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데지레의 이야기에 보면 데지레가 조제핀과 베르나도트가 처음 만나는 대목이 나옵니다. 물론 이 대목은 허구죠. 데지레 전기에서는 그녀가 베르나도트를 처음 본것은 파리에서 개선식중인 베르나도트의 부대를 지켜보면서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소설 이야기가 더 극적이긴하죠.
데지레는 약혼자를 찾으러 파리고 갔고, 거기서 마담 탈리앵의 집으로 무작정 갑니다. 그녀의 집에 들어갈수 없었기에 옆에 지나가던 장군에게 부탁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베르나도트인것이죠. 거기서 그녀는 나폴레옹이 조제핀과 약혼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화를 낸후 뛰쳐나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비오는 거리에서 그녀는 베르나도트의 청혼을 받는걸로 나옵니다.
..소설은 확실히 극적이긴하죠.^^*
마담 탈리앵은 조제핀의 친구인 테레사입니다. 이전에 퐁트네 후작부인이었던 그녀는 탈리앵과의 관계로 이미 유명했다고 하네요. 이후 조제핀과 쌍벽을 이루면서 여러 남자들과의 사이를 오가는 사교계의 중심 인물이 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테미도르 반동때 남편인 탈리앵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해서 "노트르담 드 테미도르"라는 별칭이 붙었다고 합니다.
이후 소설에서 또 한번 더 등장합니다. 데지레가 로센백작을 데리고 조제핀에게 갔을때 나오죠. 그녀는 나폴레옹에 대한 점을 봐주면서 조제핀과 데지레의 운명에 대해서 복선을 이야기하는 역할로 나옵니다. ^^*
데지레. 1
노트르 담 드 테미도르 : 테레사 카바뤼, 마담 탈리앵
테레사 카바뤼
퐁트네 후작부인
마담 탈리앵
시메 공비
Thérésa Cabarrus, Madame Tallien
(31 July 1773 – 15 January 1835),
테레사 카바뤼는 마드리드에서 프랑스 금융가인 프랑수아 카바뤼와 그의 부인인 마리아 안토니아 갈라베르의딸로 태어났습니다. 테레사의 아버지는 산 카를로스 은행을 설립했는데 이것은 후에 스페인의 국립은행 (the Royal Bank of Spain)이 된다고 합니다. 또 후에 조제프 보나파르트가 스페인의 국왕이 된후에는 그의 재무장관이 되었습니다. 1789년 스페인의 카를로스4세로부터 백작지위와 함께 기사로 서훈됩니다. (한마디로 귀족이 됐다는..)
테레사의 아버지
프랑수아 카바뤼
프랑수아 카바뤼는 고야의 친구였는데, 이때문에 고야는 그의 전신 초상화를 그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고야 작품-0-;;
1779년에서 1783년 테레사는 프랑스의수녀원에서 교육받습니다. 당시 귀족이나 상류층의 소녀들은 결혼할 나이가 될때까지 수녀원에서 교육받는것이 전통이었습니다. 이는 아마도 방종한 사교계에서 어린 소녀를 보호하기 위한것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면 루이 15세의 딸들도 아주 어린시절부터 수녀원으로 보내져서 성장했는데 그게 아부지의 방종한 궁정에서 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고 하더라구요. 1785년 테레사는 가족이 있는 스페인으로 돌아왔는데 그녀의 아버지는 열두살의 어린 그녀를 다시 프랑스로 돌려보내서 교육을 더 받게 하면서 남편감을 찾도록하죠.
테레사는 알렉산드르 드 라보르드와 사랑에 빠집니다. 라보르드 백작가문은 스페인에서 살던 막강한 은행가 가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알렉산드르의 아버지이자 권력자였던 장-조셉 드 라보르드는 테레자를 좋아하지 않았고, 아들과 테레사가 헤어지길 강요합니다. 테레사의 아버지는 "자신의 예쁜딸"을 프랑스의 부유한 권력자와 정략결혼시키려합니다. 그러면 프랑스에서 자신의지위를 더 확고하게 할수 있기 때문이었죠.
테레사
1788년 테레사는 장 자크 데빈 퐁트네와 결혼합니다. 그는 마지막 퐁트네후작으로 부유한 귀족이었지만, 키가 작고 못생겼었다고 합니다. 퐁트네 후작은 스물 여섯살이었으며, 신부는 겨우 열네살이었죠. 결혼후 테레사는 루이 16세의 궁정과 스페인의 카를로스 4세의 궁정에 소개 됩니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던해에 아들을 낳습니다만, 아마도 애인의 아들이라고 추측합니다.
