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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편]오스트리아의 황후들...(12) 부르봉-파르마의 치타 : 마지막 황후
두번째 : 어린시절
부르봉-파르마의 치타
오스트리아의 황후
Princess Zita of Bourbon-Parma
(Zita Maria delle Grazie Adelgonda Micaela Raffaela Gabriella Giuseppina Antonia Luisa Agnese;)
(9 May 1892 – 14 March 1989)
부르봉-파르마의 치타는 1892년 5월 이탈리아의 루카지방에서 파르마 공작이었던 로베르토 1세와 그의 두번째 아내인 인판타 마리아 안토니아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치타라는 이름은 왕실 가족들 중에서 흔치 않은 이름이었는데 이 이름은 13세기 토스카나 지방에서 살았던 성인인 성 치타의 이름을 딴것이라고 합니다. (재미난 것은 성 치타는 하녀였는데 독실한 신앙으로 주인이나 다른 고용인들의 시기 질투를 견뎌냈으며, 힘들 일도 묵묵히했고 언제나 다른 사람들을 도왔다고 합니다. 성 치타는 평생을 하녀로 일하다 사망했었는데 이런 성 치타는 살아있을때부터 이미 여러가지 기적이 나타났으며 죽은후에도 기적이 이어졌기에 성인으로 시성되었죠. )
성 치타
성 치타의 유해는 현재 미라화 되어서 성 유물로 모셔져있다고 합니다.
치타의 아버지인 알베르토는 앞에서 언급했던것처럼 두번의 결혼으로 모두 스물네명의 자녀를 얻었습니다. 이중 치타는 열일곱번째 자녀였죠. 치타의 가족은 대가족이었으며 로베르토 공작은 이 많은 아이들을 데리고 이탈리아에 있는 여름거처와 오스트리아에 있던 겨울거처를 오가면서 생활했습니다. 이런 공작가문 사람들의 이동을 위해서 특별 열차가 있었다고 합니다.
치타와 형제 자매들은 당시 유럽의 여느 왕족들처럼 다양한 언어를 구사할줄 알았습니다. 이탈리아어,프랑스어,에스파냐어,포르투갈어,독일어.영어를 할줄 알았죠. 치타의 어머니는 포르투갈의 인판타였으며 독일 출신이기도 했죠. 치타의 아버지는 이탈리아 공작이자, 에스파냐 왕가 출신이며 동시에 프랑스 부르봉가문 출신이기도 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가족들이 다양한 언어를 하게 했을듯합니다. 치타는 아버지인 로베르토 공작에게 자신 가문의 정체성에 대해서 물은적이 있었는데 공작은 딸에게 "우리는 이탈리아에서 통치하는 프랑스 왕족이다"라고 이야기했었다고 합니다. 치타는 아버지가 늘 자신을 "프랑스인"으로 여겼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치타의 가족사진
치타는 1903년에서 1907년 사이 상 바이에른에 있는 기숙학교에 가서 공부합니다. 이곳은 매우 엄격했으며 신앙심을 강조하는 곳이었죠. 치타는 이곳에서 공부하면서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성장하게 됩니다. 바이에른의 교육과정에서는 언어뿐만 아니라 수학,지리학,자연사,역사,음악등의 학문과 더불어 체육이나 바느질 같은 것도 가르쳤고 치타 역시 이런것들을 공부했습니다.
또 치타는 자라면서 다른 형제자매들처럼 왕족으로써의 의무를 충실히해야한다는것을 깨달았으며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다른 이들을 늘 도와야한다는 것 역시 잘 알게 됩니다.
치타의 아버지인 로베르토 공작은 1907년 사망햇으며, 이때문에 치타는 집으로 돌아와야했습니다. 이후 치타의 외할머니인 아델라이드는 치타와 언니 프란치스카를 영국의 와이트섬에 있는 수녀원에 교육을 위해서 보내게 됩니다. 와이트섬에서 치타는 종교학과 영어를 배웠으며,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오르간을 연주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치타는 이동안 건강이 나빠졌으며, 요양을 위해 2년간 온천을 찾아다녔다고 합니다. 이때 치타는 이모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 대공비를 만나러 다녔으며 이때 장래 남편감을 만나게 되죠.
마리아 테레지아 대공비
카를 대공의 의붓할머니
치타의 이모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