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필암을 나서서 이웃한 대승사로 갑니다.

안동에서 예천을 걸쳐 문경들머리 산북면에 들어 서면 한적한 시골냄세가 풍기는 오지길을

한참 달리다 보면 김룡사와 대승사가 갈라지는 지점에 다다르면 한동안 망설여집니다.

운달산 김룡사도 가야하고 공덕산 대승사도 가야하기 때문이지요

가장 좋은 방법은 각각 하루씩 날을 잡아서 산행겸 절집답사를 하면 좋습니다.

전 오래전에 둘다 방문하여 산행도 하고 절집도 답사를 하였답니다.

또 하나 산북면에는 천주산에 천주사가 있지요

천주산은 경천댐을 끼고 있어 경치가 좋습니다.

천주산은 이름그대로 하늘을 받치고 있는 산이라서 아주 가파른 암벽산입니다.

천년고찰 김룡사도 보고 싶지만 오늘은 윤필암과 대승사로 만족할까 합니다.

명산 운달산곁에 있는 김룡사와 부속 암자들은 다음 기회로 미룹니다.

이 여름 운달산의 깊은 계곡이 간절히 그립네요

반면 대승사는 그런 깊은 계곡이 없는 절집입니다.

대신 대승사는 공덕산 중턱에 어떻게 이만한 터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넓은 터에 저리한 천년고찰이지요

저 아래 도로에서 굽이굽이 돌고돌아 대승사에 이르는 울창한 숲길도 매력이지요

대승사를 오시면 보통 윤필암,묘적암,사불암을 하루에 다 볼 수 있답니다.

꼭 보셔야하구요,윤필암은 비구니암자로 자연이 아름답고,묘적암은 나옹선사의 출가암자로 영정이 모셔져 있고

사불암은 바위 사면에 4분의 부처님이 새겨져 있답니다.

각설하고~

오래전의 기억을 되살려 대승사를 25여 년 만에 다시 들립니다.

오늘은 와이프와 함께~~

 



대승사 넓은 주차장을 뒤로 하고 대승사로 갑니다.

첫 눈에 보이는 입구에 수문장처럼 일주문처럼 하늘 높이 서 있는 두그루의 나무가 자못 위압적입니다.


白蓮堂


25여년전에 벽련당이 있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

마치 사대부 대가집 솟을대문에 달린 사랑채같은 느낌입니다.

다른 사찰에서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입니다.

동서로 길게 자리한 백련당은

정면 11칸,측면 2칸으로 재가자들의 참선정진하는 곳입니다. 



대승사는 템플스테이 절집으로 유명합니다.




대승사는 대승선원이 있는 유명한 큰 절집이며 

불교계에 유명했던 고승들을 많이 배출했고 지금도 

수행용맹정진하는 인재가 많은 절집입니다.

이는 사불산(공덕산)의 창건 설화와 무관치 않고

사불산 정상아래 넓은 터에 자리한 명당터도

한몫하지 않았을가 싶네요. 정말로 대승사를 가보면

왜,대승사가 거찰인지를 알것 같습니다.







백련당 앞 풍경





백련당지나 만세루로 올라 갑니다.


만세루

보통 산속의 절집들은

좁은 터와 계곡을 따라서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段을 높여 가면서 전각을 배치하였는데

대승사도 백련당에서 段를 높여 가며 만세루,대웅전,응진전 등으로 전각들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만세루 돌담


만세루 위로 유명한 대승선원



만세루에서 본 백련당



만세루 아래를 통하여 올라 가면 만나는 대웅전




대웅전



사불산의 산마루에 있는 사면석불상에 관한 설화에 따르면 587년(진평왕 9) 창건되었다고 한다.

고려 고종 때 최자(崔滋)가 절 서남쪽에 있는 백련사를 새롭게 단장했으며, 조선초에는 기화가 반야사를 결성하여 후학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임진왜란으로 불탄 것을 1604년(선조 37)부터 1701년(숙종 27)에 걸쳐 여러 사찰 당우를 신축했는데, 1692년 금당을 지은 뒤 미면사 삼존불을 옮겨 봉안했다.

1725년 의학이 삼존불상을 개금할 때 아미타불 몸속에서 사리 1과와 705년에 금으로 쓴 〈화엄경〉 7권이 나왔다.

1862년(철종 13) 건물 대부분이 소실된 후 몇 차례의 중수공사가 있었고, 1956년 다시 화재가 났으나 1966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극락전·나한전·시왕전·선원·요사채 등이 있으며, 부속암자로는 묘적암·운필암·상적암 등이 있다.