1789년 혁명이 일어나자 테레사의 남편은 도망갔고, 그녀는 결혼전 성을 쓰면서 남편과 1791년 이혼합니다. 혁명후 그녀는 보르도에서 귀족의 아내라는 이름으로 체포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탈리앵을 만납니다. 탈리앵은 테레사를 구해주었고, 테레사는 곧 그의 정부가 됩니다. 테레사는 탈리엥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풀어주라고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탈리앵이 파리로 소환되자 그를 따라갔으며 로베스피에르에 의해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이때 그녀는 같은 처지의 여성이었던 조제핀 드 보아르네를 만났죠.
탈리앵은 로베스피에르에 대한 음모에 가담했으며, 탈리앵은 테레사를 위해 영향력을 행사해서 1794년 7월 27일 테레사가 석방됩니다. 그리고 테레사의 친구인 조제핀 드 보아르네도 풀어주도록하죠. 그해 12월 테레사와 탈리앵은 정식으로 결혼했고 둘사이에는 딸이 태어납니다. 테레사는 탈리엥에게 늘 영향력을 행사했었기에 테미도르 반동이후 그녀는 "노트르담 드 테르미도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테레사의 두번째 남편 탈리앵
테레사는 곧 파리 사교계의 리더가 되었고, 테레사의 살롱은 매우 유명해집니다. 또 매우 화려한 것을 좋아한 여성이었던 테레사는 총재정부 시절의 패션을 주도한 여성중 하나가 됩니다. 그녀가 얼마나 화려한것을 좋아했냐는 나폴레옹이 살았던 튈르리 궁을 방문했을때 여덞개의 사파이어 반지와 여섯개의 발가락 반지를 했으며 발목에는 금 발찌를 했고 각각 팔에는 아홉개의 팔찌를 했으며, 머리에는 루비로 된 머리띠를 했었다고 합니다.
테레사
탈리엥과 결혼한 후에도 여러 남자와 관계가 있었는데, 1797년경에는 바라스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으며, 또 백만장자이자 투기꾼이었던 우브라르와의 사이에서는 모두 네명의 아이들이 태어납니다. 탈리엥의 권력이 사그라들자 테레사는 1802년 그와 이혼했으며, 나폴레옹과 잠시 연애질이후 조제핀과 헤어진 바라스와 동거합니다. 바라스와 헤어진 후에는 역시 오랜 관계를 유지했던 우브라르와 같이 지냈습니다.
바라스에 대한 풍자화
저기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은 바라스이며 커튼에 보이는 두명의 나체 여성은 조제핀과 테레사입니다.
하지만 테레사는 1805년 카라만 백작인 프랑수아-조제프-필리프 드 리케와 결혼합니다. 한해전 그는 자녀없이 사망한 uncle(외삼촌인듯)으로부터 시메 공(Prince of Chimay)칭호와 영지를 물려받았었습니다. 테레사가 시메 공과 결혼한 이유는 아마도 여러 남자들과 연관되는 이런 불안정한 삶을 청산하고 안정된 삶을 누리고 싶어서 였지 않을까합니다. 그는 구 귀족으로 나폴레옹의 제정이 성립된후 프랑스로 돌아와서 나폴레옹에게 칭호를 얻긴 했지만 권력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테레사는 처음에는 파리에서 살았지만 후에는 시메 공령에서 남편과 함께 지냅니다. 시메 공부부는 음악에 조예가 깊었으며 많은 음악가와 교류합니다. 시메 공령으로 간후에는 테레사는 자신의 영지에서 작은 궁정을 만들었고 많은 음악가들이 이곳에 초대됩니다.
테레사는 시메 공과의 사이에서 세명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1800년대의 테레사
권력을 추구했다고 여겨지는 테레사이지만, 사람들의 과도한 관심을 받는 역할은 그다지 원치 않았다고 합니다. 테레사는 자신의 시대에 가장 유명한 여성중 하나였습니다. 이때문에 사람들은 그녀를 보기위해서 몰려들었고 그녀는 이런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쩌면 "귀족적" 교육을 받은 그녀가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단지 "구경"의 대상이 된다는것을 적응하지 못한것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잠깐 든답니다. 시메 공령으로 간후에는 옛 귀족들처럼 산 것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자료출처
위키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