 있었다.

 

아득할 정도의 높이를 가진 에스걸레이터

티켓팅을 한 후에 출국 심사... 이때 나는... 등에 매는 가방안에 비행기 안에서 먹을 간식으로 과일을 담았는데... 비행기 안에서 다 먹는다는 조건으로 통과를 받고 이어서 컴퓨터를 꺼내야 했다. 그리곤 뭔 종이같은 것을 핀셋으로 집어 컴퓨터의 이곳저곳에 대보더니... 됐단다. 이런 과정을 유리벽에 밖에서 걱정스런 표정으로 가족들은 지켜보고... 미국은 컴퓨터 조차 세밀 검사를 하는 모양이다. 이런 과정을 거친 이후 탑승 출구로 가기 위하여 아주 높다란 전동 계단을 올라야 했다.

 

헤어지는 가족

내 있는 곳이 얼마나 높은지 아래층의 아영이 얼굴을 식별할 수없을 정도로 조그맣게 보인다. 이렇게 집사람은 또 한층 아래로 내려가고 나는 또 한층 위로 올가갔다. 아영이의 손 흔듬. 웬지 서글퍼진다. 헤어짐이 싫어 굳이 원치 않던 미국을 따라 왔드랬는데... 먹고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만 아니라면 이대로 아영이와 함께 두어달 더 있다 함께 집으로 돌아올 것인데 말이다. 가족은 무심코 내려가고 나는...

 

곧이어 등장하는 면세점들

 

그 면세점을 지나니 내가 나가야 할 출구 안내판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베트남으로 가기 위해 타이페이로 가야할 출구

 

소위 비지니스 라운지라 불리우는 VIP 룸

저 안엔 별거별것의 먹거리와 벼나별 서비스를 받을 수있다는데... 나는... 그저 웃는다.

 

탑승을 하고 내게 배정된 자리에 앉아 창 밖을 본다

 

드디어 이륙을 위하여 비행기가 움직이고

 

곧이어 비행기가 하늘로 오른다. 조그맣게 보이는 휴스톤 공항 외부

 

그토록 드넓었던 야외 주차장이 조그맣게 보인다. 이젠... 해서 눈을 감는다.

밖을 내다봐도 온통 어둠 뿐이고... 승무원은 창문을 닫으라고 성화를 부리고... 해서 눈을 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