경내에는 대승사목각탱화부관계문서 4매(보물 제575호), 사적비, 아미타불상에서 나온 금자 〈화엄경〉 7권,

석가모니 사리 1과 등이 소장되어 있다.<다음백과>



목걱아미타여래설법상

국보 제321호


대웅전 불상 뒤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로 사람이 조각했는것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조각솜씨에 탄복을 합니다.



청련당과 노주석


대웅전 우측에 있습니다.

주지스님게서 생활하시는 공간이며 신도,손님들을 만나 담소를 나누는 공간입니다.


대웅전과 청련당 사이에 공간 모습

굴뚝 모습이 특이합니다.





대승사 노주석(露柱石)


대웅전 앞 마당에 있습니다.

정면에 보이는 전각은 대승선원

화사석이라고도 하며 야간법회 등 행사 때에 주위를 밝히는 석등의 일종이지요.

국네에서는 봉암사,김룡사 등 몇 곳에 없는 독특한 문화유산입니다.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407호


대웅전에서 본 만세루


대승선원(大乘禪院)


대승사에서 대승선원을 빼면 이야기가 될 수 없는 사찰입니다.

대승선원은 한국불교 정화의 씨앗이 움튼 곳으로 1944년에는 성철,청담,서암,자운 스님과 비구니 묘엄스님이 함께 정진했고 

금오,고암,월산,향곡 등 숱한 한국불교의 거목들이 대승사 선원에서 수행했으며,

장좌불와(長坐不臥:결코 눕지 아니하고 꼿꼿이 앉은 채로만 수행하는 방법)로 유명한 성철스님은 

3년간 눕지 않고 수행한 곳으로 유명합니다.


대승선원 큰방 건물은 H자형의 독특한 모습으로 정면 8칸의 팔작지붕에 건평이 106평이며 약 40명가량 정진할 수 있는 규모입니다.

대승선원은 안거(安居) 때 입방신청이 쉽지 않고 가행정진 하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대승선원의 전통으로 자리잡은 산철결제(안거 때가 아닌 때 실시하는 집중수행) 3.7일(21일)용맹정진은 더욱 혹독하다.

21일 동안 아예 잠을 자지 않고 정진을 한답니다.

여러분,잠을 안잔다고요? 이해되십니까? 그래서 용맹전진하신 스님들이 존경스럽다는 것이 아닙니까?




대웅전 좌측으로 段을 높여 삼성각,응진전,그 아래 극락전,명부전




대승선원은 소백산맥을 관통하는 죽령 서남쪽 40리 지점의 해발 600여m에 자리 잡은 곳으로 

잠을 적게 자도 괜찮을 정도로 기운이 아주 좋은 곳이라고 합니다.

혼침(昏沈)이 거의 없고 안개가 끼거나 장마철에도 답답하지않는 곳으로 

선객들 사이에는 한번쯤은 반드시 거쳐 가야 할 곳으로 통한답니다.






대승사 경내는 아주 깨끗합니다.

그 흔한 나무,야생화들도 없고 좌우에 향나무만 2그루가 있을 뿐입니다.

아마도 용맹정진수행하는 절집으로써 사람손이 많이 가는

걸그적거리는 것들은 아예 만들지를 않는 듯 합니다. 

깨끗함,간결함,텅빈 절집의 분위기가 새롭네요.



대웅전 우측 모습


그 넓은 절마당에 노주석과 향나무 1그루가 전부입니다.

그래서 더욱 더 간결함이 돋 보이는 절집분위기입니다.

비운다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요?



대웅전 좌측에 누운 향나무가 인상적입니다.



대웅전에서 삼성각으로 가는 계단길








참선도량 대승사를 나와서 바라 본 대승사 계곡





대승사 주차장


대형버스도 많이 주차할 수 있는 대승사주차장이 절집만큼이나 넓습니다.

사불산(공덕산) 정상 아래 600여m 지점에 이런 큰 명당터가 있다니 놀랄 뿐입니다.

옛부터 명산에 명당터에는 반드시 절집들이 들어 셨다는 것이 우연일까요?




대승사 주차장에 딱! 한집 간단한 마실거리,차를 파는 가게인데

혹 절에서 보살이 운영하는 찻집은 아닐까? 싶네요

대승사의 표고가 유명하다는데 표고버섯도 파네요.



산문을 나서면서~일주문


즐겁개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