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꼬박 새워 휴스톤에서 타이페이로... 맑은 아침 햇살을 받으며 타이페이에서 호치민으로... 그렇게 26시간여를 날아 내 집이 있는 호치민으로 왔다. 몸은 하나였지만 짐은 3개나 되었던 것을 찾아 밖으로 나오니 매케한 냄새가 내 코로 스며들고 후덥한 공기가 나를 감싼다. 시끌한 소리와 혼돈 그 자체인 무질서. 누군가를 기다리다 지친 아이는 앵앵 울어대고 돗대기 시장같은 주변을 정리하고자 하는 경비원의 호루라기 소리도 삑삑 울어대고... 한 명의 가족이 외국 나들이에서 돌아오는데 대여섯은 족히 넘을 일가 친척들이 나와 환영을 하는 호치민 공항 밖의 모습. 눈에 익숙한 모습 그대로 였다. 이러함 속에서 아는 이를 쉽게 만난다는 것이 경이로울 뿐이다.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손님기다리는 사람들

때로는 멋진 폼으로 입국장 밖으로 나오는 사람에게 밝은 웃음으로 닥아서지만 막상 상대는 '누구...?'하며 멈칫 거린다. 이어서 자신의 통성명을 하면 그제서야 '아... 너구나~'하며 서로를 얼싸 안는다. 그러면서 입국자는 눈을 들어 다른 사람을 찾는다. 그러니까 가깝지 않은 사람이라는 이야기고... 그러하듯이 몰려든 사람들이 대부분 그러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입국자는 1명인데 반기는 자는 대여섯명이나 되다 보니 입국자 숫자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밖에서 웅성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개중에는 껓다발을 들고 까치발을 하며 누군가를 찾는 젊은 여인도 있고, 이사람같기도 하고 저사람같기도 하고 해서 두리번거리는 아저씨도 있고, 멋드러지게 손을 흔들며 입국장 밖으로 나왔으나 누구하나 자신을 반기는 사람이 없어 멀춤하게 멍하니 서있는 오랜 외국 나들이에서 돌아온 할머니도 있다.

 

 

길을 재촉하는 집사람의 친구

집사람의 친구라고 했다. 나이는 아마 60이 넘었으리라. 전쟁 끝난 뒤부터 여지껏 공항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항공사에서, 면세점에서, 이젠 짐이나 불편한 사람들을 돕는 도우미로 일하시고 있다. 그러니까 나이에 따라 점점 밀려나 마지막까지 내려오셨으리라 싶은데 그러나 그럼에도 짤리질 않았다. 지 맘에 들지 않으면 제깍 세이 굳바이를 외치는 베트남 엘리트 집단에서 아직도 건재하게 근무를 하고 있다. 오랜 세월 공항에서만 일한 터라서 공항에선 모르는 이가 없다. 그러다 보니 공항에서 필요한 모든 것, 짐이 오버된다거나 일반 카운터는 밀리는데 비지니스 라인은 텅텅 비어 있다거나 마시던 물을 출국심사장 넘어로도 갖고 가야할 필요성이 있을 경우... 가능하다. 그런 집사람의 친구인지라 수많은 짐속에서 내짐을 척척, 입국장에서의 또 한번의 짐조사도 없이 밖으로 가지고 나오셨다. 참으로 고마운 사람이다.

 

 

시내에서 공항으로 들어가는 고가도로변에 설치된 광고판

베트남의 축구 열기는 가히 뜨겁다. 요 며칠전 매직 감독 히딩크와 같이 일했던 박항서 감독의 매직으로 인해 베트남 청소년 축구가 아시아 축구의 정상에까지 갔었던 일로 인하여 더더욱 뜨거워졌지만 그 이전부터도 베트남의 축구는 열풍이었다. 베트남 TV의 정규방송으로 축구 체널이 여러개나 될 정도이다. 허나 언감생심 월드컵이나 올림픽은 바라볼 수가 없고. 아시안 게임은 물론 동남아시아 권에서조차 정상에 서보지 못한 이들의 축구지만 그럼에도 무려 18개의 프로 실업팀이 있어 V리그를 치뤄낸다. 즉 이들에게도 당당히 구단의 지원을 받는 프로축구팀이 있다는 말씀이다. 한 때는 영국의 아스날 축구팀과 유소년 자매결연을 맺어 텔레비죤이나 길거리 광고에 아스날 선수들이 등장하곤 했는데... 미국을 다녀온 며칠 사이에 간판이 바뀌었다. 이청용이 소속된 크리스탈 팔래스 축구팀으로... 해서 이청용이 활짝 웃고있는 광고판이 공항 입구에 큼직하게 서있다.

 

이제 차를 타고 20여분만 가면 내가 살고지고 하는 내 집에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